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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9-07-25 13:07:10, Hit : 1671
File #1    sm20090726내_신앙은_얼마나_건강한가.hwp (64.0 KB)   Download : 137
Subject    내 신앙은 얼마나 건강한가?(에베소서 3:14-21)
내 신앙은 얼마나 건강한가?(에베소서 3:14-21) 2009.07.26.

몸이 아파서 병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잠에 깊이 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통과의 싸움과, 자신과의 싸움과 여러 가지 번뇌와 후회와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섭섭함 등으로 정신적인 안정을 갖기가 쉽지 않아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습니나.
많은 고생 끝에 겨우 잠이 들려고 눈을 감게 되었을 때 간호사가 와서 검사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채혈하거나 혈압과 맥박을 재기 위해 겨우 잠든 잠을 깨울 때가 있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고 깨우기도 하고, 어렵게 잠들려고 하는데  목회자(목사님이나 전도사님)가 성도들과 함께 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게 되고 잠을 깨우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다 지나가고 이제 막 잠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수면제 먹으라고 잠을 깨우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 의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병을 직접적으로 주도적으로 고치시는 의사는 하나님이고, 목회자는 간호사이며, 환자의 회복을 위해 큰 도움을 주는 약은 신구약 성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도 많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성격적, 인격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잠시 몸이 불편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되어 회복될 수가 있지만 회복이 안 되는 상태는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공동체에 큰 부담과 아픔을 주게 됩니다. 신체보다도 더 큰 아픔은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성격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들 가운데,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지도자들 가운데 건강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교회와 교인들을 어렵게 하고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리차드 칼슨이라는 사람은 무려 십년 동안을 스트레스 치유 상담가로 활약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의 스트레스라고 하는 고민을 위해서 상담역을 한 그런 분인데 그가 십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동일한 증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들은 자기만 그런 줄 아는데 이 전문가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렇게 한결같은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든가 자기가 처한 처지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는 자기가 원하는 것, 가지지 못한 것, 가지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거기에다가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욕망 지향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의미, 가진 것의 소중함은 아랑 곳 없고 가지지 못한 것, 저 앞에 있는 욕망, 그것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살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것이 병이요 병의 원인이고 불행의 원인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세요. 나는 어느 쪽에 속했나, "이것만 바라는 대로 되면 나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것만 이루어지면 나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것만' 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이루어졌어요. 그러면 또 방향을 옮깁니다. 또 "저것만 이루어지면." 또 그 다음 "또 이루어지면" 이렇게 한 평생 원망과 불평 속에 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만 이루어지면', '이 하나의 소원만 이루어지면 아무 소원도 없겠습니다' 그 사고방식이 그게 바로 불행의 씨가 되기 되고 불행의 뿌리입니다.

버틀란트 러셀은 그의 행복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힘을 겸허하게 평가하고 자기 자신의 힘과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어 평가하고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 성공에 놀란답니다. '아, 나는 이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어떻게 내게 이런 복이 왔나?' 자기 앞에 이루어지는 그 일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놀라면서 삽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자기를 스스로 높이며 사는 사람은 실패에 대해서 놀라며 산다는 겁니다. '어떻게 내 앞에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내게 이런 불행이 있단 말인가?' '내 존재가,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나?'그러면서 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체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며, ‘자녀들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느냐?’ 하는 질문에도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인사할 때에 가장 중요한 인사말이 ‘건강하십시오’ 라는 인사인 것을 보면 무엇보다도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하면 여유가 있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도 건강만 하다면 그것만으로 사회와 가정을 위해 크게 봉사하는 일이 됩니다. 가정에서 내가 건강하면 온 가족에게 여유를 주고 기쁨을 줍니다. 식구 가운데 누구 하나가 병들면 온 집안이 우울합니다. 병든 사람만 불행한 것이 아니고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어떤 것을 먹어도 좋습니다. 차가운 것을 먹어도 좋고 뜨거운 것을 먹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은 가는 감기 오는 감기 모두 다 걸립니다. 어쩌다 찬바람 한번 스치면 콜록거리고 콧물 흘리고 야단입니다. 툭하면 신경질을 내고 자기 아프고 남까지 괴롭힙니다. 이것은 모두 허약해서 그렇습니다.

어느 의사의 말이 “건강한 사람은 위가 손바닥만큼 두툼해서 어떤 것을 먹어도 잘 소화시키는데, 신경질적인 사람은 종잇장처럼 얇아서 무엇이 들어가면 발끈하고 화를 내고, 화가 지나치면 위천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허약해서 휘청휘청하면 온통 문제투성입니다.

건강의 비결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결국 적당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그리고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건강의 75퍼센트가 정신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한다고 뛰어보아야 그것은 25퍼센트 범위에 속하는 것이고 75퍼센트가 마음의 건강, 정신 건강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건강에는 외적 건강이 있고 내적 건강이 있습니다. 모든 병은 외적 건강을 잃어버리는 대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내적 건강을 잃어버리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신 건강이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정신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면 육체적 건강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말은 속사람이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속사람의 건강이 우선입니다. 속사람의 건강은 오직 경건에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거룩합니다. 거룩함, 경건함, 그 속에  건강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떠나서는 건강이 없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성경말씀은 구체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절)" 성령이 능력을 공급할 때에 비로소 강건하다고 확실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내적 건강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육체적으로는  건강치 못한 사람이었지만 내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에 그 불편 한 몸으로도 순교할 때까지 건강을 지켜 일할 수 있었으며, 오늘 본문에서는 속사람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이란,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따르던 단지 무병하거나 허약치 아니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양호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병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건강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건강하고야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에 육체도 따라 건강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 함 헤셀이라고 하는 학자는 산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함, 경건함, 그 속에 건강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경건이 없는 건강이라면 몸부림이요 발악입니다. 거룩함 속에 진정한 건강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떠나서는 건강이 없습니다. 신약적인 경건이란 성령 충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속사람과 겉 사람을 구분 짓습니다. 비록 겉 사람은 세월과 함께 후패해져 갈지라도 속사람은 복음 안에서 날로 젊어지고 싱그러워진다고 바울 사도는 말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속사람이 강건하다는 말을 '건강한 인격'을 말합니다. 칼  융(Carl G. Jung)이라는 심리학자는 '존재에 대해서 개별화된 의식을 가진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라고 '존재의 개별성'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요즘 소위 신세대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들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보지 않고 자기 나름의  자기주의가 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 잘  살고 나만 부자 되겠다는 '이기주의적 개별성'과는 다르고 남과의 비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건강한 인격체가 못됩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남한테 질질 끌려 다니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각기 개성이 있고 장단점이 있다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좋은 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비굴의 노예가 되고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병든 사람들이고 건강한 사람은 존재를 개별적으로 생각하여 남과 비교하지 아니하고 항상 개별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방황은 잘못된 자기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부정적 자아형성의 배후에는 상처받은 자기 이미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나의 이웃들은 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의 물음보다 더욱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자아인식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자아인식에 대한 서로 상반된 두 개의 가치관이 존재하고 있는데 하나는 비교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의식입니다. 비교의식은 부정적 자아형성에 기여하고 창조의식은 긍정적 자아형성에 기여합니다. 모든 부정적 자아형성은 끊임  없는 비교의 갈등에서 빚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외모와 내 외모를 비교하는 것을 시작으로 환경이나 출신이나 지식이나 재능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하는 자기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집니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자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반항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반면에 창조의식을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로 나와 유사한 다른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나는 누구를 향해 질투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나를 나답게 지으신 하나님은 내가 걸어야 할 나의 삶의 모습을 작정하시고 이를 위해 내 생애 속에 활동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나의 독특성, 나의 유일성을 독선의 차원이 아니, 창조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받아드립니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나의 나다운 모든 상황과 존재의 모습을 사랑하고 수용합니다.

긍정적인 자아형성을 위한 세 가지 절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소속감의 문제로 “나는 받아들여지고 있는가?”의 물음이고 둘째는 가치감의 문제로 “나는 요구되고 있는가?”의 자기 가치에 대한 물음이고, 셋째는 신뢰감의 문제로 “나는 할 수 있는가?”하는 자기 능력에 대한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자아용납이 없을 때 우리는 소외감, 열등의식, 피해의식의 늪 속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롤로 메이(Rollo May)라는 심리학자는 건강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란 수용성이 큰 사람, 즉 마음이 큰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은 마음이 항상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누구의 이야기도 잘 듣습니다.  다 받아들이고 다 수용하며 좀 더 깊이 사고하는 사람, 그가 바로 건강한 속사람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인격은 건강한 영혼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속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속사람이란 믿음으로 거듭나 새롭게 창조된 자아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마다  '죽겠다, 망했다,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항시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입니다. 이런 사람 인격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왜 죽고 망하는 얘기만 하는 것입니까? 살고 흥하는 얘기 좀 하면 안 됩니까? 특히 지도자가 이런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큰일입니다.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남을  독려하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항시 소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방을 일으키는 말을 해야지 상대방을 주저앉게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불씨에 기름을 갖다 끼얹어야지 불씨에 찬물을 갖다 끼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건강한 인격은 건강한 영혼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속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속사람이란 믿음으로 거듭나 새롭게 창조된 자아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또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17절)"-그리스도적 신앙, 십자가 중심적인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저희 마음대로 노는 것 같아도 그 마음속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습니다. 장난감 가지고 같이 놀고 친구들과 놀고 하지만 그래도 여기 가까이 우리 어머니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멀리 갔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시간은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계시다' '거한다'하는 말은 헬라어에 두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파로이케오'로 이것은 천막을 친다는 뜻이며 임시적으로 나그네가 거한다는 뜻이고,  또 하나 '카도이케오' 라는 말은 영구 거주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계시다는 말은 카도이케오를 말합니다. 주께서 우리 마음에 영원히 거주해 계셔야 된다, 그래서 그가 주인이  되시고, 그가 목적이 되시고, 그가 주도하사고 해야 내가 건강하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을 다스릴 때에 나는 건강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건강지수는?
어떤 청년이 차 사고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아서 그만 두 눈, 안구를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게 될 때 의사는 말했습니다. "내가 너무 출혈이 심하기 때문에 수술을 하겠지만 어차피 안구가 다 빠져나가서 눈을 볼 수는 없을 것일세" 하고 말했습니다. 이 청년은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장님으로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지"그런고로 나 수술하지 말아달라고, 이대로 죽을 것이라고, 바락바락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이 사람아, 생명은 소중한 것이야.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지." 그리고 강제로 붙들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며칠 후에 붕대를 풀게 될 때 의사는 말했습니다. "축하하네. 자네는 분명히 실명을 했지만 자네를 위해서 안구를 기증해 주는 분이 있어 눈 하나는 볼 수 있을 것 같으네. 축하하네" 그랬습니다. 또 소리 질렀습니다. "애꾸눈으로 살기보다 죽는 게 낫지." 의사는 크게 책망을 했습니다. "자네를 위해서 멀쩡한 눈을 빼준 고마운 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네. 무슨 망령된 발악인가?" 그러며 붕대를 풀어주었습니다. 뿌옇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점점 점점 밝게 환하게 보이는데 눈앞에 서있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눈 하나가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청년은 여기서 큰 감격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저는 한평생 절대로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감사한 이 감격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이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건강지수는 얼마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는 얼마의 건강이 있습니까?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주께 바쳐버리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사랑을 확인하세요. 그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사랑을 확인하고, 병들면 병드는 대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할 때 ,그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하게 은혜로 충만하게 될 때, 삶 자체가 소중해지고 세상도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속사람이 건강해 지는 순간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게 됩니다. 지식에 넘치는 사랑, 분에 넘치는 사랑을 느낄 때에 거기서부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 건강이 있습니다. 사랑을 느낄 때에, 사랑을 행할 때에, 사랑에 대한 바른 응답이 있을 때에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건강할 때에 많은 사람에게 건강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건강할 때에 참아줄 수도 있고, 사랑을 베풀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 모두에게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이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사회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마치 항아리가 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항아리의 깨진 조각들이 서로 찌르고 서로 괴롭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항아리,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항아리가 개어져서, 그 조각들이 서로 찌르고 서로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현대인들은 어린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할 것 없이 사랑 실조에 걸려서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사랑 실조에 걸려서 심각하게 앓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실조에 걸려서 중병을 앓고 있는 이 시대와 이 사회 속에서 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복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제시해 주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와 이 사회 속에서 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복된 소식이며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시대와 이 사회 속에서 교회가 교회의 자리를 바로 지키면서 복된 소식을 전하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를 제시해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 보면,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가족이 된 나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건강하고 성숙한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기도하고 있고 두 번째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며 사랑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으며 셋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무엇보다도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속사람'이란 '겉 사람'에 대조되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을 '겉사람'이라고 하고 '속사람'은 '겉 사람'안에 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겉 사람이 아니고 우리의 속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마음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우리가 참된 신앙을 갖기 전에는 우리는 모두가 겉 사람에게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용모, 인기, 명예, 재물, 권력, 학력 모두가 겉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는 겉 사람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가 등 그 사람이 가진 그 무엇에 의해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이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겉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큽니다. 겉으로 보아 화려하게, 보다 크게, 보다 능력 있게, 보다 위엄 있고 보다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서 많은 가면을 씁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면을 쓰면 쓸수록 보다 나은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황폐해지고 마음에 참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속사람에 있으며 우리의 속사람이 좀 더 강건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보면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을 마음에 숨은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강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속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어느 날 인생의 석양을 앞에 두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은 겉 사람에게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겉 사람에게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그 겉 사람이 사라질 때 그의 모든 희망도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멸의 속사람에게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면, 겉 사람이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영원한 가치와 의미들이 점점 더 무르익어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이 속사람에 의해서 사람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겉 사람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내 속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 이것은 속사람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얼마나 순결해져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인격을 더 닮아 가는가?"이러한 속사람에 대한 관심과 속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래 육체적으로는 건강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건강해서 그 불편한 몸으로도 순교할 때까지 건강을 지켜 일할 수 있었으며, 오늘도 본문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건강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건강하면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어떤 환경도 잘 적응하고 어떤 음식도 잘 먹습니다. 내가 건강하면 온 가족에게 여유를 주고 기쁨을 줍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 가운데 누구하나가 병들면 온 집안이 우울합니다. 여유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병든 사람만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내가 건강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정에 평강과 기쁨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건강의 75%가 정신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등산도 하고, 이런 저런 운동을 하며 뛰어 다녀도 그것은 25퍼센트 범위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75퍼센트가 마음의 건강에 달려있습니다. 정신건강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 잠언 4장에 보면 건강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네 마음속을 지키라 이것이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세계 보건 기구도 건강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건강이란 단지 무병이라든가 허약치 아니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양호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병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건강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에 육체도 따라서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영적으로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속사람의 건강이 우선입니다. 속사람을 아름답고 강건하게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든지, 또는 자기 성찰에 힘을 쓴다든지 또는 극기 훈련으로 수양을 쌓는다든지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6절에 보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속사람의 건강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습니다.

본문은 또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본문 17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고 내 마음을 다스릴 때에 속사람이 건강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자기 마음대로 마음껏 노는 것 같아도, 그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습니다. 장난감을 만지며 정신없이 놀고, 친구들과도 정신없이 노는 것 같지만 그 어린아이 마음속에는 어머니가 내 옆에 가까이 있다 하는 것을 의식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정신없이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가도, 순간 내 옆에 가까이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거나 또는 어머니가 멀리 갔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때부터 장난감도 친구도 버리고 어머니를 찾으며 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의식하며 살 게 될 때 속사람이 강건해 집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 영혼의 필요를 아셔서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므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의 속사람은 더욱 강건해지며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깨닫기만 하면, 주님의 사랑에 감격이 되기만 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저절로 살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를 깨달으셨습니까? 성령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거룩한 마음을 지니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하게 됩니다.  "내 신앙은 얼마나 건강한가" 그 건강을 재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나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만큼,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는 만큼,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해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무로 비유하고 건물로 비유합니다. 나무는 뿌리는 깊게 내려야 튼튼한 좋은 나무가 됩니다. 건물은 터가 단단해야 창수가 나고 비바람이 쳐도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집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사랑가운데 뿌리를 박고 기초를 놓아야 속사람이 강건해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방법을 본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에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강건한 성도들이 되어서, 내가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채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강건하면 어떤 성도가 됩니까?

첫째,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하는 성도가 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도와 성도들이 놀라도록 능력있게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기 전에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한 사람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었습니다.
  사도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3년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허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다 보고 체험했지만 그는 허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고 십자가가 다가올 때에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고,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 앞에서 나만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장담했지만, 비겁하고 비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충만하게 되었을 때에 사람이 달라져 새로운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됩니다. 마침내 깨끗한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삼천 명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담대하게 삽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베드로는 강건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두 번째,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면,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자족해가는 생활을 하는 성도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며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한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자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혼부부에게 꼭 권면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 자족하며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다. 거기에 참 행복이 있다고 합니다. 자족하며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면,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는 인내의 성도가 됩니다. 골로새서 1장 11절에 보면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한 성도가 되면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어 가게 됩니다. 성도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 소망으로 속사람이 강건한 성도는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는 인내의 성도가 됩니다.

네 번째,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면,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쁨을 맛보는 성도가 됩니다.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체험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체험은 신앙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없이는 온전한 회개도 어렵고 온전한 헌신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계속 성장하는 데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순간 순간 깨닫고 또 깨닫고, 그럴 때마다 속사람은 건강해집니다. 사랑을 느낄 때에, 사랑을 행할 때에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내가 있는 곳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넘치게 할 때 속사람이 강건해 집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야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야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힘입어 자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야 산 소망 안에서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며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사랑받는 기쁨을 누리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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