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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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12-03-25 08:58:57, Hit : 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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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히12:1-3)

어느 젊은이가 나이든 성도에게 좀 더 인내심을 갖도록 기도를 부탁을 하니 그분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주여,이 젊은이에게 아침에 큰 환란을 보내주시고 오후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환란을 주시옵소서” 했더니 이때에 젊은이가 급히 말렸습니다.“아니에요.아니에요.환난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한 것이 아니고 인내심을 갖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잖아요.”지혜가 많은 그 분이 대답했습니다.“아,그런데 인내는 환난을 통해 배우는 법이라오.”환난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는 것이기에 그래서 환난도 기뻐합니다.인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소극적 인내와 적극적 인내입니다.소극적 인내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지,참을 거야!’하면서 속으로 애를 태우고 얼굴이 일그러지는데 이렇게 참으면 그만 한이 맺혀서 가슴에 돌덩어리가 하나씩 들어앉습니다.옛날 할머니들이 그런 말을 하셨지요.“여기 내 가슴에 주먹만한 돌덩어리가 들어있어요!” 물론 그 돌덩어리는 엑스레이를 찍어도 나오지 않지요.성경의 사랑은 이런 소극적 인내가 아니라 적극적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훈련을 통해 성숙한 모습으로 참는 것인데 처음 참을 때는 힘이 들지만 두 번,세 번,네 번 참으면서 ‘내가 이번에도 잘 참으면 더 성숙해져서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당해도 문제없이 이겨낼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인내의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이렇게 자신의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참는 것이 믿음으로 참는 것입니다.인내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일본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주름잡았던 세 인물이 있었는데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어느 날 현자가 그들에게 울지 않는 앵무새를 보여주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제일 먼저 오다는 “울지 않거든 죽여버리자”고 했고 도요토미는 “울지 않거든 울게 만들자”고 했고 도쿠가와는 “울지 않거든 울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는데 그때 이 현자는 도쿠가와에게 언젠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 말하고는 그 앞에 절을 했다고 합니다.그렇습니다.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도쿠가와와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기도하면서 당장 어떤 응답의 결과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매우 성미가 급한 어떤 사람이 도시에서만 생활하다가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그는 난생 처음으로 밭에다 밀을 심었습니다.그는 워낙 성미가 급한 사람인지라 매일 밀밭에 나가 밀이 자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밭에 나가 얼마나 자랐나 살펴보면서 그는 싹이 나오는 것도 더디지만,새순이 자라는 것은 정말 지루할 만큼 더디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물도 자주 길어다 부어 주고,비료도 풍성히 주었으나 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성장 속도는 너무도 미비했습니다.초조한 농부는 기다리다 못하여 하루는 밭에 나가서 순을 조금씩 잡아당겨 키를 키우고나니 확실히 밀은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자란 것처럼 보여서 농부는 만족하여 집으로 돌아갔으나 이튿날 다시 밭으로 나가보니 어찌된 일인지 밀들이 모두 하얗게 말라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그것은,그 밀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그 줄기의 생명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식물은 생명의 근원인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삶의 근거를 두지 않는다면,뽑힌 밀처럼 시들고 말라 버릴 것입니다.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존재입니다. 언제,어디에 있든지,누구와 무엇을 하든지,어떠한 상황에도 예수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관망이나,구경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눈을 팔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걸어갔으나 깊은 바다 물,사나운 파도를 보고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결국에 빠져갈 때 예수님이 '믿음이 적은자여,어찌하여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세상과 죄악에 빠지지 않고 마지막에 승리하게 됩니다.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주신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인내를 가르치는 대표적인 본문중의 하나인데  이 본문은 11장-소위 '믿음의 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1장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다가 승리한 위대한 선배들이 수십 명이 나열되어 있습니다.12장 1절에서도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들 믿음의 선배들의 공통점은 인내했다는 것인데 그들은 오늘날의 우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너무나 어려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선택하고 세상에서 죽느냐,아니면 예수를 버 리고 세상에서 사느냐 하는 이 양자에서 택일해야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서 우리 선배들은 모두 바보 같은 길을 택했습니다.그길은 예수를 선택함으로써,예수를 믿는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게 되고  그 길은 오만가지 고통과 서러움과 핍박과 멸시가 기다리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의 와중에서도 우리의 선배들은 모두 인내하며 승리했습니다.본문에서는 이렇게 많은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 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분에 대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그 분은 예수님입니다.2절 말씀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또, 3절 말씀에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내에서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인내는 "일하면서 참는 인내"입니다.1절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즉,일하면서 인내하고,인내하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우리는 흔히 인내라고 하면 약간 정적이거나 수동적인 의미를 가진 말로 생각합니다.'참는다'라는 것은  문을 딱 닫아걸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고통을 혼자서 삼키는 것을 생각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인내라고 번역된 헬라어"휘포모네"는 그런 정적이고 수동적인 인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이 말은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수많은 악한 사람들 때문에 밤낮없이 시달리면서 고통을 당했지만 주님은 그 모든 사람을 참으시고 그들에게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이것이 바 로 일하면서 인내하는 휘포모네의 바른 의미입니다.사람들이 자기를 반기지 않는다고 해도,그 분은 그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찾아가서 병자를 고쳐 주시며 그들 에게 하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죽음이 기다린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예수님은 자기 몸을 숨기지 않으시고 담대하게,"내가 여기 있노라"십자가를 향한 걸음을 옮기셨습니다.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십자가의 죽으심과 인류의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내의 원인입니다.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그 앞에 있는 즐거움 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라고 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지금은 고단하고,무섭고,끔찍끔찍한 고난의 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슬픔이 몰려올 때 베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것은 인내가 아니고 눈물을 훔치면서 일터로 달려가는 것,장애물이 가로 막아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힘차게 일을 하는 자세가 바로 휘포모네의 인내인 것입니다."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 하고(고린도후서 4:8)"우리는 사도 바울이 "내가" 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라고 한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현실적으로 사방이 포위되고,답답하고,핍박이 가득해도,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복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서 일어나야 합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인내의 자세인 것입니다.고린도후서 6:10에는 더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실제로는 근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바울은 무엇이라 소리치고 있습니까?"나는 기쁘다.오히려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다.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라고 소리치면서 꺾이거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있습니다.바울처럼 이런 자세를 가지고 살 때 우리는 인내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LA에서 새들백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의 많은 교회들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릭 워렌(Rick Warren)' 이란 목사님 이 계신데 이 분에게는 아주 특이한 병이 있습니다.'뇌기능 부전증'이라는 병인데,아드레날린이 뇌에 분비될 때 뇌가 그 호르몬에 대해 이상반응을 보이는 병으로서 그 호르몬이 분비되면 현기증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력이 갑자기 떨어져 앞에 있는 것도 잘 안보이기도 한답니다.머리는 쑤시고 무서운 공포가 일어나기도 하고 급기야는 실신하기도 하는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병입니다.우리가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그런데 이와 같 은 무서운 병을 안고도 이 사람은 지금까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그는 '그때는 마치 손가락 하나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라고 표현 했습니다.설교를 하다가도 가끔 그런 증세가 나타나는 데 그럴 때면 교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그런 상황에서 설교하는 것은 큰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새들백교회'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큰 교회로 성장시켰습니다.그는 요즘도 주일이면 네 번 설교를 하는데 설교하러 가기 전에 '중보기도팀'에 찾아가서 기도를 요청한답니다.그리고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서도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계속 기도한다고 합니다.'하나님, 나에게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옵소서.이 약한 그릇을 사용해 주옵소서.나의 약함 속에서 당신만이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내가 이 자리에서 쓰러지면 안됩니다.주님!'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놓고 인내하는 자세로 맞서고 있습니까?가정이 안고 있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진짜 인내하는 자세를 가지고 전진하고 계십니까?휘포모네는 뒤로 물러서거나 주저하는 자세 앉아서 울고만 있는 자세도 아닌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뛰어가는 것,장벽이 있으면 뛰어넘고,장애물이 가로막으면 손으로 밀어붙이는 것,그래도 안되면 방망이를 가지고 와서 두들겨 부수더라도 그 벽을 헐고 뛰어가는 자세.이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우 모두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인내가 필요합니다.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우리를 은밀한 장막에 숨기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누가 이 은밀한 장막을 경험합니까?고난의 여정을 걸으면서 인내를 배운 사람이 바로 이 은밀한 장막에 들어가서 그 장막 속에서 평안히 쉬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는 은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그러면 이와 같은 은혜를 언제 우리가 체험합니까?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사망의 골짜기에 발을 들여놓지도 아니한 사람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그러니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고난을 당할 때 인내만 잘하면 오히려 엄청난 보화들을 거둘 수 있습니다.

계시록 21:21에 천국에는 열두 개의 문이 있는데 훗날 천국에 들어갈 때 이 문들을 통과한다고 하는데 이 문은 진주로 만들어져 있고 진주는 바로 인내를 상징하는 보석입니다.세상을 살면서 주님을 닮기 위해,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의를 행하기 위해,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 의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일하면서 인내하고,기쁨으로 인내한 사람만이 그 진주 문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서 진주가 만들어질 때까지,우리 자신이 진주처럼 변할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원하십니다.예수님처럼 일하면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인내한 자에게 반드시 과거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일하면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존 에글렌이라고 하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1850년 1월 6일 주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는 '교회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다가 '집사가 눈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면 평교인들은 교회에 가겠는가?'라는 책임의식으로 1마일 이상을 눈보라 속을 걸어서 예배시간이 다 되어 겨우 교회에 도착하였는데,교회현관에서 만난 다른 집사님이 난감한 소식을 전합니다."에글렌 집사님.우리가 지금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설교하실 목사님이 오지 못하셨습니다.교인들도 겨우 13명뿐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배를 취소해야겠지요?!" "예배를 취소하다니요? 안됩니다.목사님이 여기 도착하시지 못한 것은 이해할만합니다.이곳과 목사님이 계신 켈브돈 사이에는 눈이 6피트 쌓여 있습니다.제가 예배를 인도하겠습니다.참석하신 분들 모두 우리 교인들일테니 제 실수를 용서해 주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저 구석에 앉아 있는 낯선 한 소년만 제외하고는 모두 다 우리 교인들입니다.저 소년도 아직 어리니까 별 문제 없을 것입니다."에글렌은 전에 설교해본 적이 없었고,또 그 주일을 위해 설교를 준비한 것도 아니기에 단위에 올랐지만,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오직 본문에 충실하여 읽고 외칠 뿐인데 이제 그의 설교는 10분만에 한계에 달하고 말았습니다.에글렌이 "예수님을 바라봅시다.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라고 설교했을 때,그 열 세 명의 청중 중에 한 사람이었던 16세 소년,찰스 스펄전은 그의 설교대로 그의 생을 통하여 늘'예수님을 바라보기로' 작정했고,훗날 영국을 뒤흔들고 세계를 변화시킨 대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회심은 이와 같이 설교를 처음 해보는 스스로'참으로 어리석었다'고 말하는 한 집사님 덕분이었습니다.무엇이 중요합니까?우리의 능력과 달란트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여겨지더라도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이를 통하여서도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자 할 때,우리의 푯대 되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축복하십니다.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말씀합니다."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을 하심은 믿음의 경주에서 낙심하고 지칠대로 지쳐있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위로하고 경주에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함입니다.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자신의 지치고 피곤한 모습만을 바라볼 때에,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낙심에서 돌이킬 수 없습니다.성도 여러분!믿음의 경주를 전심과 전력으로 달리시되,바울이 사모한 의의 면류관을 여러분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니까?예수님을 바라봄에서,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고,주님으로 향한 열정이 샘솟듯 일어납니다.예수님께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를 참으시고, 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 같이"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기를 원하는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능욕과 세상의 거친 환경도 개의치 아니하시기 바랍니다.그렇게 할 때 예수님을 높이 드시어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믿음의 경주에서 온전히 승리하는 우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는데 어떤 예수님를 바라봐야 합니까?'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그래서 본문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그때 대제사장의 하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왔습니다.이때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말할때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하니까 대 제사장 하인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때에 한 제자가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칼로 한사람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그때 예수님이 떨어진 귀를 붙여주며,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며'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조롱과 고문과 채찍을 참으시고,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이 끝까지 참는 인내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피곤하고 힘들때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가난하여 어려울때 주님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고,억울한 일을 당할 때 원수를 만났을 때 ,실패하고,낙심되고, 답답한 일을 당할 때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오늘은 하나님의'인내' 곧 예수님의 '참는 성품'을 닮아야 된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써 예수님의 성품,곧 예수님의'인내하는 성품'을 닮고 배워야 하는데 왜 예수님이 십자가까지 참고 인내하셨는가?를 생각하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인내를 하면서 승리를 해야 될줄 믿습니다.참된 기도,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는 내 뜻과 내 욕심만 구하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을 찿는 기도입니다.어린아이는 나만 생각하고,나만 위하는데 그러나 성장한 사람은 부모님과 형제 주변 사람을 생각하고 참고 인내합니다.이와같이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할 때 먼저 우리 주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참아야 합니다.그리고 무슨 일을 당할 때 안참는 것보다는 참는 것이 낫습니다.그러나 참는 목적이 분명해야 됩니다.그 목적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야 하고,하나님의 뜻에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어떤 잘못이 없는데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그때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으라는 것이고 내가 선을 행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것이다’ 생각하고 참아야 합니다.아무리 어려움과 환난과 시험이 와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고 참아야 되고,그리고 이 고난과 시험 후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믿고 참아야 합니다.그래서 야1: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험이나 고통을 참는자는 하나님께 ‘옳다 인정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몰라주고,멸시하고,무시해도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알아주면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찬송가에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사람은 죽을때 3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좀 더 참고 살 것을’ 후회한답니다.순간을 참지 못하여 일생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하나님이나,주변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고 함부러 말하고,함부러 성질내고 후회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둘째는 ‘좀 더 베풀며 살것을’ 하고 후회한답니다.어차피 없어질 물질 남에게 인심 쓰면서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죽을 때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다 사라진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살아있는 동안에 선을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좀 더 즐겁게 살 것을’ 하고 후회한답니다.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기쁘고,즐겁게 살아도 될것을 짜증내고 불평하다가 마지막에 후회를 합니다.교부 터툴리안은 '참는 것은 여자를 아름답게 하고,남자를 가치 있게 만든다.소년의 인내는 사랑을 받고,청년의 인내는 칭찬을 받고,노년의 인내는 존경을 받는다'고 했습니다.죽을 때 후회하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에 참고 인내하고,베풀고,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의 인내는 '사랑의 인내'입니다.사랑에는 인내가 있습니다.자식이 아무리 속을 썩이고,문제를 일으켜도 자식을 사랑하면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합니다.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을 참을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 모든 죄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사람이 닮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첫째는 미워하면 닮는다고 합니다.미워하면서 나쁜 것을 닮아,그래서 나쁜 사람이 됩니다.통계에 의하면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을 많이 당한 며느리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어 자기 며느리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둘 째는 사랑하면 닮는다고 합니다.사랑하면 좋은 것을 닮아서 좋은 사람이 됩니다.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선생님의 과목을 좋아해서 공부 잘하고,또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면 닮아갑니다.이와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참고,인내하는 삶은 예수님의 사랑 표본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면서 참으셨습니다.그래서 본문 3절에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하셨는데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역하고, 대하고,미워하고,괴롭혔는데도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의 인내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죄인을 참으셨습니다. 악한 자를 참으셨습니다.거역한 자를 참으시고,원수를 참으셨습니다.불의하고 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욕하고,침뱉고,조롱하고,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이런 죄인들까지도 참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때 자기를 죽인 원수들에게'아버지여,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죽었습니다.이 세상에는 대부분 약한 자가 참지만 예수님은 강하신 분이 약한 자들의 학대를 참았습니다.하나님이 인간의 학대를 참았습니다.죽은 자를 살리고,모든 병자를 고치고,성난 파도를 잠잠케 하신 권능의 주님께서 악한 자의 학대를 참고 있습니다.약한 자가 참는 것은 비굴한 것이나 강한 자가 참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그래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시어머니에게 학대을 받을 때 ‘내가 약한 며느리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가 아니고‘내가 예수님을 닮아서 큰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참아야지’ 하면서 참아야 합니다.가정에서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남편 있습니까? 작은 자입니다. 참고 있는 아내 있습니까?예수님을 닮은 큰 자입니다.또 가정에서 남편에게 함부로 말하는 아내가 있습니까?작은 자입니다.참고 있는 남편이 있습니까?예수님을 닮은 자입니다.그런데 요즘에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아내에게 구박을 당하고,아내에게 매을 맞는 남편들이 있답니다.유머,결혼을 앞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아버지,부부는‘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편히 살수 있다고 하던데요'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그렇다.나도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단다''그럼 적당한 거리란 구체적으로 뭔가요?'아버지는 주위를 살펴보고 아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야,너희 엄마가 때리려고 할 때 피할 수 있는 거리를 적당한 거리라고 한단다'크리소스톰이라는 유명한 교부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남에게 욕을 당하거나 손해를 본 사람이 보복할 힘이 있으면서도 보복하지 않는 것은 하늘이 준 참 사랑이다.'우리가 참는다고 할때 3가지가 있습니다.1),환난과 고통을 참는것,2),악한 자를 참는 것,3),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참는 것이 있습니다.그래서 사람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어느 정도 참아낼수 있지만 그러나 인간 관계에서 수치를 당한다든지,모욕을 당한다든지,억울한 일을 당할때 이것을 참는것은 엄청난 것입니다.어려움과 환난을 참는 것은 끈기이나 인간 관계에서 참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사람입니다.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입니다.'에브라함 링컨'을 온갖 나쁜 말로 비난하고 무시했던 '스텐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이 사람이 링컨을 빗대어 '원숭이를 구경하려면 동물원에 가지 말고 링컨을 보라'고 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닮은 아브라함 링컨은 그를 끝까지 참았습니다.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그를 국방 장관에 임명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악한 자를 절대로 가까이 두면 안된다고 만류했습니다.그래도 국방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세월이 흘러 링컨이 암살 당했습니다.스텐톤은 관 곁에서 크게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일찍이 보지 못했던 세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 여기 누워있다''나무는 한번 자리를 정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차라리 말라죽을지라도 나도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나무는 사시사철 변한다.철따라 옷을 갈아 입는다.힘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눈,비에 시달리지만 결코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나무 같은 사람,나무 같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산에 가면 두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하나는 활엽수가 있고,또 하나는 상록수가 있습니다.상록수는 춘하추동 비바람이 불고 백설이 휘몰아쳐도 든든이 푸른 나무 잎을 유지하지만 활엽수는 봄이 오면 잎이 피고 여름이 오면 잎이 무성하다가 가을이 오면 시들해져서 찬바람 불면 우수수 다 떨어지기 때문에 활엽수에게는 좋은 재목감이 없습니다.수백 년 뿌리를 내리고 자란 상록수가 좋은 재목이 됩니다.고려의 충신 '성삼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 봉에 낙낙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낙심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참고 인내하다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3,예수님이 인내하신 것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참으셨습니다.오늘 본문 2절입니다.'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신 것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참으셨다고 하셨습니다.예수님이 바라보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참고 죽으면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천국의 영광에 보좌에 앉을 것을 바라보셨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여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천국의 영광이 있으니 그 영광을 바라보고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지금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여 대통령이 되었습니다.할머니는 그에게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고 너를 믿는단다.하나님께서 너를 믿듯 너도 하나님을 믿으라.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웃도 믿고 사랑하신다.하나님께서 그들을 믿듯이 너도 그들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보잘 것 없는 자신을 믿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통해 언제나 꿈과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그후 어떠한 사람을 만나든지,어떠한 문제에 부딪치든지 참고 인내하며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존스 번치'는'흑인이요,고아요,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였지만'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하나님이 자기 인생의의 전부라고 믿고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 보았기에 승리하고,성공할수 있었던 것입니다.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힘들고 어려울때 고통의 십자가를 참고 하늘나라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여러분 지금 무엇을 바라보셨습니까?세상 사람들과 세상 있는 것들을 바라보지 마시고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예수를 바라보면 어떤 어려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고 승리하게 됩니다.십자가의 고난을 참고 승리하여 하늘나라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온다 할찌라고 참고 인내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또 한 가지 예수님이 바라보는 즐거움이 무엇입니까?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보좌에 앉는 것이고,또 하나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고 죽으면 수많은 사람들을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기 때문입니다.마치 엄마가 아기를 임신하고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모든 고통을 참고 인내하고,그리고 아이를 나을 때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참는 것은 한 생명이 출생하기 때문입니다.이와같이 내가 참음으로 내 생명도 살고,가정이 살고,이웃도 살리고,모든 사람을 살립니다.예수님이 막13:13절'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눅21:7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위대한 사람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승리하려면 '인내'의 두 글자가 제일이다.조급하면 눈이 흐려지고 화를 내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참고 기다리는 중에 기회가 온다.인내는 믿음의 보호자,화평의 유지자,사랑의 육성자,겸손을 가르치는 교사,승리의 저력이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말을 참음으로 상대의 인격을 살려내야 하고 마음을 참음으로 나에게서 예수님의 인격을 살려내고 행동을 참음으로 역사 속에서 사회를 건설하게 됩니다.참는 사람이 있는 곳에 반드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우리는 참는 인내를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그리고 참고 인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되며,나를 살려내고,이웃을 살려내고, 사회와 가정을 살려내야 됩니다.참음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되고,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지녀야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온유와 절제니”(갈 5:22)누구나 참는 것은 힘들지만 기도하면 됩니다.못 참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께서 능력으로 오래 참는 인내의 열매를 맺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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