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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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19-03-17 06:48:03, Hit : 330
File #1    귀한_글_자료(19491_19500).hwp (41.5 KB)   Download : 6
Subject   /아! 십자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아! 십자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고난은, 축복의 씨앗이지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주님 앞에 이 글을 올려 드립니다.
'죄송합니다.주님!
그냥 죄송한 게 너무 많아요.'
그리고 '내 몫에 태인 십자가로
인하여 힘들어하시는 분들과
이 글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별것도 아닌 통증으로도 그렇게
힘들던데 주님이 못 박히심의
아픔이 온몸으로 다가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별일도 아닌 문제로 호들갑 떨며 사는데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느껴 오는 듯 합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찾아오는 이 없고 위로하는 이
없다 하여 홀로 라고 생각했었는데
주님이 처절하게 힘들고 고민하시던 밤
사랑하고 믿던 수제자들
잠들었을 때의 외로움이
어떤 외로움인줄 이제는 알 것도 같습니다.

얼마나 저리고 쓰리셨을까?
거절당함의 상처로 이토록
못 견뎌 속상하던데
우리 주님 하늘 아버지께
거절당하시고 버림받으시며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외면하고 부인했을 때의
쓰라림과 저림이 무엇인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듯도 합니다.

그 고통과 쓰라림,
그 외로움과 그 힘듦을 겪으셨기에
주님은 우리의 통증을 차마 못 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로울 때
늘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힘듦을 대신 감당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다고 합리화시키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럼에도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면류관만 생각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럼에도 겟세마네의 기도를 외면한 채
힘들고 어렵다고 투덜대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렇게 바쁘고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분주하게 사는 당신은
주님을 십자가에 또 다시
못박는 로마병정 편이십니까?

어떻게 받은 은혜이며
어떻게 얻은 축복의 삶인데..
아직도 여전히 소유와 안일 그리고
세상의 쾌락과 명예를 위하여
어떤 소자 앞에서 열심히 주님을 부인하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 주님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의 죄,
우리의 연약함,우리의 질고,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문제..짊어지셨건만
아직도 기름 짜듯 한 겟세마네 기도 없이
하 하루를 버티고 사는
당신의 이름은 누구입니까?

그토록 아프고 힘들다면서 하룻밤도
기도의 밤으로 지새우지 못하고
잠만 자는 당신의 소속은 어디입니까?

그렇게도 죽을 지경이라면서,
몇 끼니라도 금식하며 눈물의 병을
채우지 못하는 당신의 속셈은 무엇입니까?

그토록 험한 십자가 사랑하고 그 십자가 나도 지고
가겠노라고 노래하더니만 주를 위한 수고,
부담, 희생, 포기의 소리만 나오면
세상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겁쟁이
당신은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지신 십자가는 인내의 꽃이며, 침묵의 열매인데,
도무지 하나님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참지 못하는 당신과 아직도 그렇게도
할말이 많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 십자가를'내 몫에 태인 십자가'라 부릅니다.
누구에게나 나의 십자가는
무겁고, 크고, 부당해 보이고
남의 십자가는 작고 가벼워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저마다의
십자가의 무게는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다 무겁고 힘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메워 주신
십자가의 비밀은 이렇습니다.
십가가는 지고 갈 때 가벼워지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살아나는 속성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억지로 끌고 가거나,
벗어버리려 하면
그 무게가 갑절로 변하지요.

그러나, '내가 기쁨으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려 하면 우리 주님이
그 십자가를 얼른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내가 죽으려 하면
주님이 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는 영광으로 갚아 주십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의
십자가에서 주와 함께 죽기로 결심하십시오.

죽어야 살고, 썩어야 피고,
버려야 얻고, 포기해야 소유하고,
참아야 복 받음은
십자가의 능력이며 복음의 비밀입니다.

십자가의 통증과 무게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려 하시는 분들이여!
다시 십자가로 올라가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이 죽어야 주님이 영광 받으시고
십자가의 무게는 서서히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교만을 죽으십시오.
분노를 죽이십시오. 미움을 죽이십시오.
참지 못하는 조급함을 죽이십시오.
자존심을 죽이십시오. 원망함을 죽이십시오.
욕심을 죽이십시오.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위로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와 함께 있음이 최선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하여 함께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함이 최선입니다.
별 다른 죄 안 짖고 열심히
살아감이 자랑이 아닙니다.
주를 위하여 기름 짜듯 기도함이
진정 우리의 자랑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포기하는 삶입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삶입니다.
손해보는 삶입니다.
희생하는 삶입니다. 참는 삶입니다.

이 삶을 적용하고 실천함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만 분의 일이라도 동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가 이후에
면류관 되기를 소망하면서,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것을 아시죠?

/고난주간/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매일 맑은 산소를 마시며
새 날을 맞이하게 하심은
주님의 귀한 은총입니다.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하여
무릎꿇고 기도할 때
풍성한 지혜 주심은
주님의 귀한 은총입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에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함을 베풀어
주심은 주님의 귀한 은총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사랑할 수 있음은
주님의 귀한 은총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절망 가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참으로 막막할 때
소망을 갖고 다시 일어 설수 있음은
오직 !! 주님의 귀하신 은총으로 인함입니다.

우리들의 겉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속 사람을 보시며
사랑의 빛으로 오셔서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주심입니다.

고난의 기간은 성숙할 수 있는 기회  

고난의 기간은 성숙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떠나 하나님이 새롭게 덧입혀 주실 때, 우리가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한 후에 가장 아쉬울 것은 우리 자신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일 것입니다.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세미처럼 되고 파김치처럼 되어 나오느냐? 아니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빛나는 정금같이 나오느냐? 는 것은 고난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는 세상에서 반드시 배우고 가야 할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로 만드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폭이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남을 비범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능력은 고난의 풀무 불 가운데서 훈련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이웃에게 조용하면서도 잔잔하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아주 평범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역의 관점에서 보면 비범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관계를 맺어 갑니다. 이를 위하여 사랑의 수고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사랑의 수고, 즉 자기 헌신은 고난의 훈련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대장간에서 쇠를 풀무 불 가운데서 연단시켜 유연하고 부드럽게 하여 농부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농기구들을 만들 듯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신 사람을 부드럽고 온유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마음대로 사용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따라서 고난이 하나님이 주신 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연단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고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고, 하나님의 연단을 잘 받아 마침내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빨리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 일수록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마다 잘 견디는 훈련을 받을 때에 앞으로 그 어떠한 시련 가운데서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사람의 육신은 너무 큰 소리는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너무 큰 빛은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너무 큰사랑은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영으로만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전심으로 찾고 찾으며 회개하며 상한 심령에 비취는

성령의 계시로만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느낌보다 먼저 그 사랑을 사실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내가 다 느끼고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영원히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 큰 소리를 들으셨는지요? 그 큰 빛을 보셨는지요? 그 큰사랑을 느끼셨는지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생생히 보고자 원하고, 부활하신 그분의 몸을 만져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양이 차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외치지만 그들 곁에 가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똑같이 나와 빈곤한 사람들의 소리는 더 이상 내 맘에 감동이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예수님의 사랑이 ”네가 보아 온 것처럼 그렇게 시시하지 않다”라는 것을 보여줄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그 소리를 듣게 되면

과연 그대로 있을 수 있을런지...

사람이 볼 수 없는 그 빛을 보게 되면

또 어떻게 될 것이며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랑을 느끼게 되면

과연 이렇게 있을런지...



슬며시 찾아왔던 고난은 슬며시 물러갈 것입니다  



우직하게 걸어가는 거북이의 그 우직함 후에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비행기에는 후진 기어가 없어 뒤로 물러갈 수 없습니다.

전투기는 전천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

어떤 상황 앞에서도 명령만 떨어지면 그냥 치고 솟아오릅니다.

대나무는 4년 동안 뿌리를 내린 후에야 5년째 위로 뻗어 올라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충분히 밑으로 뿌리 내린 후에야 위로 뻗어 올라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언제나 외롭지만 결코 약하지는 않습니다.

독수리는 언제나 높은 곳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야무짐은 새끼들의 훈련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마치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훈련시키심과 동일합니다.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새끼들이 안주하려는 순간에 편안한 둥지를 흩어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땅에 머물려하는 새끼들을 억지로 창공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그런 후에는 매몰차게 낭떠러지에 떨어뜨립니다. 새끼들은 생각합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그러나 그 즈음에 어미 독수리는 급속히 하강하여 새끼들을 가슴에 품고 또 다시 비상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함으로 마침내 독수리 새끼는 하늘의 왕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닭이나 철새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기필코 독수리로 키우실 생각이십니다.

폭풍우가 살을 에이고, 눈보라가 뼈를 후비는 날씨가 다가오면

모든 동물들은 각기 제 집으로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오히려 폭풍우와 눈보라를 지치게 합니다.



독수리를 보면서 주님의 마음을 눈치 챕니다.

비행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꿈꿉니다.

곧게 뻗어가는 대나무를 보면서 굽어 도는 삶의 여정에서

올곧아야 하는 천명을 추스려 봅니다.

거북이의 우직함과 대나무의 올곧음과 전투기의 전진성과

독수리의 속도 있는 강함을 삶의 지표로,

사역의 균형성으로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새벽녘 아무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스르륵 다가와

이미 내 옆에 있음으로 존재해버린 서늘한 계절의 변화처럼

그냥 오늘도 아무 설명도 통보도 없이 스르륵 스며든 삶의 질곡들과 고난의 무게로 인하여

또 무너짐과 심해의 압력을 견뎌야 하지만 그냥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던 고난이..



언젠가는 그냥 아무도 모르게 슬쩍 떠나버릴 것을

알기에 크게 당황치 않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가 주어졌기에 거북이의 속도를,

때로는 소리없이 자라가는 대나무의 성숙을

때로는 비행기의 뒤로 갈 수 없는 속성을

때로는 폭풍우를 지치게 하는 독수리의 야성을 품으려 합니다.

이제는 땅에서도 하늘을 살려합니다.



대나무를 보면 30년을 준비하여 3년 일하셨던 주님이 생각납니다.

전투기가 날아가면 질풍처럼 주와 복음위해 달려갔던 바울이 생각납니다. 거북이를 생각하면 40년 광야 길을 한결 같이 걸어 같던 모세가 생각나고 칠년을 하루같이 여겼던 야곱이 아련히 보고파집니다. 그리고 독수리를 보노라면 평생을 악천후와 담대하게 싸웠던 다윗이 느껴집니다. 이제 대나무와 전투기 그리고 거북이와 독수리는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고난이 있고 없고야 무슨 큰 의미이겠습니까?

소유의 유무가 무슨 요동의 이유가 되겠습니까?

건강의 유무가 무슨 흔들림의 이유이겠습니까?

성패가 무슨 하등의 시험거리가 되겠습니까?

다만 꿈에도 소원이 있다면 다윗의 절규가 그리울 뿐입니다.

'주여!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김재진님의 '섬'이라는 책에 '배가 정박할 수 있을 때는 섬이다.

그러나, 배가 부딪혀 깨어지면 그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라 암초가 되고 만다.' 는 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고난과 가시들은 섬이 되기도 하고, 암초가 되기도 합니다. 시각과 사고의 교정 그리고 변화 그것은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기도제목이며 은혜의 무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난들을 암초가 아니라, 섬이 되게 하실 분은 우리의 요새시며 바위이신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암초를 섬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굽어지지 아니하며 올곧게 뻗는 인생으로 겉 푸름이 아니라 속 푸름의 인생으로 살아내고 성숙했으면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애도하는 곳이 아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곳이 아니다.

죽은 나무인 나와 살아있는 나무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곳이다.

나의 존재가 이루어 진 곳이다.

나의 믿음을 확고하게 하며 고정시키는 곳이다.



십자가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린다.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흘리지 말라.
나의 존재가 이루진 것에
대해 감동의 눈물을 흘리자.

인생의 거름―고난  

땅속에 더러운 쓰레기를 파묻는다고 해서
땅이 금세 오염되는 것은 아닙니다.
토양에는 어느 정도
불순물들을 정화하고 분해하여
오히려 거기서 유용한 성분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것은 비단 땅뿐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도 고난에 대한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땅이 쓰레기를 소화하여 비료로 삼듯
인간은 고난을 소화하여
성숙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 쓰레기를
소화해내지 못할 경우
쓰레기의 독성으로 인해 식물이
살 수 없는 죽은 토양으로 바뀝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난도
적절한 반응이 뒤따르지 않으면
영혼의 생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고난은 우리를 달아보시는
하나님의 저울이고 우리의 존재를
울림있게 만들어줄 깊은 공명통임을
인식하고 잘 견뎌내야 합니다.
고난을 견뎌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내이며
그 인내의 원천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찬양을 낳는 고난의 돌 /

서양 속담 중에
“흐르는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다.
흘러가는 시냇물의 아름다운 소리는
곳곳에 박혀 물의 흐름을
방해하던 돌들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역경과 고난이라는 돌이 없다면
아름다운 감사의 찬양과 기쁨도 없다.
우리는 화니 제인 크로스비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그녀는 어려서 다른 사람의 실수로 맹인이 됐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행운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일평생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고 9000편의 찬송시를 남겼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446장‘오 놀라운 구세주’
역시 그녀가 남긴 찬송시다.

아무리 큰 절망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는 희망과 감격의 통로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아무리 어둡고 험한 길이라도
은혜로 점철된 기쁨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1.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지만,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2. 힘들 때 손 잡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지만
그런 친구가 없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의 낙선자 입니다.

3. 사랑에는 기쁨도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슬픔의 순간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4. 남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사람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고,
상대가 자신을 이해 해주지 않는 것만
섭섭하다고 한다면 이미 불행한사입니다.

5.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6. 자신을 수시로 닦고 조이고 가르치는
사람은 행복의 기술자가 되지만
게으른 사람은 불행의 조수밖에 못 됩니다.

7. 웃는 얼굴에는 축복이 따르지만,
화내는 얼굴에는 불운이 괴물처럼 따라 다닙니다.

8. 미래를 위해 저축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의 주주가 되지만,
당장 쓰기에 바쁜 사람은
불행의 빚쟁이가 됩니다.

9. 불행 다음에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의
표를 예약한 사람이고,
불행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의 번호표를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10. 남의 잘됨을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도 잘되는 기쁨을 맛보지만,
남의 잘됨을 두고두고 배 아파하는
사람은 고통의 맛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고난 중에/
당신의 인생 중에
이해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고난이 닥칠 때 당신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고통 후에
아름다운 진주가 탄생되듯,
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당신을 성숙시키기를 원합니다.
때론 남녘으로부터 불어오는
따스한 봄기운처럼,
때론 한 여름 몰아치는
대노한 폭풍우처럼,
그 시험은 당신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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