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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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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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19-03-17 06:47:13, Hit : 207
File #1    귀한_글_자료(19481_19490).hwp (73.5 KB)   Download : 7
Subject   글자료(19481_19490)
귀한 글자료(19481_19490)

/영육이 충전되는 예배/

미국의 코넬 대학교에서 하루 24시간 중에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때가 언제인지 조사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학교와 근처의
직장을 돌아다니며 탐문으로
조사를 하기도 했고
또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수집해
5만 건이 넘는 표본을 만들었는데
이 모든 자료를 취합한 결과
‘아침’으로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침에
행복과 희망에 대한 말을 많이 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넸습니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네트워크에도
사랑과 행복에 대한
글들이 가장 많이 올라왔습니다.

코넬대학교는 이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아침에 이런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잠을 자고 나서 에너지가 충전이
된 상태라 몸과 마음이 가장
활기차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잠을 통해 몸이 회복되면 행복을 전하고
사랑을 이야기할 에너지가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주일에 주님을 예배함을 통해
일주일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말씀을 실천할 복음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합니다.
주님을 예배한 기쁨으로 한 주일을
승리할 에너지를 충전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새 힘을
얻는 예배생활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모습으로 모든 예배를 드리십시오.

/ "내 고향으로 닐 보내줘"/
파킨스병 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
시골에서 혼자 살수가 없어
서울사는 아들이서울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내고향으로 날 보내줘" "고향에 가고 싶다"
많은 노인들, 아주 많은 노인들이
생각이 없다던가요? 어찌
노인이라고  생각이 없답니까?

노인들 에게도 그리움이  있습니다.  
꿈도 있습니다 없다면 몸이 늙고 병들어
마음대로 생각대로 할수 없을뿐입니다.

우리는~!, 나도 당신도 우리 누구도 늙으면  
저 노인처럼 노인병동에 입원 죽을때까지
내 고향에 가지 못할것이리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니야"  "돈도 있고"
자식도 효자들인데--

여보세요~!  꿈 깨셔요~!  
그때 은행에 몇 억을 예금 해뒀다고 해도
그 돈에 노인병동에 입원한 노인 몫은 없답니다.

은행장에 물어보면  경험 많은
은행장은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고향이
그립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
살아생전에 고향땅에 한번 가봤으면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습니다.

봄이 되면 산에 가서 고사리도 꺾어서
말리던 생각, 텃밭에 씨앗 뿌리던 생각,  
이웃 친구 할머니들이랑 이야기하던 경로당
모든 게 한번 가봤으면,  
할머니의 그리움이었습니다.

누가 날 내 고향에 데려다 줄거나  
살아 생전 한번 가볼수가 있을까
내 고향 그곳에도 봄은 오겠지

고향의 꿈만 5년동안  꾸시던
할머니가 며칠 전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들이 장례를 치른 후에
고향 앞산에 할머니를 모시기로 했답니다.

할머니는 죽어서 고향땅에 가실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병원에 함께 계시던
어느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줘~!

흑인영가 노래소리가
귓전에 맴돈것 같습니다.
일요일 아침할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 힘 없어 지면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젊어서는  생각나는 곳에 마음대로
갈수가 있는데이제 늙어갈 인생  
--마음이 생각이 머리를 -그 이야기를
인생 산다는거 그게 그렇다니까요,
누구나 말입니다  
누가 아니라고 말 할 사람 있겠습니까,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고

내 고향으로 날 보내줘~!
내 고향 그곳에 봄이 오면 꽃피고 새울고
할머니는 눈을 감고 고향 땅에 가신답니다.
-
내고향으로 날 보내줘~!
내고향으로 날 보내줘~!
어릴때 살던 고향집
고향마을 앞산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앞 내
그 고향으로 날 보내줘요~!

<詩庭 박 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 중에서>


/사랑은 인생의 아름다운 향기/

사랑은 인생의 흐뭇한 향기이자
우리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의 따뜻한 햇볕입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이웃 간에
흐뭇하고 아름다운 정을 나누고 삽니다.
그 고운 정속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희망과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정의 아름다움과
흐뭇함이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인생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어
누구를 사랑하는
동시에 내가 사랑의 객체가 되어
누구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을 때
나의 존재와 생활은
무의미와 무가치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풀 한포기 없는
사막과 같고 샘물이 말라버린 샘터와 같습니다.

생에 빛을 주고,향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보람을 주고,의미를 주고,
가치와 희망을 주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 생활의 등뼈요 기둥입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애정의 향기를 항상 발산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믿고,너는 나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믿기 때문에 같이 잘살 수 있고
같이 일할 수 있고
같이 친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협동, 화목, 대화,희생, 봉사 등
인간의 아름다운 덕이 모두 다  믿음과
신의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합니다.



신의와 믿음의 질서가 무너질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행복은 하나의
가치임과 동시에 삶의 기초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창조의 토대 위에
행복의 탑을 쌓고 즐거운 생활의
요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일 때 인생은 아름다워 집니다.

/‘어린아이의 자만’/
철모르는 어린애의
자만심에 대한 글입니다.
하루 만에 글씨를 터득했다는 아들이나
그 말 듣고 ‘우리 아들 천재’라고 믿었다는
애비나 오십 보 백 보, 장군 멍군입니다.

옛날 어떤 부잣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아들이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부잣집 주인은 이번에는 아들이 글씨를
꼭 깨우치게 하리라 다짐하고는 아들에게
가정교사를 붙여 글씨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가정교사는 먼저 한 획을 가로로
그으며 아들에게 써보도록 한 뒤
“이것이 ‘한 일(一)’이란
글자입니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음으로 두 획을 긋게 하고는
“이것이 ‘두 이(二)’라는
글자입니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음으로 ‘석 삼(三)’이란 글씨를
가르치는 순간 아들은 기뻐하며 붓을
팽개치고는 아버지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버지, 다 배웠습니다.
이젠 글자를 다 알 것 같습니다.
가정교사도 필요 없습니다.
혼자서도 이제 다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고는 가정교사를 내보내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는 집안의 잔치가 있어
아들의 글 솜씨도 볼 겸
초청장을 쓰라고 아들에게 시켰습니다.

아들은 아침부터 꼼짝도 않고
계속 방안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기다려도 아들이 나오지 않자
아들의 방에 들어간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끙끙대며 아버지에게 투덜댔습니다.
“왜 하필이면 ‘만(萬)’씨인지..
아직 500까지밖에 쓰지 못했단 말이에요”
아들은 한 일(一)자로
만개를 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아이의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성경 몇 장 읽고 교회 몇 년 다녔다고
예수님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제대로 신앙생활하지 않는 주변의 크리스천
몇 명을 보고 또는 나에게 상처를 준
교인 들 몇 명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인간은 세 가지 착각과
교만에 빠져서 산다고 합니다.
젊을 때는 언제나 청춘이어서
안 늙을 것 같은 착각과 교만,
건강할 때는 자신은 아프지 않고
병이 안들 것 같은 착각과 교만,
돈을 잘 벌고 잘 나갈 때는 영원히
풍요롭게 살 것 같은 착각과
교만에 빠져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강합니다.
무수한 세월을 지배해 온 '자연'에게
도전장을 내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우주를 정복하고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드론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발명하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약합니다.
마라톤 선수라도 말 같이 달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서커스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원숭이보다 잘하지 못하고,
아무리 눈이 좋다고 해도
매 같이 잘 볼 수 없으며
아무리 성형수술을 해도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우리 인간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입을 정도로 연약합니다.
조금 성공하면 잘 난 척하고 우쭐대다가도
실족하면 바로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곤 합니다.
아침에 기분 좋게 출근하며 차선을 바꾸지 못해
당황하는 차에게 기분 좋게 양보하다가도
깜박이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으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는지요.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교만하면서도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세상의 강한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으며 연약함을 보충할 수 있을까요?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실망 투성이 인
'나’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들은
실족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않는
우리 영혼의 닻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눈을 뜨고,
하루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가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며
저녁에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드는 인생이 되십시오.

평생 말씀과 기도로 살았던
워너 메이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세상에서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한다."

하나님 없이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자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하루살이 인생임을 깨닫고 착각하지 않고,
늘 겸손과 섬김으로 주님께 평생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3분의 기적' 밴드에서
/천지 폭발땐 20억톤 물 넘쳐 대홍수/

[남북 백두산 화산 회의]
화산재에 함경도 일대 초토화…
한반도 기온 하락도
"백두산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습니다."
국내의 화산 전문가들은 백두산
폭발 시기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폭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화산(死火山)이 아닌 활화산(活火山)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1903년 백두산 천지에서 화산재가
올라오고 용암이 분출됐다는 주장도 한다.

근래 들어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전문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6월말 두만강 부근 중국 왕청 지역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후부터다.
부산대 윤성효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2002년 지진 이후 갑자기
백두산의 지진 발생 횟수가 급증했고,
화산 가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반 분열과 지표면 상승 현상이 일어났다"며
"당시 지진의 진동이 마그마에 전달돼
화산 활동이 재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2002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한 달에 최고260여회에 달하는
화산성 지진이 포착됐고,
온천수 온도 상승과
천지 주변 나무의 고사 현상도 관측됐다.
반면 중국 국가지진국은 백두산
폭발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한다.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지진 발생
횟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맞지만,

2006년 이후부터는 잠잠해졌다는 것.

이에 대해 국내의 학계 관계자는
"지진 발생은 줄었지만
다른 징후들은 계속 관측되고 있다"며
"백두산이 중요한 관광자원인 중국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적 요인이 작용하는 만큼
중국 입장을 다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폭발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백두산에 대한 관측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
기상청 이현 지진관리관은 "폭발 시기를 예측하려면
다양한 장비를 설치해 폭발 전조현상을 관측하고
이 자료를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시설과 자료 모두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

하나님께서 ‘직접’ 성경을 기록한 것은 딱 한번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돌판에 십계명을 불로 파셨고 모세는 그 돌판을 들고 산을 내려왔죠. 그 후에는 인간의 손과 언어와 지성을 빌려 ‘간접’적으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모든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류에게 똑같은 한 하나님을 알리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록 속에 자신을 담으시고 그 기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작권은 하나님께 있고 인간은 다만 그것을 번역하고 만들어 배포한 ‘저작인접권’만 있을 뿐입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오묘한 신비와 기쁨’은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소수의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 그 어떤 책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과 은혜와 기쁨을 주며 그 무엇보다도 ‘생명’을 줍니다.
또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자연의 원리와 공식과 법칙’이 숨어있습니다. 성경에는 찾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수많은 자연법칙들이 은밀하게 은폐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컴퓨터, 비행기, 로봇 같은 오늘날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들도 숨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당연히 미래에 있을 어떤 것들에 대한 기록도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지성으로 이해되는 것 외에는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기록을 통해 하시려는 일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각 장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내용은 ‘하나님과 동행’(임마누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파노라마 성경/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강은 전 세계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담수의 20%를 공급할 만큼 큰 강입니다. 얼마나 크냐 하면 강 하구에서 1,600km나 떨어진 마나우스까지 강폭이 16km에 달하는 거대한 강입니다. 아무리 큰 배도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것처럼 최고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작은 배들은 지금 자기가 바다에 떠 있는지 강에 떠 있는지 눈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마존강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작은 강들의 강물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진 거대한 강입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그 광대하고 무한하기가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비유를 하자면 마치 아마존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거대한 강줄기에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와 스토리와 계시와 사람들과 시공간에 살아가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강줄기는 역시 ‘예수 대속’ 사건입니다. 마치 성경이 예수 대속 사건을 기록하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예수님은 성경의 핵심입니다. 예수 대속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다는 ‘최고 사랑’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이라는 바다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줄 구원의 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예수님을 떠나서 더 넓은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에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이제 부처를 죽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는 예수 꽁무니에만 붙어있지 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삶으로 실천하기위해 떠나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라’(마28:19)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멀리 떠나버리셨습니다.

/임마누엘 성경/

기독교 중에 개혁교회(개신교)는 성경을 ‘구속사’의 프레임으로 봅니다. 구속(救贖, redemption)은 ‘해방’과 같은 뜻으로, 죄라는 속박에서부터 그 값을 주고 풀려나 자유롭게 되는 구원(救援, salvation)입니다. 구속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죄의 결과인 사망(롬6:23)의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구속을 이루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마20:28)라고 봅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성경은 창세전부터 정하신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타락한 죄인들은 구원하는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유독 개혁교회는 <예수 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전전하는 ‘전도’를 능동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중에 카톨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회는 성경을 ‘임마누엘’의 프레임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젊은 여자가 잉태하였으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이사사7:14) 임마누엘은 임마누(????, Immanu, 우리들과 함께 있다)와 엘(??, El, 신)을 조합한 이름으로 ‘신은 우리들과 함께’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요소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처럼 적극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같은 식의 전도는 안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조차도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개혁교회) 놓치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동행 성경/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가르쳐주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배운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지식과 가르침들은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식과 가르침들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성경을 읽을 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는 ‘성경이 말하는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가’ 성경을 문자로 보는 ‘문자주의’자들은 성경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만이 오로지 변개되지 않은 참 성경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성경은 다 가짜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어를 전공한 분들은 그것만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 방법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성경은 원본을 베껴 쓰고 번역한 사본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잘못 번역되고 해석된 부분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에 집착하기보다 문맥을 보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어떤 성경이든 마음을 모으고 집중하여 읽다보면 ‘말씀의 생명력’이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흘러들어옵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말씀과 반응하여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비한 책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그저 단순하게 마음을 열어놓고 담담히 성경을 읽어 내려가기만 해도 성경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성경을 읽기만 하면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끕니다.

/사랑 성경/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말은
성경 말씀과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정확히 알고 성경의 의도하는 바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100독이나 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참 대단하죠. 대부분은 평생 1독도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은 성경을 100독이나 읽었건만 어째서 성경은 당신을 단 1구절도 못 읽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려.”하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알면 당연히 좋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단 1구절이라도 그 성경이 나를 콱! 사로잡아서 평생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목사님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씀 한절에 코가 꾀어 끌려가는 사람들입니다.(예를 들면 조용기 목사님의 요한3서2절 같은 경우입니다.)

저는 처음에 고린도전서13장2절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사역과 섬김과 봉사와 그 무엇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다 헛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는 목적도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게 성경은 ‘사랑 성경’인 것이죠. 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라는 말씀이 저를 뒤흔들어서 제 성경은 ‘믿음 성경’입니다. 그렇게 저를 사로잡은 구절이 몇 개 됩니다. 저는 평생 그중에 한 구절이라도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도 벅찰 지경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 요절을
줄줄 외우는 것도 좋지만,
성경 한절에 사로 잡혀서
그 말씀을 목숨 걸고 지키며
평생 따라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갇혀있는 성경/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왜 그렇게 성경 종류가 많습니까?”
-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성경 종류가 많은 것입니다.

한분 하나님을 한 성경으로만
다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에서 번역한
다양한 성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의 원래 문자가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일부 아람어인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아니라 고대에 사라져버린 언어입니다.
그것을 현대에 우리가 상용하고 있는
문자로 바꾸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는 10년만 지나도 어색해지고
그새 새로운 단어가 무수히 생겨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서 사용했던
한권의 성경인 ‘개역성경’은
1956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40년 동안이나 사용했습니다.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에 성경은 점점
해독하기 어려운 책이 되어갔습니다.
중간에 새로 바뀐 ‘새번역’성경이 나오기는 했지만
한국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용이 무산되었고
결국 개역성경을 약간만 손 본 ‘개정개역’이
1998년에 나와 현재 사용중입니다.

그러나 고장난 곳을 보수하고 수리하는 정도로
소극적이고 보수적으로 번역한 ‘개정성경’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개정성경’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성경을 원하는 21세기 새로운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각 출판사마다
다양한 수준과 세련된 성경들이
계속 만들어져서 지금 한글성경은
약 16종이나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어떤 ‘틀’(프레임)에 억지로
가두려고 해도 가두어지는 책이 아닙니다.
그동안 한글 성경은
‘보수’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성경이
감옥에서 탈출한 느낌입니다.

/성경에게 읽히기/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읽다보니
아주 조금 ‘눈 뜬’ 것이 있습니다.
지식적인 성경읽기나 감정적인 성경읽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을 읽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큐티를 오래 하다 보면 나중에는
내가 내 맘대로 성경 소설을 쓰게 됩니다.
첫 번째로 성경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게 내가 읽히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성경읽기/



한동안 성경 본문 없이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을 부분으로 보지 않고
크게 통으로 보고 ‘마태복음’전체를 설교하거나
‘출애굽 사건’전체를 설교할 때는
마태복음이나 출애굽기 전체가
‘설교본문’이기 때문에
따로 특정부분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설교가 본문도 없냐는 둥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형식적으로라도 성경구절
하나 적으라는 둥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해 안 받으려고 그 뒤로는
저도 성경본문 없는 설교는 안합니다.
그런데 왜 설교는 반드시 ‘본문’
이라는 것이 있어야 할까요?
그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성경 안에서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 합니다.
설교도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해결책을
자꾸 풀어서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성경을
자신의 상황과 맞추어 특정 구절을 찾게 되고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의미전달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인생문제에 직면했을 때,
특히 성경을 자신의 처지에 꿰맞추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서
아전인수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성경의 ‘의도’를 잘 알지 못하는
설교자들은 특정 구절을 뽑아
‘좋은 성도가 되자’ ‘좋은 배우자가 되자’
‘선한 그리스도인’ 등등
성경을 도덕 교과서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감정적으로 읽으면 안 되고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읽어야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의도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성경은 윤리교과서도 아니고,
이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교본도
아니고, 명언집도 아닙니다.
성경이 원래 전하고자 하는
명확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성경읽기입니다.

/지식적인 성경읽기/

만약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딱 한권의 책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성경책’이라고 대답한
경우가 압도적이라고 합니다.
교도소 안에서 가장 많이 대출되는
책도 ‘성경책’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언어로 가장 많이
발행된 책은 성경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대한성서공회에서만
2000년대 초에 성경책 누적 1억권
발행했다는 신문기사를 본 것 같은데
그것도 20년 전이니 그 후로도
얼마나 더 많이 만들어 졌을까요.

사람들은 성경에서 인생의 지침을 얻고 싶어 하고,
영적인 풍성함을 받아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영적 기근’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 읽는 목적이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속마음도 허물없이 다 얘기하는 친구 목사님
“나는 설교하기 위해서만 성경을 보는 것 같아.
만약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성경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어쩌면 좋을까?”
하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성경에서 역사적, 신학적, 교리적인
정보와 지식을 뽑아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거나
연구를 하기 위한 지식적 성경읽기는
내 영혼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여
“나처럼 설교를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처럼 성경을 깊이 파는 사람도 없을 거야.
나는 성경 100독을 했어 음 하하하”
그러나 그것이 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신비하고 신기하고
신묘막측 한 엄청난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그 지식은 사람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못합니다.
‘보물지도’를 아무리 빠삭하게 잘 알아도
직접 가서 파 내 손안에 넣지 않으면
그 보석은 단 한 개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성경읽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성경 1독도 못하고 죽습니다.
가장 최근의 성경읽기 설문 조사
(G&M글로벌문화재단 2017.3.22.)자료를 보면
‘매일 성경을 읽는다 19%, 어쩌다 읽는다 50%,
전혀 안 읽는다 25.3%’
제 생각에 어쩌다 읽는다는 50%는
아마도 예배시간에 설교 본문으로
읽은 것을 ‘어쩌다 읽는다’
라고 대답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중요한 책인
것을 잘 알면서도
왜 이렇게 읽지 않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성경을 읽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서 성경을 읽어 보아도 어렵기만 하고
재미도 없고 내용은 뭐가 뭔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읽다가 포기해버립니다.
성경은 억지로 읽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억지로 읽고 억지로 풀다가는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책입니다.(벧후3:16)

많은 경우에 잘못된 성경읽기가 오히려
예수님과 더 멀어지게 합니다.(요5:39-47)

많은 경우 성경을 잘 못 읽고 잘못 가르침으로
가르치는 이나 듣는이가 모두 멸망으로 걸어갑니다.(마7:13)
어떤 이단은 무료성경공부를 한다면서
‘모든 성경은 짝이 있다’고
무슨 신기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성경을 잘 모르는 교인들을 속여서 끌고 갑니다.

성경에 짝이 있다는 것은 벌써 수백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는 ‘관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관주성경’만
잘 봐도 다 짝을 맞출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자기만 아는 신기한 방식으로 푼다면서
다른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른 거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잘못된 성경읽기는
그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오히려 지옥 자식이 되게 합니다.(마23:15)

/타는 목마름/

한글개정개역, 표준새번역개정판, 현대어성경,
쉬운성경, 쉬운말성경, 우리말성경,
킹제임스성경, 공동번역성서,
성경, 메시지성경, 신약성경...

오늘은 일삼아서 제 책장에 있는 성경책을
세어보니 30권이 넘게 꽂혀있습니다.
영어성경, 헬라어성경, 중국어, 일본어,
심지어 북한어성경까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르고,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특별히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나(개인)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히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우리들은
정말 성경이 알려주는 의도대로 잘 살고 있습니까?
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저의 평생의 삶은 성경에 밑줄을 그으면서
30권이 넘는 온갖 성경들이 쭈글쭈글해지도록
읽으면서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목마름’은
여전히 해갈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주님 앞에서 몸부림을 치며
아아, 주여 제 혓바닥에
물 한 방울만 찍어 주소서,하고
지옥에 간 부자처럼 고백을 합니다.
아아, 주여 제 입에 아버지
말씀이 있기를 원하나이다.



/ 사진 유머/

엄마가 둘째 아들과 가족 사진첩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둘째가 한 사진을 보고
이상 하다는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사진은 바로 배가 불러있는 엄마와
자신의 형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째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어디있어? 왜 나만 빼놓고
형이랑 둘이 짝은거야?"
엄마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너는 엄마 뱃속에 있어."

둘째 아들은 이해 할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등 하며 물었다.
"엄마! 왜 나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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