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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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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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21-12-25 01:43:25, Hit : 264
Subject   송구 영신말씀(자료)
/송구 영신말씀(자료)/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함은
문자 그대로 낡은 것을 다
버리고 새해와 함께 새것을
맞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새해를 맞으면
계속해서 낡은 것을
사용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새 달력, 새 수첩만
바꿀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우리의 옛 습관도
새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옛것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엡4:22-24)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한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행동에 옮길 때입니다.




/송구영신예배/
예배에의 부름/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시편63:1-7)
송년 예배 기도/역사를 주관하시며 세상 끝나는 날까지 저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해가 저무는 이 시간 송년예배로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도록 허락하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인도하심으로 험난한 이 한해도 믿음 안에서 살게 해주시니 감사드리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해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저희들은 너무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사오나 저희들은 당신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불충한 생활로 이 한 해를 허송하였사오니 용서하옵소서. 저희들은 세상 것을 좇으며 세상의 유익을 구하는 는 바빴으나 주님을 좇는데는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았나이다. 이 해가 시작할 때 주님을 더욱 사모하며 주 뜻대로 살겠노라 다짐했던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게으르며 나태한 생활을 했나이다. 사랑의 하나님, 이 시간 간절히 엎드려 기도하오니 다시는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 힘과 새 지혜를 갖고 축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새로운 해에는 더욱 주님께 충성하며 그 말씀대로 쫓아 살며 더욱 착하고 신실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금년 한 해도 저희들의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를 지켜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빛으로만 인도해 주시고 한량없는 축복을 내려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가정이 영과 육으로 풍족해지며, 저희들의 교회가 더욱 부흥하며 발전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축복하셔서 우상숭배와 죄악이 없는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저희들 앞에 열려진 새해의 문을 믿음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이 예배를 주님께 온전히 바치오니 받아 주옵소서.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회에의 초대/흉악한 죄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용서하시며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또 한 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작하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성경의 말씀대로 살기 보다는 제 주장대로 살아왔으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전 세상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 왔으며. 이런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하고 행동을 하였던 너무나 허물이 많은 죄인이었던 것을 이 시간 하나님과 우리만 알고 있는 모든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계속합시다.
참회기도/공동의 참회고백/전능하신 하나님. 당신께 나아와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범죄하였고, 길 잃은 양처럼 당신의 길에서 벗어 나갔습니다. 우리는 메사에 당신을 거역하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행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심령은 병들어 있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갈라진 사회, 갈라진 민족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죄인으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하나 되는 고통의 땀방울을 흘리지 않는 게으름과 서로에 대한 믿음을 쉽게 포기하는 나약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당신의 교회마저 갈라놓고 있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갱신되어야 할 교회, 변혁 되어야 할 역사 앞에서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가진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지 않는 교만함과 이웃의 아픔을 가슴 깊이 품지 않는 위선으로 옷 입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현재의 안락함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일치와 갱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게으르고 악한 종입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신뢰하지 않고 분열의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는 패배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는 길목에서 개혁의 발걸음을 망설이는 교회와 사회를 주여, 용서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개인의 참회기도 ........소리내어.... 다같이
(잠 시 침 묵)용서의 선언(시 27:1, 30:5)/인 도 자
회중 : 아멘, 주여 감사하나이다.
용서의 하나님! 저희는 십자가의 사랑을 망각하고 지난 한 해를 살아온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주께서 보혈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귀한 생명을 상처 입히고 시험에 들게 하였습니다.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기를 원하였고 용서하기보다는 용서받기만을 원하였던 저희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익을 주는 세상 권세 앞에는 늘 굴복하였으나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는 온전히 우리 자신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웃과 형제들을 주님의 은총 앞에 인도하기보다는 그들이 주 앞에 나아가는데 우리가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 우리의 감추고 덮어두었던 모든 죄를 다시금 성령의 빛으로 낱낱이 밝히시사  자복하게 하시고 눈보다 더욱 희어지는 심령들 되게 하옵소서. 공중 나는 새를 살피시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염려는 끊이지 않게 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았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소자를 살리지 못하고 소경으로 소경을 인도하는 부끄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라가기 위해 연합하기보다는 내 생각과 내 방식을 고집하며 분열의 주동자로 살았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로 행치 않고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시기와 다툼을 일삼으며 진리를 거스려 거짓을 행하고 모든 악한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고 물질의 우상, 명예의 우상, 권력의 우상을 숭배하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먼저 복을 입었건만  하늘 기업을 상속받은 자로서 복의 근원 되지 못하였고 복의 전달자 되지 못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저희 모두, 다시금 주의 섭리에 참여하기에 부족함 없도록 정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함의 확인/“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목회기도/무궁한 사랑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걸음을 친히 지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감격과 은혜의 자리에 온 교회의 지체들이 모여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의 은혜를 체험하며 영광 찬송의 예배를 드리도록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새 해를 맞이하고 소망으로 기다리는 저희이지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죄와 허물밖에 없습니다. 후회와 주님 주신 새 생명을 함부로 사용해왔던 잘못된 지난 한해를 반성하며 주님 앞에 모두 내어놓으니 다시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형제자매와 나누기는 커녕 용서하지 않고 반목하며 지내었던 저희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년 초에 세웠던 많은 계획과 결심 속에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지 못하고 욕심으로 채워 저희 삶이 방황했음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저희들의 어리석은 지식과 무능한 힘을 자랑하며 교만하게 살았음을 고백하오니 우리의 회개를 받아 주옵소서.  이제 새해를 맞이한 이 시간 저희 모두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사모하며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임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주의 보혈의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며 다시금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심을 체험케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참 자유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깊은 수렁에서 빠져있는 인생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소망을 체험하게 하소서.  병들어 병석에 누워 고통과 아픔의 신음소리가 건강을 되찾고 찬송을 부르는 목소리로 바뀌는 체험을 하게 하소서  새해를 맞이하여 세상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분열하면 싸우며 쟁투를 하지만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고 주님의 십자가로 일치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모든 기관들이 서로의 편견을 가지고 대립하며 갈등하고 있는데 우리교회의 모든 기관이 성령으로 연합하는 기관이 되게 하옵소서. 어린아이를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교육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불쌍한 이웃을 바라보며 선대하고 도울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이 있게 하옵소서. 이제 새해를 바라보는 믿음에 큰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헌금기도/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성자 하나님!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옵나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 라는 말씀대로 너무 많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을 감사드립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으리라는 말씀대로 많은 것을 찾아다녔을 때 우리가 방황하지 않도록 많을 것을 하나님께서 찾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리라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천국문 앞에 서서 우리의 문제와 소원을 들고서 두드렸는데 천국문을 여시며 응답하여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전능자 하나님! 이 시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신앙이 무엇을 얻을까 생각하기 전에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넉넉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도 생명을 보존케 하시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건강을 주셨고 행복한 가정을 주셨고 가정의 희망이 되는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의 예물을 드립니다. 감사예물을 드린 손길에 이제 새해에는 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우리 사회는 불황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희의 기업을 잘 운영하여주셨고 축복의 직장을 잘 다닐 수 있게 하여 주셔서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십일조를 드린 손길에 새해에 산업에는 호황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고 직장에서는 진급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간의 시간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주일헌금을 드린 손길에 1년의 52주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낼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드리고 싶지만 드리지 못하는 손길에 새해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쥐는 기적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님께 드리는 예배 시(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 당신은 나의 주인!내 눈에 보이는 모든것 맘대로 줄 수 있는 주권을 가졌기에 오늘기도는 내일의 현실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나의 크고 강하신 여호와 너무 커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너무 강해 느낄 수 없는 오늘 믿음은 내일의 현실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 하나님! 당신께 드림은 모두에게 나눔이 되고 당신께 받음은 모든 이에게 얻음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라는 이 고백 바로 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행복의 문이 활짝 열리는 새해를 위하여 일곱 가지의 빛/
첫째 빛은, 좀 더 고상한 목적을 세우는 일이다. 그대는 여러 종류의 먹을 것을 쑤셔 넣는 밥통이 아니라 귀중한 인간으로서 아들, 딸이나 후배에게 그럴 듯한 한 마디 말을 남길 수 있어야겠다. 둘째 빛은, 한없는 욕심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움켜쥐는 손뿐만 아니라 내어 주는 손도 필요하다. 그대는 두 개의 손을 가져야 한다. 셋째 빛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경을 끼는 것이다. 자신만 보이거나 겨우 자기 가족만 볼 수 있었던 근시안에서 이웃과 국가의 문제까지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빛은, 박수치는 기쁨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을 보면 칭찬해 줄 만한 조건을 하나쯤 찾아보라. 다섯째 빛은, 비교의 악순환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밤낮 남과 비교만 하다가 죽는다면 허무한 생애를 보내게 될 것이다. '나의 경주'를 달리는 보람을 찾아야 한다.
여섯째 빛은, 개척자의 긍지를 갖는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차가운 눈 속을 밟고 가야 길이 생긴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일곱째 빛은, 핑계의 버릇을 고치는 것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행동으로써 자기를 증명하라.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속에 힘을 지니는 것이 좋다. 시간을 지키고 약속을 이행하는 정직과 근면의 이미지를 한국인의 이미지로 만들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드리는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다리에 또 섰습니다.
묵은 날의 실패를 용서하소서. 주님은 내 곁에서 걸으셨으나 나는 혼자 내 멋대로 달렸고 주님은 나를 버린 순간이 없었지만 나는 주님을 멀리했습니다. 새해 깨끗한 도화지를 또 주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게 하시고 날마다 순종의 길을 배우게 하시며 매사에 나 자신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하옵소서. 내딛는 발자국마다 향기 있게 하시고 십자가가 내 삶 속에 재생되게 하시며 주님의 눈물 내 가슴속에 우러나게 하소서. 새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시간의 귀중함과 일의 고마움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시고 사랑의 능력과 인내의 승리를 순간순간마다 되새기게 하시며 가벼운 여장과 단순한 마음이 결국 행복의 길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폭풍이 불더라도, 막다른 골목에 설지라도 예수님의 손만은 놓지 않게 해주소서.주여, 나의 새 날들을 기쁨으로 채워 주소서. 하나님, 새해의 문을 또다시 열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지난해야 어쨌든 지금 시작되는 새 날들은 얼룩지지 않았사오니 이번만은 멋진 걸작을 그리게 해주소서.
오늘부터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채우게 하시고 남에게 기쁨을 주는 날들이 되게 하소서. 물질을 모으는 것보다 인격을 닦는 것이 내가 남기는 진짜 유산이오니 사랑의 본을 남기고 믿음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나의 기쁨을 보람 있는 일로 삼게 하시고 나의 행복을 주께서 알아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하나님, 부족한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시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결과적으로 당신을 기쁘게 하는 일들을 하게 하소서. 아버지여, 당신의 그 능력 있는 날개로 나를 감싸 주셔서 화날 때 잘 참게 하시고 미울 때도 남을 욕하지 않게 하시며 거짓말 공해, 과장 선전 공해의 주범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당신의 사랑의 눈을 주셔서 역사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시고 신뢰와 소망으로 보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로운 귀를 주셔서 이웃의 아픔의 소리를 듣게 하시고 고통의 신음소리를 듣게 하소서. 당신의 능력 있는 입을 주셔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희망을 속삭이며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이제 미지의 날들을 향해 출발합니다.
폭풍의 밤에도 주님이 한 가닥 빛을 던져 주실 것을 믿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것을 이길 만한 힘을 주실 것을 확신하오며 담대하게 출발하겠나이다.나는 내일을 모르나 미래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오니 실수해도 잘 봐주시고 혼란스러운 십자로에서 바른 길을 일러주소서. 염치없는 말씀이오나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며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고 넘어지면 내버려두지 마시고 꼭 일으켜 주소서. 그 동안 하나님이 주신 복을 소모한 것을 나무라지 마시고 새 복으로 새해를 채워 주소서. 걱정이 있어도 즐겁게 살게 하시며 선물로 주신 나날을 뜻있게 살게 하소서 지난 일 때문에 현재를 망치지 않게 하시며 모든 새벽을 얼룩 없는 새 도화지로 받게 하소서. 주님은 나의 선장이시며 진정한 후원자시고 주님은 나의 모든 문제의 해답자이시옵니다. 주님은 결코 나를 조롱치 아니하시며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최후까지 사랑해 주시며 나를 정말 걱정해 주시고 용서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밝은 햇살로 하여금 반드시 구름을 찢게 하시며 폭풍 뒤에는 반드시 고요한 평화를 주시고 자비로써 눈물을 씻어주시는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품에 안기게 해주소서. 죽음을 이기신 주님, 실패 속에서 새 꿈을 보게 하시고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 온전히 믿고 맡기게 하소서. 주님! 새 날의 문턱에서 나는 두려움을 쫓아버리겠습니다. 내일 병마가 덮칠지라도, 오래 견디기 힘든 사건이 휩쓸지라도, 이 해의 경주가 눈물의 경주가 될지라도, 그 때마다 힘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겠습니다. 내일 험한 벼랑길을 걷게 될지라도, 모레 쓸쓸한 광야에 내던져질지라도, 날마다의 양식을 주시고 헤치고 나갈 지혜를 그때그때마다 주실 주님의 사랑을 믿겠습니다. 나는 미래를 모르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아는 것은 그때 그날에 주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는 사실뿐입니다. 나의 나그네 길에 그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나의 욕심을 채우지 마시고 주님의 생각을 이루어 주옵소서. 주께서 주시는 복을 한꺼번에 듬뿍 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날마다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십시오. 아주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일어날 만큼의 힘과 아주 낙심하지 않도록 다시 출발한 만큼의 희망을 떨어지지 않게 공급해 주십시오. 지저분한 화젯거리에 벙어리가 되게 하시고 남을 뜯어 내리는 이야깃거리에는 귀머거리가 되게 하시며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장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2022년이라는 시간을 새로운 선물로 주신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새 출발 /
새 날의 문턱에서 나는 두려움을 쫓아버리겠습니다. 내일 병마가 덮칠지라도, 오래 견디기 힘든 사건이 휩쓸지라도, 이 해의 경주가 눈물의 경주가 될지라도, 그 때마다 힘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겠습니다. 내일 험한 벼랑길을 걷게 될지라도, 모레 쓸쓸한 광야에 내던져질지라도, 날마다의 양식을 주시고 헤치고 나갈 지혜를 그때그때마다 주실 주님의 사랑을 믿겠습니다.  나는 미래를 모르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아는 것은 그때 그날에 주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는 사실 뿐입니다. 나의 나그네 길에 그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나의 욕심을 채우지 마시고 주님의 생각을 이루어 주십시오.주께서 주시는 복을 한꺼번에 듬뿍 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날마다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십시오. 아주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일어날 만큼의 힘과 아주 낙심하지 않도록 다시 출발한 만큼의 희망을 떨어지지 않게 공급해 주십시오. 지저분한 화젯거리에 벙어리가 되게 하시고 남을 뜯어 내리는 이야깃거리에는 귀머거리가 되게 하시며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장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 대신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용감한 입과 한숨과 신음을 들을 수 있는 밝은 귀와 거짓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맑은 눈을 주십시오.
바라는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나는 약하오니 제 손을 잡아 주십시오. 아멘.
나의 시선은 연필 머리에 붙은 지우개로 향한다/
내가 소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지우개와 연필은 따로따로였는데 아이디어가 발전하여 두 개가 하나로 붙은 연필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듯 연필이 과오를 범했을 때 남의 개입 이전에 자체적으로 얼른 지워버릴 수 있는 메커니즘이 부착되어 있는 것은 사람이 배울 점이다. 사실 과오가 없다면 신이며 인간이 아니리라. 가끔 잘못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미도 있고 친밀감도 갖게 된다. 그러기에 사람의 문제는 과오 자체에 있지 않고 과오를 범한 뒤의 행동에 있다. 과오를 깨닫는 능력과 과오 뒤에 되도록 빨리 고치는 ‘지우개 메커니즘’을 스스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수양이든 신앙이든 간에, 잘못에 대한 민감한 정신력과, 고치고 새 출발하는 과감한 결단력이 과오 자체보다 몇 배 중요한 과제이다. 혼자 고민하던 골방에서 공상하다가는 한숨으로 끝내던 환상에서 남몰래 흘리던 눈물의 호수에서 나오십시오! 예수와 함께 우리는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미워서 스팀이 솟는 분화구에서 싫어서 죽고 싶은 그 늪에서 몸부림치며 싸우지 말고 나오십시오! 다시 사신 예수께서 기다리십니다. 걱정이 꼬리를 물고 오는 지옥에서 욕심이 한없이 솟는 경쟁의 절벽에서 질투가 이글거리는 수라장에서 나오십시오! 무덤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 찼습니다. 몇 번이나 가슴이 찢어진 실패에서 오늘도 내일도 기계처럼 사는 허무에서 남은 시간을 헤아리는 옹졸함에서 나오십시오! 문은 열리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만 생각하던 헛된 꿈에서 황금의 송아지를 쫓던 우상의 전당에서 무엇과도 흥정하던 비겁자의 길에서 나오십시오! 십자가의 부활의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대자연의 생명들이 힘차게 다시 살듯이  신도 용기를 가지고 나오십시오. 예수께서 무덤을 깨고 나오셨듯이 당신도 나오십시오. 그래서 오늘 새 출발을 하십시오. 싫어도 다시 한 번, 미워도 다시 한 번, 억울해도 다시 한 번, 쓰러져도 다시 한 번, 캄캄해도 다시 한 번, 괴로워도 다시 한 번, 새로운 걸음을 내딛어 보자. 보리스 파스퇴르나크는 명작 <닥터 지바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로마는 끝장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수(數)의 지배가 끝나가 고 있었다. 인간을 획일화하는 군대의 의무는 붕괴하고 있었다.”  그대에게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허무라고 부르는 지하철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예수는 당신에게 보람을 줄 것입니다.  교만이라 부르는 비행기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예수는 당신을 보통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성공이라 부르는 과속 택시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성실이라는 새 차표를 받으셔야 합니다.  욕심이라 부르는 배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상륙해야 할 만족의 섬은 예수입니다.  미움이라 부르는 호랑이 등에 올랐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예수께 사랑의 묘약을 받아야 합니다. 소위 자신감이라는 풍선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만 평화를 발견할 것입니다.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가 구출된 일이 있었다. 이 사람은 매일 12시간씩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을 잃은 장소를 중심으로 불과 6Km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한다. 20m를 걸으면 약 4m 이내의 간격이 생기며 100m를 가게 되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된다. 이 현상을 윤형 방황(輪形彷徨)이라고 한다. 눈을 가리고 가급적 똑바로 걷는 데는 두 가지의 비결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과감한 보조(步調)로 성큼성큼 걷는 것이며 또 다른 비결은 약 30보 걸어간 후 잠깐 멈추었다가 새 출발의 기분으로 또 30보를 걷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에도 윤형 방황이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눈 가리고 걷기와 마찬가지다. 소신대로 과감하게 전진하고 가끔 새 출발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걱정이 있어도 즐겁게 살게 하시며 선물로 주신 나날을 뜻있게 살게 하소서. 지난 일 때문에 현재를 망치지 않게 하시며 모든 새벽을 얼룩 없는 새 도화지로 받게 하소서. 주님은 나의 선장이시며 진정한 후원자시고 주님은 나의 모든 문제의 해답자이시옵니다. 주님은 결코 나를 조롱치 아니하시며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최후까지 사랑해 주시며 나를 정말 걱정해 주시고 용서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밝은 햇살로 하여금 반드시 구름을 찢게 하시며 폭풍 뒤에는 반드시 고요한 평화를 주시고 자비로써 눈물을 씻어주시는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품에 안기게 해주소서. 죽음을 이기신 주님, 실패 속에서 새 꿈을 보게 하시고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 온전히 믿고 맡기게 하소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전서 15:9-11/
청솔모라는 짐승이 있습니다. 다람쥐같이 생겼는데 다람쥐는 좀 작고 줄무늬가 있고 귀엽고 이쁘지요. 청솔모는 좀 큰데다가 새카맣고 성질이 좀 난폭합니다. 그래서 청솔모는 별로 그렇게 귀여운 구석이 없습니다. 남한산성에 다람쥐가 꽤 많이 있었는데 청솔모가 나타나면서부터 어디갔는지 다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청솔모가 얼마나 고약한지 사람은 잣을 구경도 못해봐요. 자기가 다 따먹기 때문에 뭐 씨를 남기지 않습니다. 참 고약하다는 생각을 가지는데, 이 녀석이 먹을 것이 많을 때 먹고는 남는 것을 여기저기 숨겨놓는데 그 다음에 겨울에는 어디다 숨겼는지 몰라서 많이 죽는답니다.

겨울에 눈이 오고 그러면 먹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서 제가 먹을 것을 좀 내다가 주었습니다. 잡식성이라서 뭘 줘도 잘 먹기 때문에 빵을 줘도 잘 먹고 떡을 줘도 잘 먹고 잘 먹어요. 그래서 내다 주면 와서 열심히 먹는데, 그 먹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가까이 가면 고맙단 인사도 없이 그냥 도망을 가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뭐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제가 은혜를 베풀어서 그 먹을 것을 갖다 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참 먹다가 다른 녀석이 오면 같이 먹는 법이 없습니다. 싸워서 쫓아버려요. 제가 많이 주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 다 못 먹거든요. 넉넉하게 주었어요. 자기 혼자 다 못 먹고 둘이 먹어도 남을 그런 양을 주는데도 다른 녀석이 와서 먹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는지요. 그래 그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정이 똑 떨어졌어요. 너무 욕심이 사납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청솔모라는 짐승은 짐승이니까 은혜를 모르지만 사람들 중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감사하지 못하고 혹은 싸우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우리 옛말에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감사라든지 은혜라든지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경말씀을 보면 바울이 자기의 생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묵상해 보겠습니다.

I. 바울의 인간됨 (8)
1. 사도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굉장히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1)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는 것은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 가운데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또 그는 유대인으로서 학벌이 좋았습니다. 예루살렘의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힐렐학파의     당대 최고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아주 훌륭한 율법선생으로     죽 성장을 했습니다.
3) 또 그는 다소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 다소라는 곳은 희랍문화와 언어와 이 모든 것     이 통용되는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면서 유대문     화, 헬라문화, 로마문화 이런 여러 가지 문화들, 철학과 언어와 법과 이 모든 것들을 배     우면서 성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잘 쓰는 말로 하면 국제화된 사람이다라     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 굉장히 우수한 사람이었습니다.
4) 초대교회의 사도들이나 여러 교회지도자들 중에서 사도 바울 만큼 학식이 많고, 논리적     이고, 학문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신학을 잘 정리한 사람이고 그      당시의 세속적인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단교리에 대항해서 기독교신학을 수립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우리 기독교를 예수교라기보다는 바울교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교훈 하시고 말씀하셨지만, 바울이 그것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았으면 기독교신학이 탄탄하게 서지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신학이 광범위하게 펼쳐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마저도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역사를 통해 볼 때에 바울은 초대교회의 가장 최고의 지식인이고 신학자고 전도자고, 바울이 없었으면 기독교가 이만큼 강한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2. 바울이 이렇게 훌륭한 분인데,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에 여러 가지 단점들도 가지    고 있었습니다. 뭐 장점만 있겠습니까, 단점도 다 있는 거지요. 그런데 여러 가지 단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8절 말씀에 보면 바울 자신도 스스로를 자기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갔다고 말하고 있     습니다.(8) 사람이 좀 모자라서 똑똑치 못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을 우리가 팔삭둥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열 달을 다 채워서 태어나지 못하고 여덟 달만에 나와서 좀 변변치 못할 때에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겸손해서 하는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자기는 팔삭둥이다,변변치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 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이 외모에 있어서 남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얼굴이 잘생기지 못하구요, 체구가 작은 데다가,체구가 균형이 잡히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혹은 안질인지 간질인지 모르겠지만 질병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일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3) 바울은 또 언변도 별로 좋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달변인 사람은 진실성이 모자란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언변이 좋지 못하고 눌변인 것도 큰 흠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언변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단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바울은 또 아주 직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그냥 참지를     못했어요. 그것을 좀 포용하고 또 무슨 문제가 있을 때에 참았다가 나중에 따로 지적한     다든지 이렇게 하지 않고 여러 사람 있는 데에서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하는 일들을 했던     사람입니다. 자기를 교회에 인도하고 소개하고 같이 사역으로 이끈 바나바하고 심히 다     툰 사람이었구요, 그래서 결국 갈라진 사람이었고, 초대교회의 제일 수장격인 베드로를     지적하고 그가 외식한다고 비난하고 정죄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편안     하게 같이 지내기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이지요. 같이 지내기는 너무 까다로     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적용 :저는 바울을 이렇게 생각해보면서 만약에 우리교회 목사님 청빙을 하는데 바울이 응모를 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저 혼자 해 봤습니다. 우리교회 목사님 전도사님들      청빙할 때에 같이 대화를 나눕니다.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다 얼마나 외모로도 준수하고 또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얼마나 다 우수한지 그런 것들을 보면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바울이면 어떨까? 바울은 우선 외모에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같이 만나서 면접을 해본다 하면      조금 걸리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구요, 좀 사람이 직선적이기 대문에 뾰족뾰족하게 말하     기 시작하면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는데 적절하지 않겠다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     다. 사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별로 매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II. 바울의 진실성 (9)
1. 정통성 ; 바울이 또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사도로서 그 사역을 감당할 때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바울은 정통성이 늘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같이 그 말씀을 들었다든지, 같이 예수님과 사역을 했다든지 그런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교훈을 받고 같이 사역을 한 직접제자들이라고 한다면 바울은 직접 예수님의 제자라기보다는 뒤늦게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사도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그 사도의 정통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바울서신에 보면 자기가 사도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시를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또 오늘 본문말씀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자기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는 말을 하는 것 같이 사도로 치면 서열로 제일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일 후배고 제일 말단이고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3.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로서 주의 일을 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핍박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데 제일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현장에서 제일 앞장 선 사람이 바로 바울이구요, 예루살렘 교회에서 핍박할 때에 더 나아가서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이를테면 바울은 교회의 원수같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초대교회 교인들로서는 공포의 인물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예수를 믿고는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옛날에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늘 교회 안에서 그것이 사도 바울의 약점으로 생각이 됐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자기 자신의 모든 모습을 돌아볼 때에 장점도 많이 있고 약점도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돌아볼 때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사람이고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나는 무익한 사람인데, 나는 주의 종으로서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 그런 고백을 늘 하고 있습니다. (롬3:10-18, 시14:1-3)
III. 하나님의 은혜 (10)
자기가 무익한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10절 말씀에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10절 말씀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자기 자신의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1. 존재 (10a)
1) 우선 첫째로는 나의 나된 것,나라고 하는 사람,나의 존재,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죄 가운데에서 구원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뭐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도 죄 가운데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자들이었지만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피 값으로 인해서 죄에서 구원받고 새 생명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내 신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내 신분, 오늘 내가 나된 것,나의 존재 자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또 사도로 택함을 받아서 주의 일을 했는데 사도로 부름 받고 택함 받고 세움 받고 그래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고,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고 그들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는 놀라운 일들을 했습니다.
적용/
그런데 주께서 나를 사도로 부르시고 세우시지 않았으면 내가 오늘날 사도가 될 수 있었겠느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만약 바울이 예수를 믿지 않고 사도가 되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됐을까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앉아서 율법을 들춰가며 이 사람 저 사람 잘못한 것 지적하면서 꼬장꼬장한 학자, 꼬장꼬장한 율법선생으로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혹은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니면서 핍박하면서 피에 굶주린 살인자로 명성을 떨쳤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았으면 그는 그렇게 인생을 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예수 믿지 않았으면 여러분이 5년 전에 10년 전에 30년 전에 예수를 믿으셨을텐데, 예수 믿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그런 고백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내가 예수 믿지 않았으면 지금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마 말할 수 없이 흉칙한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그런 고백을 종종 우리가 듣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예수 믿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제가 잘 아는 장로님, 은퇴하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장로님은 자그마한 분이신데, 젊을 때 술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래서 술을 쥐고는 못 가도 먹고는 간다고 하는 분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뭐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그래요. 그 부인되시는 권사님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 참 대단하구나, 저 자그마한 분이 저 몸에 무슨 술이 그렇게 들어가겠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을 좋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예수 믿고 변화가 됐어요. 주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장로님으로서 은퇴를 했습니다. 참 건실하고 바른 분입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얼마 있다가 그 다음에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을 받으면서 개복을 하고 다 치료를 했는데, 의사선생님이 그러더랍니다. 그래도 술을 안 잡숴봐서 그 속을 열어보니까 깨끗합니다,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 장로님이 뭐라고 말씀하냐면, 예수 안 믿었으면 내가 속이 다 썩어 가지고 여지껏까지 내가 살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수 믿었으니 생명도 있고, 예수 믿었으니 건강도 있는 것이지, 예수 안 믿었으면 생명, 건강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 안 믿었으면 내가 영원한 생명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을 봤습니다.
2. 공적(10b) ; 봉사, 사역/
1) 바울은 또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일을 감당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됐을 뿐만 아니라 그 사도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바울만큼 많이 수고하고, 바울만큼 많이 일하고, 바울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만큼 많은 선교 여행을 다닌 사람이 없을 것이구요, 바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만큼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만큼 많은 서신을 저술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우리 신약성경을 보면, 바울서신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요. 바울은 그렇게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훌륭한 전도자요, 훌륭한 학자요,그 귀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매맞고,굶주리고,감옥에 갇히고,풍랑을 만나고 수고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2)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다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이 바울 자신의 능력이     나 결단으로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백하기를 ‘내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10b)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일을 감당했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이런 공적이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수고하고 여러 가지 업적을 남긴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익하고 무가치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사도로 세우시고 일을 시키시고,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귀한 일들을 감당했다고 하나님 은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용/
여러분 이제 2021년 제일 마지막에,연말이 왔는데요,지난 일년동안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뉴스가 뭐였습니까? 연말 되면 신문사마다 금년의 10대 뉴스, 국내10대 뉴스, 국외10대 뉴스 이렇게 선정을 하지 않습니까? 국가적으로 10대뉴스 가장 톱뉴스라면 아마 남북 정상이 만난 것일 겁니다. 교회적으로, 우리 교회 교회적으로 가장 톱뉴스라면 우리 원로목사님 한 목사님이 소천 하신 것일 겁니다. 국민일보에서 한국교회의 10대 뉴스를 뽑는데, 그 톱뉴스로 한 목사님 소천 하신 것을 세운 것을 봤습니다. 가정의 톱뉴스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식구들마다 금년의 최고의 뉴스가 뭐냐 각자, 그런 것을 한번 선정해 보십시오. 어떤 집에서는 꼬마가 금년에 최고의 뉴스는 처음으로 이빨 빠진 것이라고 한답니다. 조금 큰 아이는 자전거 사 가지고 자전거 탄 것이 최고의 뉴스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정마다 아마 취직한 일이 있으면, 혹은 학교에 입학한 일이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뉴스가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최고의 뉴스가 뭡니까? 직장에서 실적이 제일 많이 올랐다든지, 진급을 했다든지 이런 것들이 최고 뉴스로 올라갈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최고의 뉴스를 꼽아보면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 지난 한 해 동안의 모든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고백할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III. 결론/
오늘날 현재 내 모습, 죄 가운데에서 구원받아서 새 생명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가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고, 혹은 공적과 업적을 쌓아놨지만, 그 모든 것들도 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바울 같이 한 번 고백을 하십시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고백하십시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감사를 하십시오.
오늘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되새겨보고 감사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이제 새해가
시작될텐데 그 한해는 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후회와 감사의 징검다리를 건너/
(마태복음 25:1-13)
오늘이 12월 31일, 금년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해서 금년 한해가 끝이 나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서 생각해보면 금년 새해 우리가 처음 시작을 할 때 얼마나 요란하게 야단법석을 떨면서 금년 새해를 시작했습니까? 새 천년이 되었다. 밀레니엄이다. 무슨 엄청난 일이라도 생겨날 것처럼 온 세상이 다 떠들썩했습니다. 흥분과 기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들떠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으로 해뜨는 것을 구경 다니고 새로운 천년이 되었다고 축재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고 흥분해있었습니다. 그렇게 새해가 시작이 되었는데 이제 오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들 모두가 다 느끼는 대로 금년 한해도 그냥 그렇고 그런 한해였습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지난날들의 세월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한해였던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금년 한해를 출발할 때
다른 때보다도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기에
오늘 우리가 느끼는 실망과
좌절은 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가만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애당초 금년 새로운 한해 2021년이 되어서 무엇인가 다른 것이 일어날 것이다.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를 하고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이 사실은 애당초 어리석었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세상을 똑같은 일을 하면서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데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요, 미련한 생각이요,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 아니었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21년이 2022년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세상이 자동적으로 좋아지고 바뀌어질 것이다. 헛된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금년 한해를 보내고 2022년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압니다. 2022년이라는 또 우리가 다가올 새해에도 우리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하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해를 시작하면서 또 한번 새로운 희망과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새로운 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망할 때는 실망한다 하더라도 당연히 희망을 가지고 시작해야 될 운명이 우리들 인생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꼭 각오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아무리 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새로운 해를 시작한다 할지라도 금년도 그저 그런 해였듯이, 지난해도 그저 그런 해였듯이, 또 내년에도 또한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저 그렇고 그런 해일 것이다. 라는 것을 미리 각오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를 보내면서 여러분들 모두가 다 비슷한 생각일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만은 우리들 마음속에는 사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것을 우리는 다 경험하게 됩니다. 두 가지의 다른 감정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오고 갑니다. 그 하나의 감정은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요, 또 하나의 감정은 지난날들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들의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든지 다 마찬가지로 평생동안 우리 인생들은 후회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평생동안 우리의 삶에 후회가 끊어지지를 않습니다. 저녁에 우리가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하루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 후회스러운 일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후회로써 하루의 삶이 마감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날로 넘어갑니다.
여러분,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만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생이라는 것은 후회다. 끝없는 후회, 되풀이되는 후회를 하면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끝없는 후회 속에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해를 접고 새로운 일년을 기다리게 되겠습니다.

지난 일년을 우리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후회스러운 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런 일은 안 했으면 좋을 뻔했는데 했다. 지난 1년 그 어느 때인가 우리에게 있었던 이 기회는 내가 꼭 붙잡았어야 될 기회인데, 그 때 그 일을 꼭 했어야 될 일인데 놓치고 말았다. 이런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후회로써 떠오르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어제의 후회가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의 후회가 내일로 이어지고 작년의 후회가 금년의 후회가 되어지고 금년의 후회가 내년으로 이어지는 후회라는 돌로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우리는 한평생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끝없는 후회로 해가 바뀌고 끝없는 후회로 날이 바뀌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한평생 후회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이렇게 끝없는 후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후회하고 있는 이 후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도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은 무엇을 그렇게도 가슴 저미게 후회하는가? 물론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후회하는 내용이 다르겠습니다 만은 대체적으로 공통된 후회는 시간에 대한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때에 대한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때 꼭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후회, 꼭 그때 내가 그 기회를 잡았어야 할 일을 잡지 못한 후회, 이 때에 대한 후회, 시간에 대한 후회,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도 아프게 하는 후회인 것 같습니다. 때를 놓치는 후회, 때를 분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여러분, 이때에 대한 후회를 뼈저리게 하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때에 대한 후회는 한번 놓치면 다시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어떤 사람들에게 좀 잘못한 것이 있다 그러면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잘하면 됩니다. 용서를 빌면 됩니다. 그러나 이 때에 대한 후회는 한번 때를 놓치면 그 때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로 우리에게 뼈저린, 돌이 킬 수 없는 후회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흔히들 우리가 후회하는 일 중에 무슨 후회가 많이 있습니까? 요즈음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진학을 합니다 만은 아마 10이면 9명이 모두가 다 공부에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어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만나서 "너 어떠냐?" 그러니까 "목사님, 큰일났어요." "그러니까 진작 공부 좀 잘하지......" "이럴 줄 알았나요?" 금방 후회를 하는 겁니다. 우리들모두가 다 이 공부에 대한 후회를 한번쯤을 해봤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주위에 노처녀들이 많이 있는데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까 금년 또 한해가 지나가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얘기를 들어보면 다 때를 놓쳐서 다 누구든지 때가 있었든지 그때 그 남자가 따라다닐 때 고개 좀 숙이고 눈 높이를 낮추고 붙잡아야 되는 건데 때를 놓쳐서 30살이 되고 40살이 되고......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업이라는 것도 투자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결단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바꾸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줄여야 될 때가 있고 넓혀야 될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라는 것도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가? 때를 잘 포착할 수 있는 사람, 때를 잘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돈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돈이라는 것도 가만히 보면 벌릴 때가 있어요. 돈을 벌 때 놓치면 다시는 안 벌려요. 돈이 벌릴 때 그 때를 놓치지 말고 벌어야 되는데 돈을 벌어야 될 때 허송세월하고 허허하고 지내다가 평생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얼마나 우리가 많이 봅니까?

건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라는 것도 지킬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노력하고 애를 쓰면 건강도 지킬 수 있는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때를 놓치면 그때는 자기의 건강이지만 자기가 지킬 수 없는 그런 상황으로 바뀌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병이든지 빨리 발견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빨리 치료해야 됩니다. 이 때가 건강에도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 때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때를 잘못판단하고 때를 놓치기 때문에 뼈저린 후회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모두가 다 경험하는 인생의 뼈저린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성경에서도 이 때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 구약성경 전도서 3장 1절 이하의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3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범사에, 모든 일에 다 기한이 있다는 겁니다. 늘 지금처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합니다. 일하는 것도 기한이 있습니다. 여기 의사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의사를 평생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의사로써 일할 수 있는 기한이 있습니다. 교사로서 일할 수 있는 기한이 있어요.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한이 있어요. 기한이 있는 겁니다. 평생동안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지만 돈버는 것도 기한이 있습니다. 젊은 때도 기한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젊은 분들이 많이 계신데 나는 평생 늙지 않을 것이다. 저도 옛날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닙니다. 젊음에도 기한이 있다. 공부하는 것에도 기한이 있고 봉사하는 것에도 때가 있고 이 모든 것에 때가 있는 것이다.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다.
여러분, 우리가 한가지 꼭 기억할 것은 우리 인생에도 기한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천년만년 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다 기한을 주셨습니다. 생명에 기한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기한이 다하는 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천년만년 살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해서 당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당황하고 후회합니까?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내 인생에 기한이 있다. 내 생명에 기한이 있다. 언젠가는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한이 다하는 날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웃으면서 떠날 수 있어야 된다. 이 자신에 대한 생명에 대한 기한을 늘 생각하며 준비하는 사람은 어느 때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죽을 때 후회합니까, 왜 죽지 않으려고 합니까? 기한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평생 살 줄로 생각했기 때문에, 천년만년 살아갈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삶에 기한이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난 일년을 가만히 되돌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온 지난날들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지금 많은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요? 여러분들이 무엇을 후회하고 계십니까? 틀림없이 때를 놓친 것 때문에 후회를 할 것입니다. 평생동안 내가 이 상태대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세상 만사에 기한이 있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가 후회를 하게 될 것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닙니다. 지난 연말에도 우리가 이 때를 놓친 것 때문에 후회를 했습니다. 아니, 해가 끝나는 때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때때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이 때를 놓친 것 때문에, 때를 분별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처절한 후회를 합니까, 뼈아픈 후회를 합니다. 그때 내가 그 일을 꼭 했었어야 되는 건데, 그때 내가 건강을 꼭 지켰어야 될 뻔했는데, 내가 모든 만사에 기한이 있는 줄을 알았어야 될 뻔했는데 그래서 준비했어야 될 뻔했는데, 마음을 비웠어야 될 뻔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 때를 놓친 것에 대한 후회를 늘 되풀이해서 하는 것입니다 만은 여러분,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금년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이 때를 놓친 것 때문에 또 한번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 가운데서도 때를 놓쳤기 때문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25장 1절 이하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올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늘 늦게 올 줄로 알았습니다. 신랑이 그렇게 갑자기 올 줄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노는 것이 기한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졸다가 신랑이 갑자기 왔을 때 신랑 맞을 준비를 못했어요. 결국 이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을 때를 놓쳤습니다. 뒤늦게 신랑을 맞으려고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안으로 들어갔고 문은 안으로 닫혔습니다. 뒤늦게 주여, 주여 소리를 질러 사정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때가 지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거지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를 갔습니다. 왜 지옥에 갔습니까? 때를 놓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자가 후회를 합니다. 뼈저린 통탄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돌이 킬 수 있는 때는 지났습니다. 여러분, 때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때, 그때까지 가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 지경에 우리가 도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문이 닫힐 때까지 우리가 밖에서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이를 회복할 수 없을 때까지 우리의 삶이 그런 지경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사정을 해봐야 이미 때는 지나서 이제는 뼈저린 후회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지경에, 그런 불행한 상황에 우리가 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때가 아주 중요합니다. 때를 잘 아는 사람,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알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 때를 아는 이 때를 잘 분간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야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때를 얼마나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아느냐?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공부야 그까지 것 때를 놓쳐서 그래서 조금 세상을 사는 것을 고달프게 살고 힘들게 산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좋습니다. 또 공부라는 것은 늦게 할 수도 있고 꼭 공부만 해야 잘 되는게 아니니까, 세상을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방법으로든지,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든지 그 인생을 되돌이킬 수 있습니다 만은 사실 이 신앙의 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것, 죽음이후의 우리의 삶이라는 것, 그 때를 놓치면 우리는 아무리 후회하고 발버둥을 쳐봐야 되돌이킬 수 없는 그런 후회가 되고 만다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때를 분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때를 분간할 줄 알아야 성공한 삶을 삽니다. 행복한 삶을 삽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로 이렇게 후회 없이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만족하게 인생을 산 그런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디모데후서 4장 7절 이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은 이 마지막 자기가 인생을 마칠 때 무엇이라고 고백을 했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 내 인생에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될 일을 유감 없이 무엇이든지 다 했다. 더 이상 후회가 없다. 여한이 없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내가 가야 갈 길을 충분하게 갔다. 할 일을 다했다. 믿음을 지켰다.

여러분, 우리가 마지막 이 세상을 그 언젠가는 떠나게 될텐데 우리가 무슨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것인가? 내가 지나간 날들, 내가 살아왔던 삶을 생각할 때에 너무도 억울하다. 내가 이렇게 죽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너무도 억울하다. 내가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해야 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후회를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나는 내가 지나왔던 삶을 되돌아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내가 해야 될 일을 다 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 내가 지금 죽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요, 나는 지금 이 세상을 떠나지만 나는 정말로 성공한 행복한 그런 삶을 살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삶을 마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에 그럴 겁니다. 그거야 뭐 내가 차차 죽을 날이 멀었으니까 차차 그렇게 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만사가 다 기한이 있는데 우리의 생명의 기한을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것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인생을 마치는 날 정말 이 사도바울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 믿음을 지켰다. 이런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이 인생을 성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을 성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권력을 잡은 사람입니까, 명예를 얻은 사람입니까,, 지식을 얻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성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을 성공한 사람은 마지막날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 후회 없이 정말로 행복한 웃음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년 여러분들의 인생이 어떤 인생이었습니까?

지난 일년동안 여러분들이 많은 일들을 하셨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을 것이고, 회사에서 승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지난 1년 동안 하신 일이 많이 있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오늘 이 마지막날 여러분들이 지난 1년의 여러분들의 삶에서 어떻게 평가를 하는가? 나는 정말로 만족한 삶을 살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사람이라고 하면 여러분들 이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1년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이요,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요 천하를 떠오는 일을 했더라도 지난 한해를 되돌아 볼 때 나는 정말로 후회 스럽다. 내가 어떻게 저렇게 인생을 살았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후회가 가득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인생을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었습니까? 사도바울은 기회를 잘 잡은 사람이었습니다. 때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때를 잘 분별하라. 미련한 사람, 지혜가 없는 사람은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가 된다. 세월을 잘 아끼고 때를 분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수 있는 사람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말처럼 그 자기 인생에 있어서 때를 잘 선택했습니다. 젊음이 있을 때 이 사도바울은 이 젊음의 때를 잘 사용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충성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잘 잡았습니다. 이방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는 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도바울은 주저 없이 그 기회를 잘 붙잡았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를 잘 알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그는 아름다운 인생의 고백을 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금년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들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후회가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후회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사실은 새해를 다가오는 한해로 건너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생각하고 다짐해야 될 것은 마지막날, 마지막 때에 있어서 우리의 인생이 다시는 후회하지 않는 그런 인생이 되어질 수 있도록, 때를 잘 분간하는 그런 인생이 되어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후회의 징검다리가 감사의 징검다리로 바뀌어서 후회의 징검다리로 새로운 해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여 나가는 그런 믿음의 준비, 그런 믿음의 삶을 하나님 앞에 이 마지막날 다시 한 번 다짐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자신을 살피라/
(고린도후서 13:5-10)

오늘 우리는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에 서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생활이나 사업에서 주말이나 월말 또는 한해를 결산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왜냐하면 반성하고 결산할 줄 모른다면, 자기 만족에 빠져 오히려 퇴보 내지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은 여태껏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오히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미성숙했거나 믿음에서 멀리 떠나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올바로 서기를 권면하면서, 만일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단호히 벌할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라는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안에 바로 서서 선을 행하며 온전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1. 시험하여 보고 확증하라(5절)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너희 자신'이라는 말을 본 절에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에 관하여 남을 운운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확인해 보라는 뜻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믿음의 결여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확증하는 것은 언제나 잊어서 안 될 근본적 문제입니다.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살피는데, 이는 제련소에서 순금을 골라내는 작업처럼 지난 과거의 시간에 자기가 믿음 안에서 바로 살았는가를 가려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의 결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골라내라는 의미입니다.
'시험하고 확정하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계신 것을 알아보라는 말입니다. 즉 믿음이란 '그리스도와 같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에 있는가'를 스스로 살필 것과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가'를 확증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러한 본문의 물음은 곧 우리 성도들이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요, 이것을 알지 못 한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요, 버리운 자라는 것입니다.
'버리운 자'란 앞서 지적한 것같이 '순금을 골라내고 남은 불합격된 찌꺼기로서 제거된 부분'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신약에 8회 나타나는데, 그 중 7번은 바울의 용어입니다(롬 1:28, 고전 9:27, 고후 13:5,6,7, 딤후 3:18, 딛 1:16, 히 6:8).
오늘 우리는 '나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믿음 가운데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이런 책망과 경고를 통하여 그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진정 버리운 자들, 즉 아직까지는 믿음의 합격자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말씀의 거울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핀다면 결코 남을 비판할 만한 자고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신앙생활은 물론 자신의 일상생활까지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선을 행하도록 하라(6-8절)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궁극적 바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악을 행치 않게 해주시기를 바는 것이었습니다.
(고후 13:7)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여기서 '버리운 자'란 '실패한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실패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납득시키지 못한 실패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아 사역하는 사도 바울에게 오히려 어려움을 주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일에도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은 진리를 거부한 채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따라 명예나 부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등한히 여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아무런 풍성함을 얻지 못하고 가장 약한 자로서 패배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근본적 관심은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올바르게 행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비록 바울 자신의 권위를 부인하고 무시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곧 자기는 죽고 대신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참 목자로서의 행위입니다.
(고후 13:8)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진리"는 고전어에서는 "사실"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과 결부시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진리'는 인격화되어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요 14:6). 바울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고 형통하거나 번영할 수 없음을 확언하였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은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 일할 때 능력 있게 삶을 살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진리를 거스린다'는 것은 자기 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거스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될 때에는 우리가 능력을 받아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면 담대하게 될 것이나 주님을 거역하면 그 삶이 공허와 무의미 속에 거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지난 1년을 뒤 돌이켜 보면서 느끼는 바는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 살았다면, 그것은 실로 능력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예수님을 내 삶에 모시고 살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실패의 삶이었을 것이고 늘 약점 가운데 사는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3. 온전하도록 하라(9-10절)
(고후 13:9)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에게 행한 믿음의 결과를 보면 분명히 책망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기뻐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악에서 떠남으로 진리 안에서 강하게 되고 온전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온전하게 되는 것"은 '개선하는 것' 혹은 '진보하는 것'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 '수선함'의 뜻도 '기계의 각 부분이 모두 정상적으로 조립되어 제 기능을 잘 발휘해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란 교인들이 끝내는 하나님 앞으로 바로 돌아와서 온전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온전하게 하여 우리의 신앙 생활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참된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 지고 능력 가운데 사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셔서 우리를 이끌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잘못된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 있는 변화의 삶이 있기를 원합니다.
(고후 13:10)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어서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서 추방당하거나 책망 받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권세로 그는 성도들을 책망하고 치리 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하여 결코 그들의 인격을 파괴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바울은 범죄한 교인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생활 가운데 영육 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망과 징계를 받는 일이 조금도 없도록 자신을 살피며 온전하여 지도록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뉘우침과 깨달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신문에 났던 기사입니다. 1970년 12월 31일 중앙선 열차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열차는 경상북도 영주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습니다. 죽령 고개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뒷걸음치면서 밀리다가는 다시 힘을 내어서 진행을 했으나 뒤로 밀려 가다가 결국 서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기관사는 기지를 발휘하여 장내 방송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이 11시 58분인데, 70년과 71년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잠시 추억을 만들고 가라"는 것이었다. 단 시간은 5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는 이처럼 기차에 내려서 의미 있는 이 순간에 새로운 결단과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친구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며 방탕한 길거리를 휘젓고 다니다가 교회 앞에 붙어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글귀에 눈길을 마주 쳤습니다. 이 때에 한 사람은 그 길로 새 삶의 길을 걸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계속 방탕의 길을 걸었습니다. 30년후 미국 제 2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사람은 바로 때에 큰 결단으로 새 삶을 살았던 크래브랜드 청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에 계속 방탕의 길을 걷던 친구는 감옥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 비참함을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평가할 것은 냉정히 평가하는 신앙적 결산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본서의 최종 결론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의 죄를 속히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시험해 보고 확증하고 믿음에 서 있는가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지 않다면 이제부터라도 선을 행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온전하게 되어 잘못을 고치고 정상적으로 믿음의 바른 자리에 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회고하는 역사(민수기 33:1-2)
유명한 실레겔(Cyreker)은 '역사는 회고하는 예언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괴테(J. W. Goethe)는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을 명백히 구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세로(Cicero)는 '역사는 시대의 증인이요, 진실의 등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 33장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나와 요단 가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까지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의 노정을 회고하고 있는 기록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명기 8장 2절에는 「사십 년 동안의 … 광야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그의 설교에서 「광야 교회」라고 하였습니다(행 7:38). 광야길 40년의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 40년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Ⅰ. 광야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1. 여호와의 명대로 시작된
출애굽의 역사였습니다.
본문 민수기 33장 2절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출애굽의 거사는 모세 자신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산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애굽 바로 왕의 산물은 더욱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들이 이방 애굽에서 객이 되는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거기서 400년 동안의 역사를 만든 다음에 그 자손이 큰 재물을 모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일이었습니다(창 15:13-14).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올 때,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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