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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5-02-22 15:31:26, Hit : 1009
Subject   2003년 내게 주시는 말씀(2)너는 내 것이라 (출19장5-6)
2003년 내게 주시는 말씀(2)너는 내 것이라 (출19장5-6) 2003.01.15.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광야에 천막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여행 중입니다. 광야에서 물자가 부족하고 기후도 좋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합니다. 애굽에서 나왔으므로 자유가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공동체 생활을 이룹니다.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며 행복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시내 광야에 천막을 친 이후 모세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내산 언약이며 최고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스라엘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인도하셨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인도하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 430년이라는 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430살 나이 먹은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노예 중에 태어난 것입니다. 수십 대를 지나가서 노예로 태어났고 노예로 성장했고 노예로 살았을 뿐입니다. 노예 생활이 그들에게서는 아주 체질화 된 것입니다. 이 같은 불쌍한 사람을 주께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자체가 큰 기적으로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시내 광야에 갖다 놓은 다음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말씀 중에 그 총체적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 냈느니라. 너희는 애굽에서 지금 여기에 왔느니라. 이제 나와 너와의 관계는 이러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보호하실 것이다. 독수리 날개라고 하는 상징적 용어로 그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1절에 가서 보면 모세가 사십 년 동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합니다. 지도자로 살고 나이 많아서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 세상 떠나기 직전에 사십 년의 생을 돌아보면서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복음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얹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보호하셨다. 이렇게 한 마디로 말씀하십니다.

독수리는 새 중에 왕, 힘과 위엄의 상징, 자유와 용맹의 상징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새 중에 왕입니다. 힘과 위엄의 상징이요, 자유와 용맹의 상징입니다. 높이 날아서 하루종일이라도 날개를 펴고 지류를 타고 날아가는 걸 보면 독수리의 모습이 장관입니다. 천하무적입니다. 그에게 당할 자가 없는데 이것이 독수리입니다. 그의 기상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해서 독수리를 자기의 표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독수리가 이 지구상에는 48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둥지를 틀 때나 집을 지울 때도 누가 침해할 수 있는 데다 하지를 않고 깊은 산 높은 벽 바위 위 그 벼랑 위에다가 떡 둥지를 트는데 그 둥지가 무려 직경이 2.7m 무려 3m나 가까운 그런 큰 둥지를 틀고 그 둥지를 털어 보면 둥지 하나가 무려 2톤 나가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둥지를 만든 다음에 그 속에서 삽니다. 새끼를 낳고 그가 먹이를 향해서 쏜살같이 머리를 채려고 내려갈 때에는 시속 180km나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한번 날 때마다 직경 90km를 반경으로 해서 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하고 이렇게 배회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게 독수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독수리와 새끼의 문제입니다. 그가 그 둥지에서 새끼를 낳아서 이걸 깨워 가지고 큰 다음에 어느 정도 먹이를 주어가지고 크고 날 때쯤 되면 그가 새끼를 그 벼랑에서 떨어뜨립니다. 발로 밀어서 떨어뜨리면 새끼가 그 높은 데에서 떨어지면서 죽는다고 퍼둥거립니다. 떨어져 죽는다 원망도 하겠지요. 나를 어쩌라고 때려 밀고 죽이려고 하나 하겠지만 퍼둥거리고 있을 때에 땅에 닿기 직전에 멀리서 지켜보다가 획 내려와서 등에 차고 올라갑니다. 갔다가 둥지에다가 놨다가 조금 쉬어 가지고 또 합니다. 하루종일 며칠동안 이 짓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독수리로 하여금 그 새끼로 하여금 나는 법을 가르칩니다. 독수리가 나는 법을 가르치고 또 날개를 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독수리로서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사는 게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로 태어났다고 독수리가 아닙니다. 훈련을 시켜서 건강한 위상의 독수리를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고통이 없는 음악(예화)
조지 거시윈(George Gershwin)는 퓰리처상에 빛나는 작곡가입니다. "파리의 아메리카인" 등 수많은 명곡을 냈고, 재즈를 깊이 있는 음악으로 승화시킨 공로자입니다. 본래 그의 곡은 모두 명랑하고 인기가 있어 돈과 명예를 아주 일찍이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파티에서 오토칸이란 친구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자네의 음악에는 슬픔의 요소가 빠졌어. 아마 자네가 너무 빨리 성공해서 고통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일 꺼야. 그러나 인간의 뜨거운 눈물이 진짜 예술의 비료가 되는 법일세."

그는 이 충고에 큰 감명을 받고 25만 달러 짜리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작곡에 돌입했으며, 그때 나온 작품이 절뚝발이 흑인 거지 소녀를 주제로 하는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입니다.

고통은 새로운 인생의 밑거름이 됩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부활의 기쁨과 생명의 출발이 되었다는 베드로의 해석은 오늘에도 진리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자기가 평생 앓은 간질병을 "거룩한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고통이 오히려 자기를 키워준 하나님의 거룩한 손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베리아 유형, 아내와 아이의 죽음, 강제노동과 많은 중병을 겪으면서 인류의 가슴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썼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평안과 부요의 산물이 아니라 실로 고통의 산물이었습니다.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애굽의 종 되었던 자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강대한 애굽을 심판하시는 강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바다를 가르셨고,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기도 했으며 ,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는 기적과 반석에서 물을 터뜨리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셔야 했던 것입니다.

매우 신속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독수리가 새끼를 업고 빠르게 날아가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신속하게 인도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난 430년 간 포로 된 곳에서, 노예 된 곳에서 불과 50여일 만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 나오도록 간섭하여 주신 것입니다. 신속하게 모든 문제를 풀으시며 그들의 앞길을 여셔서 불과 50일 만에 언제 애굽에서 종 되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만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독수리는 어떤 새 보다 높이 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뭇가지 위로 나르는 새와 같이 이스라엘을 겨우겨우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높이 올라 구름 위에까지 오르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갖 기적과 이사를 동원하여 넉넉히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보살피며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독수리가 아무리 맹금류라 할지라도 자기 새끼에 대한 사랑은 어떤 새 못지 않은 것입니다. 독수리도 자기 새끼에서 먹이를 주고 보금자리에서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새끼를 훈련시켜 잘 날 수 있게도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임에도 그들을 단지 무서운 아버지로 매를 들고 야단치듯 인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인내하셨습니다. 그들을 먹여 주셨고 그들을 입혀 주셨습니다.

강하게 훈련시키며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독수리가 새끼를 키울 때에는 새끼를 높은 공중에서 자주 떨어뜨려 날개 짓을 하게 함으로 강한 날개를 가진 새로 키운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심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키우셨습니다. 수많은 대적들과 척박한 환경들이 있게 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나타났고 ,물이 없고, 건조한 사막이 그들 앞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거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노예 근성을 지니고 있던 이스라엘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강력한 군대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와 같이 인도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사실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내 소유라고 특별하게 명명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것은 바로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이 백성 이스라엘만은 가장 보배로운 소유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집안에 있는 보화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며, 그것을 특별한 기쁨으로 여기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와 같이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는 불러내신 것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불러 주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다.
제사장은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하도록 하시지 않으시고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그 일을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 나오라 하시지 않으시고 특별하게 한 백성을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그 모습을 통해 그들이 누리게 될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과 복을 보고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열방이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구별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특별하게 구별된 백성,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서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보호하심을 받고 지키심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가의 여부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땅과 바다를 다스리십니다. 온 나라를 하나님은 애굽도 다스리시고 이스라엘도 가나안도 다스리십니다. 시간을 다스리십니다. 이스라엘의 과거도 다스리시고 현재와 미래도 다스리십니다. 세계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입니다. 세계를 소유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지금 광야 생활이 힘들어도 이것만 생각하면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우리 삶에 고난이 있어도 이 축복으로 능히 이깁니다.

내게 들으라
세계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 세계를 소유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선다면 무엇부터 하여야 할까요? 우리 눈이 감히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하나님의 옷자락도 만질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를 원하노라"(시 81:8).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이 곧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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