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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5-02-22 18:51:45, Hit : 1127
Subject   2004년 내게 주시는 말씀(4)성장에의 소망과 비전(빌2장12-14)





더  이상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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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내게 주시는 말씀(4)성장에의 소망과 비전(빌2장12-14)
2004.01.28.







경기도 김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부자집 첩의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은 어려서 부터 남달리 총기(聰氣)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이 첩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희망이 없이 자라났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터 동네에 있는 가까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동네 교회에 나가면서 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그렇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후에는 그의 가치관이나 삶이 이전과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큰 뜻을 품고 교회 목사님의 소개와 주선으로 고향인 김포를 떠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서울 어느 선교사님 댁에. 일을 돕는 식모로 취직하였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남의 가정 일을 돕는 식모였지만. 그의 마음은 날마다 기쁨으로 가득 찬 가운데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미국에서 공부를 다 마친 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여 여자 대학을 세우고 신앙과 학문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분이 누구인지 짐작되십니까? 경기도 시골. 김포의 한 첩의 딸로 태어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기구하게 인생을 마쳤을지도 모르는 한 여성이 동네 교회에 나가면서 부터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어. 정말 수지맞은 분, 바로 그 분은
                이화여전, 오늘의 이화여자대학교를 세우신, 고(故) 김활란 박사님이십니다.







오늘 빌립보서의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처럼 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삶이 변하여 가는 과정, 신앙이 자라가는 과정, 어렵고 힘든 삶에서 진정한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네 가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네 과정이란 이러한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제일 먼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앙생활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이것이 안되고는 신앙생활도 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교회 다녀도 신앙생활의 의미도 없고,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칭의(稱義)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사람이라는, 확신 속에 신앙생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본문에서 말하기를 구원 얻은 자는, 그 구원을 힘써 지키며 그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계속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개인은, 비록 구원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생활해 나아갈 때에, 아직 신앙도 미숙하고 인격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 때로 부딪치며 소리 날 때가 있겠지만, 그래도 모든 일은 신앙적으로 풀어 나아가야 하며 특별히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할 때는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구원 얻은 자들은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하며



넷째, 결론적으로는 항상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삶이 변하여 가는 과정, 신앙이 자라가는 과정을 베드로 사도는 첫째 개인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단계라고 말하고 있고그리고 이어서 둘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 교회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때에 갖추어야 할 신앙적 덕목인 덕, 지식, 절제 그리고 인내의 단계를 말하고 있으며 그리고 셋째로 구원 받은 자들이 교회 밖에서,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경건의 단계를 말하고 마지막 네 번째로 삶의 모든 현실 속에서 결론적으로 항상 기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인애와 사랑의 단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며 그 신앙이 잘 자라가기 위하여,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로, 첫 번째로 주신 말씀은, 12절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얼핏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의 개념은 3가지가 있는데, 과거적 구원, 현재적 구원 그리고 미래적 구원이라고 하는 3가지 구원 개념입니다. 과거적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몰랐고 예수님도 몰랐을 때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살다가 어느 날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은 것, 바로 이것을 가리켜 과거적인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나는 구원 받은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구원받은 나의 내면이나 나의 생활을 돌이켜 볼 때에 어떻게 보면 구원받은 자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형편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구원받은 것은, 이미 다 받은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 나는, 과거에 회개하고 예수 믿어 얻게 된 그 구원을 열심히 지키면서, 오늘 이 시대 속에서,  믿음 생활을 잘 해 나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바로 이것을 가리켜서,  현재적 구원, 그리고 미래적 구원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만일 과거에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현재의 삶의 현실 속에서 현재적 구원이라고 하는 면을 계속 지키고 그리고 나의 신앙을 두렵고 떨림으로 자라가게 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나는 이미 얻었던 그 과거적 구원까지도 아마 잃어버리고 말아 결국은 미래적 구원, 종말론적 구원이라는 것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이런 사람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어느 시점에는 그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여 구원 받고 한때는 정말 열심히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였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믿음도 희미해지더니 봉사하는 모습 까지도 희미해지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완전히 희미하여져서 안 믿는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되어, 저 사람이 언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이었던가, 언제 저 사람이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였던 사람이었던가 몰라볼 정도로 이제는 완전히 변해버린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는 간혹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두 번째로, 과거에 구원받은 사람이 두렵고 떨림으로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을 이루어 나가면서 교회 공동체 속에서 가져야할 자세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신앙의 색깔이나 신앙의 정도도 다 같지 않습니다. 직업도 다양합니다. 취미도 다양합니다. 학벌도 다양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어울려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중심이 있어야 하고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는 때로 그 중심이 없을 때에는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신앙생활하면서 함께 봉사생활을 해 나아가려면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개인의 신앙을 보호하고 성장하게 하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원망이란 계속 중얼거리며 불평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손과 발로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자신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말 저말 불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시비가 없이 봉사하라는 말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투며 경쟁하면서 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봉사를 경쟁하는 자기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안되고,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의 자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로서 믿음의 결과로서의 봉사생활을 하나님을 향하여 해 나가고, 또 수평적인 관계로서 믿음의 결과로서의 봉사생활을 이웃을 향하여 해 나가되 이 부분에서는 원망이나 시비가 없이 봉사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과거에 이미 얻은 구원을 현재와 미래에 계속 이루어 나아가면서 모든 일은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흠 없이 순전하게 살아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샘솟는 기쁨을 축복으로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비록 어디에 있든지 그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또 어떤 형편에 놓여 있든지 그러한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고 



신앙이 주는 진정한 축복, 항상 샘솟는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풀이 자라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우듯이 우리 사람들도 자라서 어른이 되어갑니다. 생물들과 사람들의 성장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에 따라 본능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의지를 따라 성숙하면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이것은 변경될 수 없으며 또 취소될 수 없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또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루라고 하는 구원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거는 기대를 따라 성숙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된 우리는 아이가 젖을 먹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밥을 먹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밥을 안 먹고 계속 젖만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릴 것이고,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는 것은 아이가 나이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며 자라 가듯이 우리가 신앙의 연령에 맞게 변화를 도모하며 성숙해 가라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입학하면 그 아이에게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요구됩니다.



이런 요구 앞에서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려면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요구됩니다. 







이런 의지적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성숙해 가는 사람 곧 "구원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지적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 가면서 부모님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거는 기대는 많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의 기대가 저절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굉장한 의지적 결단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지적 결단을 내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일생을 사는 동물이나 식물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식물이 하나님의 기대를 따라 새싹을 내고 꽃을 피워가듯이 이 시간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어떠한 것이든지 그 기대에 부응하여 구원을 이루기로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숙을 향하여 도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새로운 결단을 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결단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도 손해이지만 그 소원을 가지게 하신 하나님도 손해이며 또 하나님의 마음이 몹시 아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비젼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비젼이 크면 하나님의 능력도 크게 나타나고, 비젼이 작으면 하나님의 역사도 작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그릇인 비젼도 크기에 제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의 약속



희망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에 기대를 간직하는 것입니다. 등잔불은 희망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불빛은 자그마하고 약하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데 충분하고, 따뜻한 온기는 차가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듭니다.







은은한 불빛에서 건조한 생각은 부드러워지고 온정마저 샘솟습니다. 황무지처럼 절망이 깊어 가는 마음에 등잔불 정도의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언제나 더 나은 내일은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나를 위해서, 또 하나는 세상을 위해서 희망을 밝혀 주는 따스한 등잔불을 켜야겠습니다.







성장에 대한 소원을 가져야 함



우리가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십니다. 교회의 성장은 우리의 소원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그 계획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에 대해 소원해야 하고,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비젼의 본질은 강력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확신 가운데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뜨거운 소원을 갖고 확신하며 목표를 위해 일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가만히 앉아 기도만 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기도하며 연구하고 계획하며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는 함께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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