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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5-02-22 18:52:38, Hit : 1064
Subject   2004년 내게 주시는 말씀(5) 복음 안에서의 교제빌1장1-6)


















 

2004년 내게 주시는 말씀(5) 복음 안에서의 교제(빌1:1-6) 2004.02.11.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관계만 있고 교제가 없는 인간관계는 아무 생명력도 없고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고 비젼도 없습니다. 관계와 함께 따뜻한 마음과 깊은 인격적 교제와 영적교제와 꿈과 비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모두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역별로 이루어지는 모임들도 모두 교회 행사의 일환으로 되어지는 모임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는, 즉, 주님의 복음을 중심으로 되어지지 않는 모임은, 개인적인 친목일 뿐 교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며, 복음을 통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교제가 이루어질까요? 그리고 이루어져야 할까요? 세상의 모임들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 교회의 모임이며, 교제입니다.




우리 성도의 교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눔


우리들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형제나 부모입니다. 성도들의 관계는 혈연지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혈연지간 이상으로 맺어진 것이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하나 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혼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연적인 관계 이외에는 남남이지만, 성도인 우리들은 복음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의 일처럼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친구라고 했고, 바울도 성도들이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을 함께 나누는 지체라고 했습니다.




2. 물질적인 나눔이 있음


나눔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근심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나 물질적인 도움을 이야기하면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누가 힘에 겹도록 또는 자기 자신을 내어놓으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물질적인 나눔이 성의 있게 모아서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체의 도리입니다.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했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이 결여된 나눔은 허구에 불과한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위로의 말이나 격려, 권면이 필요한 때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며, 또한 그러한 도움이 정말로 필요한 것임을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가 도움으로 교제할 수 있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교제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생각 때문에 실망하고 인간관계가 깨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고 있습니다. 성도는 다른 사상이나 인간적 매력이 아닌 복음을 기초로 한 교제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교회를 통해 만족하고 유익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으로 구하는 기도


바울은 언제나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항상 기뻐하는 것은 그들과  컷 날부터 복음으로 교제함을 인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도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시작하셨으므로 반드시 예수의 재림하실 때까지 성도들의 신앙을 지켜 주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항상 바울과 같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참여하는 열심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성도들에 대한 사랑의 증인이 되심을 증거함으로써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확증했습니다.




(예화) 저 분 참 대단한 분/이른바 통이 큰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이 크다는 것은 사소한 일은 무시하고 큰 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통이 크다는 것은 이런저런 모든 환경과 일에 모두 잘 적응하는 분을 말함입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큰일에도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는 분들을 일컬음입니다. 대범한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다.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말이 들어와도, 다듬지 않은 돌처럼 상처 주는 말이 들어와도 같이 맞닥뜨리지 않고 스폰지처럼 충격을 흡수해서 서로 다치지 않고 두터운 장갑으로 감싸 안는 사람입니다. 유리와 유리가 부딪히면 깨어집니다. 돌과 돌이 부딪히면 부서집니다. 날카로운 말에도 부드럽게 쿠션을 펴세요. 대범한 마음이 되도록 애쓰세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여기 ‘착한 일’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속 사역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이루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구속 사역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 일을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1. 복음 안에서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립보 교회가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회'가 되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교회'가 된 까닭은 바울 사도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첫날부터 편지를 쓰고 있는 이제까지 시종일관 복음에서 빌립보 교회가 교제함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에서 교제했다'는 말씀(헬라어 '에이스 토 유앙겔리온')은 기도하고 헌금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사도의 복음 전파에 동참하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주던 첫날부터 감옥에서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는 이제까지 빌립보교회는 바울 사도와 한 마음 한뜻으로 복음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생각할 때마다 그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위하여 기도할  때,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 사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되 공동전선을 형성한 진리의 공동체였습니다. 루디아를 봅시다. 그녀는 복음을 들었을 때, 중대한 결단을 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바울이 속한 하나님의 가문으로 과감히 국적을 옮깁니다. 이후로 하나님의 일은 바로 루디아의 일이 됩니다. 바울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루디아의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히 선포합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이런 루디아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루디아를 위하여 기도할 때 기쁨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빌립보교인 간수에 있어서도 이 중심은 동일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가 구원의 길을 복음을 들었을  때, 온 가족이 그 말씀을 따라 세례를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시민의 의무에 곧장 들어갑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사도의 아픔과 고난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됩니다. 주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말씀입니다. 삶의 방식이 변화합니다. 


 - 1. 때리고 비난하던 자가 그 맞은 자리를 씻깁니다. 


 - 2.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으므로 국적을 바꿉니다. 


 - 3.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아직 중한 죄수로 갇친 죄수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대접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생사를 나누려고 결단한 것입니다.


 - 4.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이런 빌립보 간수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빌립보 간수를 위하여 기도할 때 기쁨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의 진리에 대한 열정은 바울과 온전히 한 마음이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와 복음 사역에서 완전한 공동전선을 형성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사역이 바로 빌립보 교회의 사역이요, 바울 사도의 옥에 갇힌 사건이 바로 자신들의 아픔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 사도의 옥에 갇혀 있는 동안 복음에 더욱 열정을 쏟았습니다. 빌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빌립보 교회가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회'가 되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교회'가 된 까닭은 이와 같이 바울 사도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첫날부터 편지를 쓰고 있는 이제까지 시종일관 빌립보 교회가 복음에서 공동전선에 서서 교제함 때문입니다.




2. 함께 은혜에 참예하였기 때문입니다


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십니다. 그 은혜 안에서 착한 일 곧,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회'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교회' 이루시는 것입니다. 




3. 부족함을 채우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4:15-16)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함을 아시고 아담 곁에 여자를 처음 두셨습니다. 돕는 배필로 세우셨습니다. 아담의 부족함을 채우기 원하셨습니다. 모세가 언변이 약할 때, 아론을 돕는 자로 세우십니다. 바울이 건강이 약할 때, 의사 누가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에 순종하는 빌립보 교회 또한 부족함을 채워주는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필요를 찾아 이 땅에서 아름다운 사역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바울 사도의 부족함을 채웠습니까? 사도 바울은 위대한 믿음의 용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신체적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몸에 가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번을 기도해도 고쳐주시지 않는 병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간질병이라고도 하고 안질이라고도 하는 그 병은 그가 약한 존재임을 늘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확고하게 지원하는 선교단체가 없었습니다. 성격적으로도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가 전해주는 대로 큰 일꾼이었기에 할 일도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9절"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런 바울 사도의 약함을 잘 아는 빌립보 교회는 그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었을 때는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은 사도를 돕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기여하였습니다. 죄 아래 있는 세상은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 중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북한뿐만이 아닙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도 영적, 정신적 결핍은 큽니다.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크고 작은 모든 교회가 이런 저런 일들로 늘 헉헉거립니다.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국가나 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나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부족함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지난 몇 년 동안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구의 1/10이 굶어 죽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만큼이라도 살아남은 까닭은 누군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정신적 공복감으로 저토록 시달리지만 기독교가 아직도 한 귀퉁이에서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우리 고국이 IMF를 당하여 비틀거릴 때,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허리끈을 매었습니다. 




많은 가정이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부족함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의 부족함을 채우는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7-18)




목회자에게도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장로와 권사를 세워 목회자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입니다. 장로의 일차적인 직무는 담임목사와 협력하여 성경과 헌법이 요구하는 당회의 직무를 원만하게 수행하는 일이므로, 목회자와의 협력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직무수행이 거의 불가능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장로는 모세의 견제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돕는 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민 11:16,17> 




권사의 직무는 "교역자를 도와 궁핍한 자와 환난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적어도 장로, 권사는 교회의 사역 (예배, 기도회, 성경공부, 전도훈련 등)에 항상 앞장서서 배워야 하며, 개인 경건의 삶에 힘써야 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염려하는 가운데 언제나 교회에서 돕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빌립보 교회가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회'가 되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교회'가 된 까닭은 1] 복음을 전해주던 첫날부터 감옥에서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는 이제까지 빌립보교회는 바울 사도와 한 마음 한뜻으로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2]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하였기 때문입니다. 3] 빌립보 교회가 부족함을 채우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위하는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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