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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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5-04-02 19:13:37, Hit :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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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환경이 아니라 나를 바꾸면 어떨까?(창40:1-8) 2005.04.03.

환경이 아니라 나를 바꾸면 어떨까?(창40:1-8) 2005.04.03.


나무 한 그루를 두고 평범한 사람들은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고 말하고 조폭들은못 올라갈 나무는 베어버린다.” 라고 말하는데 성공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못 올라갈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간다.”


여러분께서 다시 한 번 인생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면서 오늘의 삶을 살아갑니다. 지금의 배우자보다 훨씬 더 좋은 가문, 성격, 인물의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지금의 직장이 아닌 그 어떤 다른 직장에 내가 들어갔더라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아닌, 그 어떤 다른 사업을 내가 시작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삶,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을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이 우리 삶에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고방식이나 인생관은 우리에게 결코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환경을 탓하는 삶! 그런 삶은 정말 나를 피곤하게 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피곤하게 합니다.


생각을 바꿔야 행복해진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그런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환경을 바꾸려 하지 말고 차라리 나를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내 사고방식을 바꾸고, 내 자세를 바꾸고, 내 삶의 방식을 바꾸는 편이 내게 훨씬 더 유익할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행복의 차이는, 잘못된 생각과 기준의 뿌리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행복하려면,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오염된 세상적인 기준들을 성경적인 기준과 관점으로 전환시켜야만 합니다. 세상에서도 생각이 변해야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덮어주셨지만 인간은 그가 품은 생각에 의해 행동을 하고 인격이 형성되고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심리학자 사무엘 스미스는 말하기를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고 했습니다.


큰 배를 움직이는 것은 선장이 붙잡고 있는 키이듯이, 우리의 삶도 생각에 의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러므로 잘못된 생각과 오염된 기준은, 우리의 인생을 어렵고 힘들게 할뿐입니다. 예를 들어, 장수하면 행복한 것이고, 일찍 죽으면 불행한 것이며 부자 되면 행복한 것이고, 가난하면 불행한 것이며 건강하면 행복한 것이고, 병들면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과 기준은 성경적인 기준이나 관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잘못된 기준이며, 세속적인 잣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 때부터 성경적인 아닌 세상식을 학습하고 의식화함으로 세상의 잣대를 걸러냄이 없이 삶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건강하기만 하면 행복하고, 성공하면 행복하고, 장수하면 행복하고, 부자 되면 행복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은혜란, 가치관과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무슨 소리를 듣고, 환상이 열리는 것은 은사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고질적인 가치관과 잘못된 기준들이 변화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고, 큰 은혜(?)를 받았어도 기준이나 가치관이 세상적이면 그 은혜는 가짜입니다. 진짜 은혜는, 껍데기만 변화시키지 않고 알맹이도 변화시킵니다.


나에게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렇다면 나에게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요? 오늘 요셉의 삶은 그런 관점에서 우리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요셉이 감옥에 갇혀있는 것은 한 여인의 유혹을 끝내 거절한 결과였습니다. 양심적으로 살려고 부단히 애쓴 결과에 우리는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부당한 결과였습니다. 아무리 돈 없고, 힘없고, 배경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모함이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요셉이 누군가를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요셉의 삶의 스타일은 섬김이었습니다. 환경에 지배되어서 누군가를 탓하는 그런 모습을 그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섬김을 사명으로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섬기려는 요셉의 그런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세상은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요셉의 삶은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섬기는 모습으로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회는 섬기는 중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기회는 섬기는 중에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기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섬김을 받으려하고 높은 위치를 원하지 낮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회는 높은 데에 있지 않고 낮은 데에 임하고 섬김을 받는 중이 아닌 섬기는 중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섬기는 일을 잘 수행해야 하고 그것을 은혜로 알 고 축복인줄 알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기회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이 청년은 워낙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돈이 없기에 무엇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식료품가게 정리도 하고 때로는 계산도 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큰 식료품 가게였는데 거기에 어떤 할머니가 일주일에 몇 번씩 물건을 사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오면 얼마나 손이 많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 할머니를 부축해야 하고 물건도 골라서 담아주고 배달을 하는 등의 시간이 많이 드는 여러 가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종업원들이 그 할머니만 오면 다 도망가 버리지만 이 젊은 청년은 섬기는 자세가 되어있었기에 그 할머니를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는 오기만하면 이 청년만 찾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그 할머니 집에 식료품을 배달해주고 또 집에 가서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주는 등의 시간을 많이 보내며 그 할머니를 잘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그 할머니 집에 배달을 갔는데 그 할머니가 이 청년에게 '내가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지 않으니 내가 이제 죽으면 자네가 내 부탁을 꼭 좀 하나 들어주게. 이 서류를 변호사에게 꼭 전해주고 그 변호사가 하라는 대로 좀 해주게. 제발 부탁이네’라고 말하고 그 서류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며칠 후에 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청년은 할머니 살아생전에 계속 섬겨주다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또 심부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서류를 가지고 변호사를 찾아가 그 할머니가 부탁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변호사가 그 서류를 전부 보더니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산을 자기에게 사랑을 베풀고 섬겨준 그 청년에게 주라는 할머니의 유언장에 청년의 서명을 요구합니다. 그 할머니의 유언대로 이 청년은 큰돈을 벌게 되어 큰 사업가가 되고 그의 생애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보면서 섬기는 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이 세상에서도 섬기는 사람을 통해서 기회가 옵니다.


혹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섬기며 애쓰고 수고 했어도 세상 사람들은 몰라주고 세상에서는 우리가 받는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가 바라보는 꿈은 이 세상의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늘의 보화를 쌓으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종이 되고  죽기까지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우리를 섬겼더니 결국 주님이 꿈꾸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고 주님은 높아 지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그 영광을 누리고 계신데 이런 모든 것이 기회는 섬기는 자를 통해서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기회를 얻었습니다. 도저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그의 기회는 우연하게 갑자기 온 것이 아니고 평소에 그가 성실을 심었기 때문에 온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에도 남을 섬기는 가운데 그 기회를 맞이하고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마련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요셉처럼 이런 기회를 잘 발견해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인생, 주님 안에서 받았던 그 꿈을 이루는 참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료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중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

감옥생활은 무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생활일 수 있지만 요셉은 그런 곳에서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의 삶은 한심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그런 삶이 기약도 없는 것이라면 참으로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운 무료한 삶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삶은 삶 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요셉은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주어진 삶! 따지고 보면 그는 지금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누구를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런 모습만이 그의 삶 속에는 가득합니다.


오늘 우리의 직장생활이나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하루하루를 산다고 하는 것 역시 상당히 무료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들! 그것도 기약도 없이 이어지는 그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상당히 무료하게 만들고 별로 의미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오늘 요셉의 삶과 같은 그런 삶이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 그런 삶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요셉의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현장에도 하나님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고 있었습니다.


창 39:20 말씀에는 그가 갇힌 곳이 일반 잡범들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는데 그가 그처럼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곳에 갇혀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가 그런 곳에 갇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그런 곳에 갇히게 하시고, 그곳에서 왕의 죄수들과 만나게 하시고, 결국은 그곳에서 애굽의 총리로서 서게 될 발판을 마련하시지 않습니까?


당신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손길은 이렇게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그 손은 절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을 결국은 善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우리의 삶의 정황에도 미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면 지금 당면한 그 어떤 상황을 놓고 우리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주장하는 삶이 아닌 섬기시는 삶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정황!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善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지금 내 삶의 현장이 아무리 열악한 곳이라 할지라도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마당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런 꿈을 안고 오늘도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되, 특별히 주장하는 삶이 아닌 섬기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통해서 요셉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그에게는 대단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서 요셉은 자기와 함께 갇힌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요셉은 지금 다른 사람을 염려해 줄만한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 문제만 가지고도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형편까지 두루 살피는 요셉의 이 여유! 참으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런 여유가 좀 있습니까?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

개를 파는 어떤 가축병원에 한 아이가 들어와서 많은 개들 가운데 굳이 어느 한 강아지를 지목하면서 주인에게 특별히 부탁합니다. “아저씨! 저 강아지를 제가 살 테니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마세요! 3일 후에 제가 꼭 올 테니 그 때까지 저 강아지를 팔지 말세요!”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염려마라! 저 강아지는 절름발이라서 아무도 사 가지 않는단다” 그 다음날 그 아이는 또 그곳에 들러서 부탁합니다. “아저씨! 제가 모레 꼭 올 테니 저 강아지 팔면 안돼요.” 아저씨가 대답합니다. “글쎄 저 강아지는 절름발이라고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결국 이틀 후에 그 아이는 돈을 가지고 와서 그 강아지를 사갑니다. 주인 아저씨는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 의문은 금방 풀렸습니다. 강아지를 가슴에 품고 나가는 아이의 걸음걸이를 자세히 보니 오른쪽 다리가 의족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나의 아픔을 몰라주는 것 같습니까? 그래서 지금 한숨과 절망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나의 아픔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누구보다도 큰 아픔을 경험하신 예수님! 그 분이 바로 여러분의 아픔을 잘 알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경험하신 아픔! 그것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아픔이었습니다. 두 손목과 발목에 큰못으로 박히는 아픔! 그 아픔은 정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픔이었습니다.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는 아픔! 그것은 더더욱 그런 아픔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커다란 아픔을 경험하신 예수님! 그 분은 오늘 우리의 아픔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40:27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세상 모든 사람이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심으로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독수리처럼 창공을 날게 하십니다. 지금의 그 어떤 삶의 정황을 놓고 우리 낙심하지 마시고 아무도 내 아픔을 몰라준다고 해도 탄식하거나 불평하지 맙시다. 누구보다도 큰 아픔을 경험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께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으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가슴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 사실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합니다. 바로 그런 여유를 가지고 이제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주변의 온도가 올라가면 수은주가 올라가고,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면 그 수은주가 내려가는 온도계와 같은 그런 믿음! 주변여건에 따라서 변화무쌍한 믿음! 오늘 우리의 믿음이 그런 믿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내가 지금 당면한 삶의 그 어떤 정황!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그보다는 내가 지금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가 환경이 바뀌기를 기도하지 말고 이제는 더 이상 문제가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내가 바뀌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이 바뀌고, 내 의식이 바뀌고, 내 자세가 바뀌고, 내 삶의 방식이 바뀌고, 내 믿음이 바뀌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성실과 최선을 다하는 삶! 어떤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의 형편까지도 살필 수 있는 여유 있는 삶! 우리의 간절한 그런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진정 그런 모습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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