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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6-10-15 14:58:24, Hit : 2931
Subject   감사의 자석

 감사의 자석

접시 위에 있는 모래는 너의 하루야. 철가루들은 너에게 내려진 축복이고, 자석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란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너의 하루를 돌이켜보면 이렇게 많은 축복들을 찾을 수 있어. 자석이 철가루들을 골라 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네 손가락 같아서 모래 속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을 수 있어도 작은 철가루 하나 제대로 고를 수 없어. 결국 하루 종일 아무런 축복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날에도 분명히 너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단다.-Nurturing Spirituality in Children-

 


따뜻한 봄이 와도

어떤 사람이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고 쓴 팻말을 목에 걸고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해서 얻는 액수가 하루에 얼마나 됩니까?"  "겨우 1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하고 그는 침통하게 대답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목에 걸려있던 팻말을 뒤집어 다른 어떤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그 사람이 다시 걸인 앞에 나타났을 때 걸인은 그 사람의 손을 꼬옥 붙잡고 감격해 하며 물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가신 뒤 요사이는 5만원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놓았기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써 있는 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 말 대신에 <따뜻한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바꾸었을 뿐이에요" ... 어디선가 감명 깊게 읽었던 글을 기억을 더듬어 썼습니다. -최용우

 


그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열심히 설명하며 설득하려고 합니다. 정말 그의 삶이 어렵고 힘들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이 참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열심히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정말 그의 삶이 기쁘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대로 됩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하면 정말 힘들고 어렵게 되고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하면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게 됩니다.

 


믿음과 순종

믿음과 순종은 같은 뜻을 가진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으면 저절로 순종하게 되어 있거든요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은 믿음의 외적 표현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같은 뜻을 가진 한 단어입니다.

 


근심 걱정 없이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런데 근심, 걱정, 염려를 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번 근심, 걱정, 염려를 종이에 글로 적어 보세요.

그리고 정말 근심, 걱정, 염려한 대로 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어니 젤린스키라는 사람이 낸 통계를 보면 근심걱정염려의 40퍼센트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근심걱정염려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근심걱정염려의 4퍼센트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며 근심걱정염려의 4퍼센트는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까 약 80퍼센트는 하지 않아도 되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심할 시간에 기도하세요

걱정할 시간에 사랑하세요

염려할 시간에 기뻐하세요. 기도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면 근심걱정염려는 봄 눈 녹듯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

똑같이 교회에 와서 찬송하고 예배들 드리고 헌금을 해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거짓사람입니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고 해도 향기로 꽃임을 알고 냄새로 오물임을 알고 맛으로 과일의 이름을 알고 감촉으로 쇠인지 나무인지 돌인지 알듯이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사랑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 입니다. 사랑이 빠진 그리스도인은 거짓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나무(我無)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었는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신 이후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영광 받고, 칭찬 받고, 인정받고

내가 드러나야 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내 안에 '존귀'는 여전히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지금도 나무(我無)입니다.

 


사랑(仁)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 자체가 진실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법이다. 난로에 불을 피우면 가까이 있는 것부터 덥히지 않겠는가? 가까운데 있는 것을 피하여 멀리 있는 것부터 더워지게 할 수 있는 난로란, 일부러 그렇게 조작을 한다면 모르겠거니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물건이다.


인자(仁者)는 가까이 있는 것부터 사랑하고 그 사랑을 미루어 멀리 있는 것에 닿도록 한다. 제 부모 처자를 사랑할 줄 모르면서 또한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순수성을 반드시 의심할 만하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기 가족을 희생시킨 사람이 없지 않아 있다. 또 그들이 거의 여과 장치 없이 애국자 또는 충신으로 기림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부터 효와 충은 하나로 인식되어왔다. 이것 없이 저것, 저것 없이 이것은 완전한 것일 수 없다. 뿌리 없는 나무 가지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이현주 (목사)

 


까놓고 말하자

세상에 이욕(利慾) 없는 자 있느냐? 이익이 있으면 좋아하고 손해를 보면 싫어하도록 그렇게 세뇌되지 않은 별종이 과연 우리네 세상에 있는가? 우리 두뇌는 손익 계산에 번개처럼 빠르도록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철저히 훈련받아 왔다. 옳고 그름을 헤아릴 겨를은 아예 없이, 우선 그것이 나에게 유익한가, 아닌가를 묻는다. 영화구경을 가도 친구를 사귀어도 이해관계를 먼저 따진다. 그러니까 자연스레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돈이 모든 가치의 기본이 된다. 시간도 돈이고, 지식도 돈이다. 맙소사! 마침내 설교도 돈이 되어 버렸다.

 


상대적 절대, 절대적 상대

덕(德)은, 보이지 않는 도(道)가 속에 있다가 때가 되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꽃은 활짝 피었을 때 비로소 향기를 뿜는다. 북극성은 붙박이별이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떠돌아다니는(비록 정한 궤도를 따라서지만) 뭇별에 견줄 때 북극성은 절대(絶對)가 된다. 북극성은 절대로 자리를 움직이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북극성은 과연 절대한 붙박이별인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절대로 한 자리에 붙박혀 있다면 자전에 공전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구에서 볼 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북극성이 절대한 붙박이별인 까닭은 그것이 절대로 한자리에 붙박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걸 일컬어 상대적 절대 또는 절대적 상대라고 할 수 있을런지?

 


사람 눈을 속일 수는 있지만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 는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그 일을 왜 하느냐? 동기가 무엇이냐?-는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 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 눈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늘을 속일 수는 없다.

 


비례(非禮)어든 물시(勿視)하라!

하늘 이치에 어긋나는 놈이 얼찐거리거든 쳐다보지도 말라. 말도 하지 말고 그의 말을 듣지도 말고 그의 말에 따라서 움직이지도 말라. 스승의 가르침이 참으로 엄정하구나!


사탄의 비례(非禮)에 귀를 기울여 그와 함께 말을 나누고 생각을 나눈 것이 하와(아담)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광야 40일, 유혹자 앞에서 예수는 그와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는다. 다만 당신의 말(논리)을 선언할 따름이다.


20세기 백 년 동안 교회는 자본주의 '유물론'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아주 참 그럴듯하게 '성공'을 했다. 이 짓을 언제까지 계속 할 참인가?

 


사람 눈의 한계

만사 감추려고 애쓴다 해서 감추어지는 게 아니다. 보는 눈이 어둡고 짧아서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사람 눈에는 한계가 있다. 상대방 코를 보면서 동시에 뒤통수를 볼 수 없는 게 사람 눈이다. 산을 바라보면서 산을 보고 있는 자기를 볼 수 없는 게 또한 사람 눈이다. 이 눈 하나만 가지고 살자면 속고 속이는 일을 밑도 끝도 없이 되풀이할 따름이다.


게다가 사람 눈 속에는 어제 보았던 것들이 남아 있어서 오늘 보는 것을 제 모습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경험을 통해서 무얼 배운다는 게 가장 믿음직스럽고 확실한 듯이 보이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편견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한번 좋게 본 사람을 비난하기가 쉽지 않고, 한번 나쁘게 본 사람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음을 우리는 말 그대로 경험을 통해서 아 알고 있다. 눈을 씻고 또 씻어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 속을 들여다보아야 남한테 덜 속고 또 남을 덜 속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마음으로 돌아가라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 밖에 없다 (정채봉)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이런 저런 바깥 것들로 해서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겉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쓴다는 것은 자선을 베풀되 자기가 자선을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이 자선을 베푼다는 그건 말이다. 왼손이 하는 짓을 오른손이 모른다는 말인데 그 말은 왼손이 하는 짓을 왼손이 모른다는 말과 같다. "깨끗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러워진 자들과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성경 디도서1:15)  -이현주 (목사)



불붙는 사랑의 마음으로

강한 쇠를 더 강한 망치로 두들기면 부서질 뿐이다. 대장장이들의 지혜를 기억해 보라. 그들은 강한 쇠를 엿가락처럼 힘들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화로에서 뻘겋게 달아오른 쇠덩이를 두드릴 때 사용하는 망치를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은 결코 커다란 해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 크지 않은 망치를 가지고 한 손으로 집게에 쇠덩이를 물리고 단지 한 손으로 재빠른 망치질을 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투박한 쇠덩이는 호미가 되기도 하고 낫이 되기도 한다.

 

화난 듯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당신들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라고 외치는 두려운 선포보다는, 가르치고자 하는 성경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듣는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말씀을 풀어갈 때, 오히려 죄인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는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 바보

높은 것 낮은 것도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것 싫은 것도 골라낼 줄 모르고

손해 이익 따위 계산할 줄 모르고

네 편 내 편도 만들 줄 모르는

하나님은 바보

오직 하나, 사랑만 아시는

사랑밖에 모르는 하나님, 바보! (조희선)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잘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이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랑으로 살기보다는 너무도 빠르게 높고 낮은 것, 좋고 싫은 것, 손해 이익 네 편 내편을 가릅니다. 버릇이 깊습니다.)

 


기쁨의 기도

찬란하게 빛나시는 하나님

저는 팔을 높이 들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가슴을 펴고

웃으려고 입을 벌리고

이마를 하늘로 향했습니다.

저는 봅니다. 기다립니다.

귀를 기울입니다.

혈관 안에는 피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다.  (야누쉬 코르)

 


참다운 문명

참다운 문명은

산을 파괴하지 않고

강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을 망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리 (다나카 쇼조 1912)

 

하늘 냄새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박희준)

 


해 넘어가기 전의 祈禱

저는 푸른 산을 기어오르는 마음으로 밖에

저의 기도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저, 아득히 높은 산마루에 오르기만 하면

당신은 틀림없이 거기에 계시어서

하늘빛으로 활짝 핀 인자하신 얼굴의

사과냄새가 풍기는 고운 입술로 

저의 뺨을 문지르고

흐르는 햇살처럼

흐르는 핏줄까지 전연히 내비치는

따스한 손바닥 손가락으로

머리칼에 매어 달린 이슬 땀방울을

조촐히 씻어주시리라고 믿기 때문에

한 번만 지나가면 풀잎마저 저절로 향기로와 진다는

사향노루의 발자취를 따라서

상수리 도토리를 주워 먹어가면서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질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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