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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05-02-22 18:51:06, Hit : 991
Subject   2004년내게주시는말씀 (1)입을크게열라 (시81편10)





묵상에세이: 영혼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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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내게 주시는 말씀(1)입을 크게 열라(시81:10)  2004.01.07.
                







이화여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4년 전,한 음주운전자가 몰던 자동차에 사고를 당해 전신 55%의 중화상을 입었지만 믿음으로 숱한 절망을 극복한 이야기를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신앙고백을 표현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았으며 독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이지선 씨가 신문지상에 독자들을 위한 희망과 사랑이 듬뿍 담긴‘신년 편지’“당신이 바로 희망입니다”를 소개해드립니다.







200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4년 1월 5일, 오늘을 감사합시다. 현재(present)라는 선물(present)을 주신 분께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내가 착해서, 내가 잘난 사람이라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해서 받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을 정말 감사해야 할 정말 큰 이유는 오늘은 누구에게나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제가 중환자실에서 죽음과의 전쟁 같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곳에 함께 누워 계셨던 한 환자분의 따님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언니는 정말 행복한 거예요…. 그래도 살았잖아요. 저희 아빤 돌아가셨어요.” 제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두 달 여동안 18명의 환자가 그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입니다. 이것은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가장 큰 희망이었습니다. 어쩌면 진리는, 진실은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귀에 닳고 닳아서,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는 그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오늘을 희망으로 시작하여 행복으로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04년은 희망 찾기에 눈이 밝아야 합니다. 어리숙하게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오늘이 오고 또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돼지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외면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 생명을 가진 우리는 너무나 빛나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 귀한 생명을 갖고 살아있으며, 적어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만약 볼 수 없어, 누군가가 이 글을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계신다면, 당신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고, 또한 곁에서 친절히 신문을 읽어주는 따뜻한 사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글을 읽고 신문을 볼 수 있을 만큼,교 육을 받았고 지적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겐 지금까지 공부를 시켜주신 부모님이 계셨을 테고, 만약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당신은 도와주는 다른 손길을 가졌거나, 혼자서도 여기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던 단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2004년 오늘 ,지금, 이 자리를 감사합시다. 지금 당신의 그 자리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답답한 지하철이든, 병원이든, 차가운 길바닥이든, 오늘 당신은 살아 있고, 혼자서도 기계의 도움을 빌리지 않아도 숨 쉴 수 있으며, 걷고, 보고, 말하며,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진 2004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 한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내겐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 빼앗긴 것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정말로 가진 것이 적고 초라하다고 할지라도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것마저 없었더라면…’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감사거리를 가진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향해 여러 방향에서 뻗어진 희망의 빛줄기, 그것을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꿈꿀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은 희망입니다. 정말 큰 희망입니다.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은 있고, 잊지 못하는 과거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에 매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넘어 설 것 넘어서지 못하면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결국은 후회하는 인생 살게 됩니다. 가장 힘 드는 것이 생각을 바꾸고, 보는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현실 속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모든 것, 넘어설 것을 넘어서면 오히려 안 되는 것 같아도 길이 열립니다.







우리의 보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구하는 것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자랑스럽든지 후회되든지,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크게 보고 크게 구하여 크게 이루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은혜가 사모하는 심령들마다 넘치도록,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앞날들이 열려지고, 회복되는 축복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채우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흑암으로 가득한 천지를 빛으로 채우셨고, 혼돈한 천지를 푸는 하늘로 채우셨습니다. 육지를 만드시고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풀로 채우셨으며, 궁창에는 해와 달과 수많은 별들로 채우셨습니다. 물에는 물고기로 채우셨고, 땅에는 각종 곤충과 짐승으로 채우셨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옮긴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네 입을 넓게 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입을 넓게 열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으니 무엇을 바라는가에 따라 그만큼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3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말씀을 주셨는데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5) 하셨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실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꿈이 있는 자의 몫과 꿈이 없는 자의 몫입니다. 즉 믿음의 꿈이 크면 큰 만큼 하나님이 만족케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부정적 생각과, 비생산적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족케 하시는 은총은 입을 넓게 여는 자의 몫입니다.







큰 그릇을 준비하라
                



인격을 일반적으로 표현할 때 그릇이라 합니다. 그릇은 큰 그릇 작은 그릇으로 구분 합니다. 그것을 인격으로 바꾸어 말하면 넉넉한, 그러면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큰마음을 가진 사람을 큰 그릇이라 합니다. 그러나 속이 비좁고 이해력이 없고 편견과 아집에 길들여진 사람을 종지 같다고도 표현합니다. 경상도 말로 종지, 사발, 대접, 양푼, 옹가지, 버지기(항아리)로 그릇의 크기를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인격과 마음을 두고도 그렇게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할 수 있는 생활의 덕목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도 우리는 경험합니다. 참을 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질 때 그 마음에 하나님이 만족케 하시는 것입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참을 줄 모르는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일상생활에 만족함을 경험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디안 장사꾼에게, 보디발의 아내에게, 그리고 감옥에서 온갖 억울함을 당한 삶을 살았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고 어떤 고난과 억울함도 참아내는 큰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의 총리라는 엄청난 큰 일을 통하여 세계민족을 흉년에서 구원해 내는 큰 그릇이 되어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에게 온갖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사울을 죽일 몇 차례의 기회도 있었지만 잘 참고 견디어 내는 큰 그릇이었기에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은 고난과 역경, 더 나아가 억울한 일도 잘 참고 수용하고 참아낸 사람들입니다.







소인배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릇이 작은, 즉 인격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의 공통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 때 잘 참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에는 극성을 부리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자기 자신과 관계된 일에서 손해될 만한 상황이 전개되면 절대로 참지 못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스스로 만족함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그와 같은 마음에 만족함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만족함은 진정한 만족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시적이며 순간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은 현세적이면서도 영원한 것입니다. 이처럼 잘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 또한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마음에 더욱 만족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릇이란 비워지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란 조금 더 알면 으슥해 지고 싶고, 조금 더 갖게 되면 교만해 지고, 조금 더 높아지면 안하무인이 되고, 조금 더 넉넉해지면 뽐내고 싶어집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와 같은 마음에는 만족함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함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마음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끊임없이 교훈하셨습니다. 높아지려 하지 말라. 섬김 받으려 하지 말라. 받으려고 하지 말라. 오히려 낮아져라. 섬기라. 주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것, 섬김으로 섬김 받는 것,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 이것이 기독교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만족함은 여기서 절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의 축복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여는 드림이 되고, 이웃을 향하여는 베풂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함이 없는데 어떻게 감사헌금을 드립니까? 돈이 아까운데 어떻게 십일조를 드립니까? 육신생활이 우선이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경우를 두고 거룩한 얌체라고 합니다. 은혜 받고 입을 닦아버린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대패쟁이라고도 합니다. 은혜 받고 감사함을 이런 저런 이유를 앞세워 감사함을 깎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거룩한 미용사도 있습니다. 거룩한 미용사는 감사하고 싶어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 몸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일한 만큼 만족케 하십니다. 씨 뿌리지 않고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일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르지 않고 정상에 이르는 등산객은 없습니다. 달리지 않고 월계관을 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받을 수 없습니다. 헌신하지 않고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선교하지 않고 세계의 복음화는 요원합니다.







오늘날 부요를 누리는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으로 부자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적인 지위를 좋게 가진 자들이 얼렁뚱땅해서 그런 자리에 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목회도 교회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의 항존직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아침에 그냥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신임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서 그만큼의 일을 했기에 그만한 거룩한 직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귀한 직임을 얻고 난 후 오히려 직분을 받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경우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아름답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상 믿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고난과 역경도 참아내고, 어떤 자리에 이르렀든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겸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위한 베풂의 삶을 실천하면서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은 영원토록 만족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입을 넓게 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채워지는 만족은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앞으로 더욱 정진함으로 교회는 부흥하고 평안하며 성도들의 범사는 영육의 축복을 노래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창세기 13장 14,15절) '너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내가 네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먼저 꿈으로 소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눈으로 바라보는 그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원한 바가 분명한 꿈으로 미래를 마음속에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는 꿈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채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입은 우리들이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입을 닫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채울 수가 없습니다. 죄악의 빗장을 회개로 뽑아버리고 뜨거운 소원과 아름다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한 꿈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채우십니다.







영혼이 잘되게 채우시고/ 범사에 잘되게 채우시고/ 강건하게 채우시고/ 생명으로 채우시고/ 승리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원하시며 말씀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인은 공포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권고합니다. 공포 가운데 찬양하는 것, 이것이 장막절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곧 애굽에서 막 해방되어 나오고 광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원했던 것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채우리라." 광야 가운데서 건강한 공포에 사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입을 넓게 여는 것이었습니다. 입을 넓게 여는 것을 주석가들은 '찬양'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을 입을 열어 찬양할 것을 명령합니다. 또는 찬양하는 자들에게 "내가 채우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채우실까요? 주석가들은 말합니다. 승리의 노래로 채울 것을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포 중에서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은 언젠가는 그 입에서 승리의 노래가 터져 나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승리의 노래로 가득 찬 입을 또 다른 것으로 채우실 것을 마지막 절에서 약속하십니다.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물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광야 40년 동안 공포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시편 기자를 통하여 장막절 절기에 광야의 공포를 안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또다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 예배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 예배하는 자는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건강한 공포 가운데서 하나님께 입을 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는 새롭게 채우리라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장막절 축제 때 되어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참 예배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도 건강한 공포, 합리적인 공포가 필요합니다. 아니 우리는 우리의 합리적인 공포를 되찾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름답게 건설적으로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리는 참 예배의 삶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환경 가운데서 그 두려움을 안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면 놀라운 것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채워주십니다. 곧 두려움과 찬양과 희망을 안고 우리는 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삶을 하나님은 놀라운 것으로 채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둥지에 있는 어린 새가 입을 열듯이 하늘을 향해 여러분의 입을 열기 바랍니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이 하늘을 향해 비를 바라고 입을 벌리듯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뜨겁게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네 입을 넓게 열어 두려움이 없이, 크게,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할 때에 “내가 채우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10절)







하나님은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텅 빈 공간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가득히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늘의 별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주를 텅 빈 공간으로 놓지 않으시고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바다도 물고기로 채우셨고 하늘을 나는 새들로 채우셨습니다.







충만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텅 빈 공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빈손들도 인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은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으로 채우시고, 신령한 은혜로 채우시고, 평안과 기쁨으로 채우시고 건강으로 채우시고,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시고 물질로도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을 채우십니다. 주리고 목마르십시오. 당신의 빈 잔을 높이 드십시오. 주님이 채우십니다. 당신의 입을 넓게 여십시오.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고백했던 이 다윗의 고백이 당신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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