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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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12-03-03 10:12:55, Hit : 2707
File #1    sm20120304인간을_향한_하나님의_갈망.hwp (24.0 KB)   Download : 117
Subject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호6:1-3) 2012.03,04.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웰스'라는 사람이 쓴<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훌륭한 신앙 인격인으로 많은 사람들부터 존경을 받는 대주교가 있었는데 그는 오랜 세월 하나님을 잘 섬겨 왔기에 그의 경건생활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의 경건 생활을 대표하는 것은 그의 기도생활이었습니다.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오랜시간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생활은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라고 칭송을 들을 만했는데 이 대주교는 이렇게 평생을 아침저녁으로 기도해 오던 중,어느날 저녁에도 예외 없이 기도를 드립니다.'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바로 그때 '그래,내가 듣고 있으니 무엇이 소원인지 이야기해 보아라'하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순간 대주교는 너무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우리가 한번 생각해 봄직한 일입니다.

기도 생활을 오래해왔던 대주교,그가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마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사모함이 있어,떨리는 마음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를 했을 것인데 오랜 세월 기도하는 동안 그러한 간절함은 사라지고 기도라는 형식만 남았고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기계처럼 기도를 드렸습니다.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반복적으로 암송할 뿐입니다.이미 그것은 기도가 아니고,본질을 떠난 외식적이고,형식적인 기도입니다.그럼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떠하신가요?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앞서 살펴본 대주교와 같은 모습이 존재하지는 않습니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본질을 외면한 외식적 신앙의 자세가 우리의 신앙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신앙생활에는 언제나 내용과 형식이 있습니다.내용이 있을 때는 거기 맞는 형식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형식자체는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문제는 어떤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원래의 첫사랑은 잃어버리고,왜 기도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습관적으로 계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교회 충성과 봉사를 했지만,오래 하다보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새 다 없어져 버리고 외식과 습관만 남아 있습니다.처음에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 기도를 했으나 언제부터인가 간절함은 사라졌고 하나의 습관으로만 자리잡았고 본질이 없어지고 형식만 남았습니다.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헌금,다 마찬가지입니다.어느 순간 내용은 없어지고 외식과 형식만 남아 있습니다.외식과 형식만 남아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독사의 새끼들아,지옥에 떨어질 놈들아'라고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우리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기에  우리의 중심,우리의 마음에 근본 동기를 보시고,다 아십니다.그래서 우리의 신앙에 내용은 없고 외식이나 형식만 남을때,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되고,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요1:12절'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벧후1:4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배로운 약속,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으니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바라보고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고 사순절을 맞이하여 우리 주님,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하나님을 믿는 확실한 믿음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첫번째 성품인 덕을 닮아야 한다고 했습니다.오늘은 하나님의 두번째 성품 '지식'입니다.벧후1:5절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라'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입니다.'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것을 아시고,모든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그래서 사1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는 말씀하셨고,삼상 2:3절을 보면 한나가 고백하기를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하였습니다.하나님은 무식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입니다.우리나라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했습니다.인간들은 한길 밖에 안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까지 다 아십니다.그래서 다윗 왕은 고백하기를 시139:1절'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다윗 왕이 이런 고백을 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하나님이 사울왕을 택한 것을 후회하시고 사무엘 선지자을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 새로운 왕을 세우라고 하셔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큰아들,둘째 아들,일곱째까지 겉 모양만 보고 왕으로 세울려고 할때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에게'나는 사람의 외모보다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시며 외모는 별로 볼품이 없었던 막내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사람들은 학벌,외모,인물,키,요즘에는 얼굴이 작아야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이렇게 사람들은 외모나 겉모양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다 아십니다.모든 것을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인간을 너무 지혜롭고 완벽하게 창조하시고 또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성경 말씀을 읽고,배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아가야 합니다.오늘 분문에 보면 호세아 선지자가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변질된 신앙을 책망하시면서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외칩니다.1절입니다.'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이 말씀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향해 외치는 말씀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바치고,안식일을 지키고,날마다 기도를 드리고,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제사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이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섬겨오는 동안 그 신앙과 모습이 변질되어 갔습니다.하나님을 섬기되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섬겼습니다.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없어져 버렸습니다.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너무 율법적이었습니다.스스로 계율과 법조문을 만들어'이것 저것 하지말라,먹어라,먹지 말라,고 하면서 율법에 빠져있었습니다.

둘째는 전통에 속박되어 있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 가르치는지,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뒷전이고,조상들 때부터 그렇게 해 왔으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뜻도,이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형식적이요,외식적이었습니다.겉모양은 다 갖추었는데 내용이 없었습니다.영적인 것과 신령한 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즉 하나님과의 만남,자신의 영혼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습관적으로 교회 다니고,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외식뿐입니다.껍데기만 가지고 허울좋게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살았습니다.십일조의 경우,우리가 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립니까?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하나님이 주신 복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염소나 양을 십일조로 드린다면 그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십일조을 드려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고.가면 갈수록 하나님을 향한 진실되고 감사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숫자 맞추기에 열중하여  가장 안 좋은 것,병들어서 죽게 된 것을 바쳤습니다.율법적인 것,전통적인 것,형식적인 것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었기에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하였습니다.하나님께 돌아와서'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하였습니다.

3절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힘써 여호와를 알자.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하셨고6절에는'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것은 제사보다,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자식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면 얼마나 답답합니까?이와같이 하나님 마음을 몰라주니 하나님도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촉구하였습니다.사람들이 육신의 지식을 배우려고 얼마나 노력합니까?유치원부터 초등학교,중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유학,학원,개인지도까지 받으며 공부하고 알려고 하는데,우리가 영적인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울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힘을 씁니까?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힘써서 알아야 합니다.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호4:6절에 너무나 소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이 말씀은 너무나 소중한 말씀이고,두려운 말씀입니다.'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고, 또 하나는 네가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고 돌보아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학문이나 지식만 알려고 하면 안됩니다.사람은'아는 만큼 보고,아는 만큼 듣고,아는 만큼 깨닫고,아는 만큼 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나,음악을 듣는 일,책을 보아도 아는 만큼 알게되고,아는만큼 느끼고,깨닫게 됩니다.이런 관점에서 아는 것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과함이 없습니다.문제는 무엇이든 그냥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알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해야 됩니다.그래서 본문에 '여호와를 아는데 힘을 써서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성경을 읽는데 힘을 쓰고,예배에 참석하여 말씀 듣기에 힘쓰고,성경 공부에 힘을 써야 합니다.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을 받고,영생을 얻기 위함인데 영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천국에 가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물론 이것도 영생이이지만 예수님은 영생은 요17:3절에서'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생은 아는 것이다'라는 말씀의 뜻은 '영생은 하나님과 나와 관계의 문제다'라는 것입니다.성경에서“안다”는 것은,단순히'지식적으로,객관적으로'아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것은 '인격적으로 알고,친밀하게 알고,경험하여 알고,관계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래서 영생은 하나님과 하나님 보낸 예수님을 만나 인격적으로 알고,친밀하게 교제하며,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히브리어로'알다'라는 말이'야다'라고 하는데 그 뜻은 '같이 살고,같이 동침하다'라는 뜻입니다.총각과 처녀가 데이트할 때는 서로 좋은점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잘 모를 수 있으나 결혼해서 같이 먹고,자고,생활을 하게 되면 그때 바로 알게 되는 것같이 예수님이 말씀하는 영생은 천국에서 오래 사는 시간적인 의미보다 관계적인 의미입니다.그래서 참다운 영생은 지금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살면서,주님과 동행하며,주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므로 영생의 삶은 따분하고 지루한 삶이 아니라,언제나 활력이 넘치는,신나고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38장은 이와 같은 진리에 기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노래입니다.1,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2,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3,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아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영생의 삶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비슷한 찬송이 436장 역시 같은 맥락의 신앙 고백을 하는 찬송입니다.1,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2,주 안에 감추인 새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헤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함께 살리라.3,산천도 초목도 새 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생명 얻은 자 영생을 누리니 주님을 모신 맘 새하늘이로다. 4,주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따라가리라 나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함께 살리라”

우리가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도 그 사람의 삶의 질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데,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맺으며 살아갈 때에 이 세상에서 천국과 영생을 맛보고,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이런 믿음과 신앙의 고백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을 보게 됩니다.그 가운데 요셉의 일생을 잠시 살펴봅시다. 요셉은 바닥에서 시작했습니다.요셉은 그를 시기하는 형들이 죽일려고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애굽이라는 타국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타국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함께하는 요셉은'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거듭 거듭 말씀했습니다.요셉의 위치는 노예이지만 관계는‘하나님과 함께’하고,‘하나님이 동행’하며 형통한자로 살았습니다.또 요셉이 감옥에 가서도 위치는 감옥인데,여전히 하나님과 함께하고 동행하므로 형통한자로 살았습니다.나중에 애굽에 국무총리가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요셉은 변함없이 자기의 위치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점검하고,하나님과의 관계를 생명을 걸고 살았기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큰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어도,여전히 '하나님이 함께'라는 이 생명줄을 놓치지 않습니다.어느날 형들이 찿아와 살려달라고 애원할때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길 창45: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고 했습니다.요셉은 어떠한 위치에 파묻히지 않고,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므로 자기 가족을 구원하고,나라를 구원하고,시대를 구원하고,인류의 구원을 위해 한 민족을 태동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어떤 어려운 구덩이 자리나,노예의 자리,또는 감옥의 자리에 있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며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나와 관계입니다.지금 내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성경 창세기에서 마지막 요한계시록까지 한 줄기로 도도히 흐르는 한 가지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계에의 갈망입니다.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모하고,인간과 가까워지기를 원하시고,인간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는 내용이 성경에 흐르는 줄기입니다.하나님은 나같은 죄인과 가까이 하고 싶고, 함께 동행하고 싶어서 독생자를 보내주시고,나를 선택하고 불러 주셨습니다.그런데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지금 구덩이 속에 있습니까?우리 주님과 함께라면, 그곳은 이미 천국입니다.노예같은 자리나,더 어려운 감옥같은 자리에 던져졌습니까?거기서도 우리 주님과 함께라면, 그곳은 이미 하늘나라입니다.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그곳이 '높은 산,거친들,초막이나 궁궐입니까?'바로 그곳은 영생이요.천국이 되어야 하지만 위치나 신분보다 더 중요한 것,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하나님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가 영생이요,천국이며 우리 주님과 올바른 관계가 생명이요,능력입니다.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습니까?가까운 거리입니까?아니면 먼거리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1절에'오라,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찢기고 상처나고,온 나라가 부패하고 병들었습니다.이러한 백성들에게 호세아 선지자는'여호와께 돌아가자.여호와께 돌아가 하나님과 가까와지면 하나님께서 찢어진 상처를 도로 낫게 해주실것이요.때리고 치신 고통을 싸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욥22:21절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아버지 집을 떠나 방탕하며 살아가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축복해 주셨습니까?

평안북도 정주에서 맹인으로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무당을 하며 첩을 두고 잘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하루는 굿을 하는데 선교사가 지나가다가 굿을 구경하고 있니까 그 무당이 아무리 기도하고,애를 써도 신이 내려오지 않습니다.귀신이 안 내려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그 선교사가 하는 말이 '자식 망하게 하는 무당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국갑시다'선교사가 떠나고 귀신이 내려와 겨우 굿을 마치고 난후,귀신보다 더 큰 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무당 짓을 계속 하는것은 결국 자식을 망하게 하는것 같았습니다.그래서 다음날 새벽에 선교사님을 찾아가서'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되게 할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선교사님이 '무당을 그만두고 예수를 믿고 교회 다니면 자식이 잘되고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그래서 무당짓을 청산하고 첩도 내보내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와 온 가족과 함께 예수를 믿었습니다.이 무당이 백사겸인데 다니다가 교회가 너무 초라하여 성전 건축을 시작했는데 돈이 없어 중단하고 있으니 백사겸 성도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논 10마지기를 팔아 그 돈을 하나님께 헌금을 하여 성전 건축을 완공하였습니다.오랫만에 선교사님이 교회를 방문하여 백사겸 성도의 근황을 물어보니 논을 팔아 건축 헌금하고 어렵게 산다고 하여 교회 사찰로 일하게 하여 사찰 생활 하면서 사는데 그 아들이 참 똑똑하고 재주가 있어 보여 선교사가 백사겸 성도에게 '내가 보니 당신 아들이 똑똑하고 머리가 영리한데 미국으로 보내 공부를 시키면 안되겠느냐?'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미국에서 차근차근 공부를 해서 나중에는 철학 박사가 되어 우리나라에 귀국을 하여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내고 문교부 장관을 지냈습니다.그래서 지금도 연세 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가면 초대 총장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서있습니다.무당이었던 사람도 빨리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와 그 자손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이와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속히 돌아가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면서 영생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홍신 씨가 소중한 꿈을 가진 사람에게 인생 절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책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썼습니다.“나는 4전 3패 1승으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마지막 1승도 참 절묘했지요.그때는 합격자 발표를 대학 건물 벽에 붙였는데 전.후기 전형이 있었던 당시에 재수한데다,전기 대학을 낙방했으니 후기 대학마저 떨어지면 삼수생 노릇을 할 형편이었습니다.합격자 발표를 하던 날에 마음을 졸이면서 벽을 보았지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고 살아서 뭐하나 싶어서 유서를 썼는데 글쓰기가 쉽게 멈춰지지 않아서 다 쓰고 죽기 싫었는지 계속 뭔가 끄적거렸는데 며칠 뒤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집배원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합격 통지서와 등록금 고지서를 갖다 주었고 등록 마감은 다음 날이었습니다.우체국이 청사를 지어 이사하는 와중에 발견된 통지문 봉투에 수취인 이름은 지워지고 건국대학교 주소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열어보니 합격 통지서에 김홍신의 이름이 있어서 읍내 두 곳의 고등학교에 연락해서 황급히 찾아온 것입니다.어머니는 급히 돈을 마련했고,새벽 기차를 타고 달려가서 학교 경리과에 등록금을 냈습니다.입학을 한 후에 들어보니 대학 동기들은 모두 등록금을 은행에 냈다고 했습니다.‘왜 나만 경리과에 냈을까?’의아하던 때 기숙사 입소 서류를 만들다가 기막힌 사연을 들었습니다. 20명을 뽑는 국문과에 21등으로 낙방했고,두 명이 등록하지 않아서 추가 합격했다는 것입니다.남들은 일류 대학에 못가서 속상했지만 나는 2차 대학, 그것도 겨우 턱걸이로 당시에 인기 없던 국문과 학생이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그러했기에 항상 학교 자랑을 했지요.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바꾸니까요.그는 글쓰기에 집중해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시작부터 평탄하지 않은 삶이 자신을 단련시켜서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여러분!마음을 다 잡아도 한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까?를 ’날마다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며 인생살이가 불편해도 마음껏 즐겨야 하고 자신을 우선으로 사랑해야 합니다.인생을 경영하려면 지식공부보다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왜냐하면 마음공부는 스스로 세상과 소통하게 하니까요.마음공부는 첫째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고 둘째도 긍정,힘들어도 다시 긍정하는 것입니다.인생을 얽어매고,움츠려들게 하는 것은  운명,학력,두려움,경제력,욕망,죽음 등 6가지가 있는데 이 여섯 가지를 뿌리치고 매일 성장의 큰 그림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어려운 일을 피하지 말고,시련을 딛고 일어서면 모두 근사한 추억이 됩니다.지금 자신을 얽어매는 것이나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행복한 인생을 경영하려면 마음의 군살을 빼야 하는 것은 마음의 군살이 많아지면 변덕스럽고,괴로움이 많아지고 자꾸 주저앉게 됩니다.시인 밀턴은“마음이 천국을 만들고,지옥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면 인생이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채워집니다.내 믿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믿음을 채우면 기적을 체험합니다.내 생각을 비우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츄프라 카치아는 아프리카 말로 사람의 영혼을 갖고 있는 식물로서 결벽증이 강한 식물입니다.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몸체를 건드리면 그날로부터 시름 시름 앓아 결국엔 죽고 만다고 합니다.결벽증이 강해 누구도 접근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았던 식물을 연구한 박사가 있었는데 박사는 이 식물이 어제 건드렸던 그 사람이 내일도 미래에도 계속해서 건드려주면 죽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한없이 이상하게 생각했던 이 식물은 오히려 한없이 고독한 식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우츄프라 카치아는 아프리카 깊은 밀림에서 공기중의 소량의 물과 햇빛으로만 사는 음지 식물입니다.그 지역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식물이 사람의 영혼을 갖고있다고도 말 합니다. 누군가 건드리면 금방 시들해져 죽어버리는 그러나 한번 만진 사람이 계속해서 애정을 가지고 만져줘야만 살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우츄프라 카치아 입니까? 혹은 주님이 여러분의 우츄프라 카치아 아닙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줄 수 있다는 것, 또 주님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우리는 그 것을 상실하기 전엔 그 사랑과 관심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오히려 우리는 그 사랑과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이 어느 날 사라졌을 때 그때서야 우리는 그 소중한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것,그러나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이젠 그 것을 찾아서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당여러분의 우츄프라 카치아인 주님을 위해서 혹은 여러분을 우츄프라 카치아로 둔 약한자를 위해서,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은 늘 인격적으로 동행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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