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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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19-01-10 19:44:59, Hit :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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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목적이 이끄는 삶(20)
목적이 이끄는 삶(20)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본문 :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바람과 해가 누가 신사의 외투를 벗기는지 내기를 했는데,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신사는 외투를 꽁꽁 붙들어 매는데 그러나 햇볕이 쪼이니까 외투를 벗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해가 이겼다는 동화입니다. 이 동화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문을 열게 하는 비결은 법과 폭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탕자를 사랑하신 아버지는 탕자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허랑방탕한 탕자인줄 알면서도 용납하고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결국은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버지는 탕자를 기다렸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웃은 멀리 사는 피붙이보다도 실제적으로 가깝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보다 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생긴 것 같습니다. 이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웃과 정답게 사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이웃이 때론 달갑지 않게 여겨질 때도 있고, 차라리 어디로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싫든 좋든 우리는 이웃들과 부벼대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웅다웅 하며 사는 것에 지친다고 해도 무인도에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 때문에 형무소에서도 중죄인을 독방에 격리해 두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초기에, 구 소련 치하의 어느 형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곳에서는 죄수들을 일체의 빛이 차단된 감방에 집어넣고 외부인과의 접촉도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20일이 지나자 대부분의 죄수들이 미쳐 버렸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고문을 받으며 취조를 받던 죄수들은 오히려 멀쩡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절대 조건이 생물학적인 식량이 아니라는 단적인 예를 보여 줍니다.

홀트 아동복지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홀트 씨가 만난 대다수의 아이들은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고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사망한 데 반해 그가 데리고 산 아이들은 오히려 건강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에 남은 아이들에게 그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그들을 껴안아 주는 일 뿐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살갗으로 전해진 사랑이 죽음으로부터 아이들의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곧 생명입니다. 사랑이 생명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생명의 사건을 일으키도록 우리에게 이웃을 주셨습니다.

삶이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불화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발하고 싶다면 중재자,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마5:9). 중재자의 위치가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지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두 번째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화평케 한다는 것은 양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 예수님은 많은 문제들 앞에서 악한 반대자들과 대면하여 물러서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관계회복을 위한 일곱 가지 성경적인 방법을 살펴봅니다.

1.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하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십시오. 대부분의 갈등은 필요가 충족 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데 그 필요가운데는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없습니다.

2. 항상 먼저 다가가라.
깨어진 관계의 회복은 예배보다 우선순위에 두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우리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이 먼저 다가가십시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고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게 될 뿐입니다.

3.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라.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 들어 주고 감정이 항상 진실 되거나 논리적이지 못해 의심과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까지 배려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 사랑으로 인내하셨던 그 분노와 모욕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4. 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하라.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께, 제삼자에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내가 문제인가? 내가 비현실적이고 둔한가? 혹은 너무 예민한가?"를 깊게 생각하고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실수를 겸손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5.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잘못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는데 노력을 쏟으면 정작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게 됩니다. 갈등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비난, 비교, 판단, 모욕, 멸시, 그리고 빈정대는 태도로 사람을 공격하는 핵무기들은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6. 할 수 있는 한 협력하라.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따릅니다. 그 대가가 우리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자기중심성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목을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그의 필요에 호의를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7.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하라
해결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화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정당하고 솔직한 의견 차이나 이견이 있을 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그 의견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획일이 아닌 연합을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대해 같은 시각이 아니어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하고 논쟁해야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조화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종교 의식보다도 화목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5)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하나님께서는 기도, 성경, 찬송, 예배, 헌신 무엇보다 형제와의 화목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화목이 없는 어떤 예배도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도 명예도 지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화목이 빠져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궁궐에서 호화 호식하며 매일 연락하고 살아도 거기에 불화가 있고 시기 질투 다툼이 있다면 지옥일 것입니다. 그러나 방 한 칸에서 죽을 먹고 살아도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산다면 그곳이 천국일 것입니다. 화목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화목이 없는 가정은 가정이 아닙니다.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소유하기 이전에 화목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느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 서두에는 반드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얼마나 귀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을 위해 독생자까지 희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자산과 모든 특권을 다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고(마 5:9), 예수님을 히브리서 기자는 "의의 왕이요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히 7:2)고 했습니다.

어떤 작가는 예수님의 영향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가고 왔으나 오늘날도 예수님이 인류의 중심기둥이며 진보대열의 지도자이다. 지금까지 진군하였던 모든 육군과 조직되었던 모든 해군과 개회되었던 모든 의회와 통치하였던 모든 왕들을 합해보아도 이 지구상의 인류에게 나사렛 예수 한 사람의 고독한 일생보다 더 강력하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간곳 마다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이 무너졌고, 주인과 종의 장벽이 무너졌고, 어린이와 어른의 장벽이 무너졌고, 남자와 여자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나를 사랑하므로 열등의식 소외감이 없고 고독이 없고 외로움이 없어지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에 화평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비록 가난해도 화목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화목을 위해서 큰 대가를 지불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화목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웃과 화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혹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대상이 있으십니까? 지체하지 말고 시작하십시오. 이 일곱 가지 단계는 간단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하나님이 하실 일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Day 20 / 내 삶의 목적에 대하여

생각할 점 : 관계들은 항상 회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외울 말씀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로마서 12:18)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여러분은 문제해결이 우선인가? 관계회복이 우선인가?
2. 일곱 가지 관계회복 방법 중 여러분이 가장 힘써야할 것은 무엇인가?
3. 내가 오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마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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