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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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10-07-03 18:19:15, Hit : 1561
File #1    sm20100704가장_값진_생의_의미.hwp (18.0 KB)   Download : 130
Subject   가장 값진 생의 의미

가장 값진 생의 의미(골로새서1:24-29) 2010.07.04.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행복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좋은 환경 때문이라고 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났기 빼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유를 달리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후에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자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유인입니다.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껏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 자유인! 바로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죄와 사망, 이기심, 욕심과 욕망, 낙심과 낙망과 절망과 좌절, 사탄과 율법,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부터 온전히 자유한 영혼, 그것이 바로 구원이며 진정한 행복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도 모릅니다.
불행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불행하다는 걸 끝내 모릅니다. 그건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참 자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부자유하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참 자유를 모르는 자는 참 불행이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지금 부자유한 가운데 있다는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는 그런 부자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것은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아는데 있고, 또한 그 자유를 지켜 가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다시 어디에 메이지 않고 그대로 잘 지켜가야 하고 또 나아가서는 자유를 누리는데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자로 자유를 누려 갈 수 있어야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이 보다 더, 더 중요한 행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이 자유를 기쁜 마음으로 내려놓는 자유, 반납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자유롭게 포기하는 바로 그 자유가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끔 스스로 자기에게 속을 때가 있는데 극히 제한적인 자기의 자유를 어쨌든 벗어나 보려고 스스로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럴 때가 많습니다. 결국 철이 나고 보면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자유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나 됨이 벌써 많은 사랑을 받고 은혜 속에 내가 있었음을 내가 압니다.

여러분, 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이것도 사실은 백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 하나만도 백만 분의 일에 해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기적이요. 또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도 기적입니다. 내 마음대로 한 일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내가 부모를 선택하거나 시점을 골라서 태어났나요?  내 의지가 그 어느 곳에 작용한 것 있나요? 낳아 주어서 나왔고, 키워 주어서 컸고, 이 세대 이 현 시점에 그냥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내 자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이 들면 모름지기  깨닫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요? 마음대로 울고 웃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거든요. 나 하나의 기분에 따라서 여러 사람이 좌우 될 수 있습니다. 나 하나의 말실수로 인해서 엄청난 사람이 상처로 아파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을 떠나면 유언을 하는데 "이제야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에게 심지어 자녀들에게까지 이웃과 교회에 많은 신세를 져서 그 어느 하나 제대로  갚지 못하고 빚진 죄인으로 가노라." 진실한 말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너무 많은 신세를 졌기에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그것이 인생이요 그것이 나 자신입니다. 또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 은혜의 사슬에 내가 붙들려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 과거를 생각해 보세요. 어느 하나 버려진 사건이 있습니까? 내가 병들었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던 것이고 사업에 실패해서 궤도를 수정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건마다, 삶에 등장하는 현실 전부가 하나님의 오묘한 사랑이요, 섭리요, 경륜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무엇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벌써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와 나의 나됨과 나의 사역! 나의 살아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큰 사랑 그 속에 있었음을 내가 오늘도 깨닫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0절에 '내가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보살피십니다.' 라고 햇는데 바다 끝에 가서 있을지라도, 그 어디에 가 있던지 벌써 하나님은 그곳에서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계속 간증하며 이 사랑을 확인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존재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나는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포로가 된 나 자신,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가 내 죄를 이미 사하시고 나를 구속하셨다고. 벌써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 좀 더 나아가서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 나의 나 됨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라.' 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말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노라.'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까 길리기아 다소에 태어났다는 사실, 출생에서부터 오늘까지 도대체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가 하나님 은혜요. 그때부터 선택되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게는 아무 자유가 없고 오직 은혜 안에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것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말합니다. 이렇게 은혜로 태어났고, 이렇게 은혜로 살았고,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내가 이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하며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아무리 수고해도 자랑할 것 없고 아무리 희생을 해도 아무 자랑도 없는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이것이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다시 오늘 이 본문에서 생각합니다. 그는 참으로 진실했고, 겸손했고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오늘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그때에 되어졌던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고 실패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으며 그때에 배신당한 것도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하나하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비밀 속에 자신이 있음을 압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나도 힘써 수고하노라.' 큰 경륜 속에 내가 있음을 알고 수고하노라. 그 경륜에 포로 된 나, 하나님의 선택받은 나를 생각하고 이제는 내가 그 은혜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내 자유를 반납해 버립니다. 옛날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어진 자유를 완전히 반납해 버리는 그 자유, 거기에 영광이 있는 것이에요. 인도에서 한 평생을 수고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리 존슨 박사라고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 선교사 한 평생 선교 사업을 위해 수고하고 말해준 간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체험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를 걱정케 하고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많지만 이 모든 불안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은 자유합니다.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기쁜 것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신비로운 기쁨이기 때문에 왜 내가 기쁜지, 그 기쁨이 가슴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설명할 수가 없는데 성령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그리스도인은 체험합니다.

세 번째는 고난을 체험합니다.
신앙 생활할 때에 일이 잘 되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꾸 어려운 일이 닥칩니다. 스탠리 존슨 박사님은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순수한 믿음 가지게 하기 위해서, 버리지 못하는 것 버리고, 끊지 못하는 것 끊고, 게을러 빠질 때 부지런하게 하고, 정신 못 차릴 때 순수한 마음 가지도록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에 아주 귀중한, 신비로운 교육적 의미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체험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를 체험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기뻐하고 기뻐하는데 이것은 자신에게 주신 경륜을 아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데 있는 것이지 한평생 수고해도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니기에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고난을 기뻐하고 희생을 즐기게 되고, 고난 당할수록 더 기뻐하는 것이요,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최상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극치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됨이 은혜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가장 갚진 인생은 섬김에 쓰여지는데 있습니다. 아직도 섬김에 쓰여질 요소가 많다면 그것이 고마운 것이기에. 가장 값지고 귀한 생의 의미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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