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목사 목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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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2020-02-16 08:56:25, Hit :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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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제직세미나 자료(첨부 화일)
제직세미나

당진 교회(김재국 목사)  

강사:서정호 목사
일시:2020.01.16.  

직분론(職分論)

1. 직분이란 무엇인가

2. 직분맡기에 합당한 자

3. 직분맡은 자는 누구인가

4. 직분맡은 자의 자세  

󰡉 이끄는 말

성경은 직분 맡은 자를 표현하기를

그리스도의 군사라 했습니다.

군사는 자신의 생업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군사는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군사에게는 둘째란 없습니다.

싸움에서 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직분 맡은 자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꾼의 특성도 또한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게으른

품꾼을 다시는 쓰지 않습니다

. 일 맡은 일군의 마땅한 도리는

힘써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주인의 칭찬이있고

마땅히 받아야 할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주인이 오실 때

충성된 일꾼은 주인과 함께

즐거움에 참예하나

게으르고 나태한 자는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만나 회계할 때까지

직분 맡은 우리는 죽도록 충성해야 겠습니다.

  

1. 직분이란 무엇인가

  

(1)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직분 맡은 자는

에덴동산의 관리자인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쪽에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아담을 그곳에 두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동산을

지키는 동산지기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부여되는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2) 직분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임의로 그만 두거나 옮길 수 없습니다.

교회로부터 직분을 임명받은 자는

그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직분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취급하면 안되겠습니다.

맡은 직분이 자신의 세상 지위와 체면에

어울리지 않아서 세상 명예가 조금은 깎인다 해도

교회로부터 받은 직분에는 충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맡은 직분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회계할 큰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이르면 제각기 이 땅에서 맡았던

직분의 결과를 하나님과 회계해야 합니다.

한번 맡은 직분은 교회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불가항력적인 일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절대로 그만 두거나 옮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직분을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직분에 충성하면서

주님께서 주실 다음 직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3) 직분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성도의 소망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즐거움과 영광에

참여하는 그 날은 교회가



기다리는 최고의 날입니다

.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일은 크고 즐거운

날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의 줄이 튼튼한 자는

감추어진 보화를 찾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드려 밭을 사는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보상의 줄이

견고한 자는 주신 직분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열심과 정직으로 하나님의 일에 충성합니다.

  

2. 직분 맡기에 합당한 자

  

(1) 그리스도의 공로로 거듭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자기의 일꾼으로 부르시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여 그분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난 자의 특성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범사에 그분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범사에 주님으로 기뻐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합니다.

  

(2) 주님의 것을 가지고 일하는 자라야 합니다.

일꾼은 자기의 뜻대로 일하지 않고

주인의 말씀과 계획을 따라 일합니다.

이처럼 직분 맡은 자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주님 뜻대로 주님것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것들을

자기 속에 많이 담고 있어야 합니다.

질그릇이 보화를 담듯,

깨어질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말씀, 기도, 능력 등

하나님의 것들을 채워야 합니다

(빌3:7-9, 마 10:5-15).

  

(3) 주님의 필요를 아는 자라야 합니다.

주님의 심정을 깨달아서 움직이는

자는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달란트 받은 자들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뜻을 깨달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일을 한 자는 주인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고 쫓겨 났습니다.

그러므로 직분 맡은 자는 하나님께서

직분 속에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4) 자기 삶의 가치를 잘 아는 자라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며 자기 영혼을 위하여

사는 자들은 자신의 육체의

삶의 참 가치를 잘 아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기어이 해 내야 하는 일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가치에 관한 것들입니다.

  

3. 직분 맡은 자는 누구인가

  

(1) 주님으로부터 위임 맡은 자입니다.

① 직분자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보상하는 일을 맡은 자입니다 (마 20:8).

② 주님의 양들을 위임맡아

양육하는 자입니다(눅 12:42).

③ 주님의 소유와 영육간의

은사를 맡은 자입니다(눅 16:1-2).

④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성도들을

맡아 양육하는 자입니다(갈4:1-2).

⑤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려

말하게 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자입니다(딛 1-7).

⑥ 하나님의 각양 은사로



봉사하는 자입니다(벧전 4:10)

a) 회계직(눅 8:3, 롬 16:23) b)

행정직(마 20:8, 갈 4:2, 고전 4:2)

c) 관리직(눅 16:2-4, 인사관리) d) 교육직(갈 4:2)

e) 훈련직(딤전 1:4) f) 보양직(눅 12:42, 창 43:16-19)

g) 감독직(눅 8:3; 16:23, 딛 1:7) h)

기획직(엡 1:10) i) 증인직(갈 4:2)

이 외에도 전도와 선교를 맡은 자들

(고전 6:17, 엡 1:10;3:27)로서

오늘날 목사, 전도사, 장로, 제직, 집사, 권찰,

교사, 구역장, 지구장, 교구장등이 있습니다.

  

(2) 주님의 대리자입니다(창 39:4; 24:1-3).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장군 집의 가정총무로서

주인의 할 일을 대신 맡아 다스렸으며(창 39:4)

아브라함도 자기종 [엘리에셀]에게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였습니다(창 24:2).

이처럼 직분 맡은 자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을 주님의 대리인으로 수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위하여 직분 맡은 자는

① 주인의 마음에 꼭 들도록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② 잘못되는 경우에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맡은 직분자들은

어려운 일을 맡을수록 오히려

감사해야 하며 적은 일에도

실망하지 않고 충성해야 합니다.

엘리에셀이 주인인 아브라함의 명을 받아

주인의 아들 이삭을 위해 먼 길을 떠났을 때에도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3번이나 엎드려 기도했던 것처럼(창 24:10-27)

직분 맡은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3) 주님의 뜻대로 일하는 자입니다(마 26:39).

직분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자율자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하는 타율자입니다.

그러므로 직분 맡은 자는 주인의 뜻이라면

하기 싫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하며,

② 주의 종들의 뜻을 따라 해야 하며,

③ 주님의 수입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창 25:14-30).

  

교회의 직분자는 반드시

교회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먼저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처리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도 교회에 해를끼쳐서는 안됩니다.

  

4. 직분 맡은 자의 자세

직분 맡은 자가 시간과 재능을 주

를 위하여 신실하게 잘 사용했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것이나

그의 기회를 낭비하고 부주의했다면

악하고 게으르다는 책망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마25:23-26).

직분 맡은 자는 직분에

합당한 자세를 가질 때

그 직분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 직분 맡은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은 임으로 하심이 아니요 택하여 부르심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고 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는 지혜롭고 유능한 자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에 합한 자를 택하여 쓰십니다. 그러므로 직분 맡은 자는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것을 항상 감사해야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범인들보다 월등한 가정 환경, 가문, 지위, 학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중 괴수]라고 했으며(딤전 1:5)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말에 두셨다] 했으며(고전 4:9)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라고 했으며(고전 15:8) [날마다 죽는다]고 하며(고전 15:31) 늘상 자신을 낮추어 겸손히 주를 섬기며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직분 맡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그런 자들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타인을 통해서라도 자기의 일을 이루심을 알아야 합니다.

직분 맡은 자가 자기의 일에 소홀히 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경륜을 따라 차질없이 진행됩니다. 직분 맡은 자는 하나님께서는 촛대를 옮기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서 교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자가 되지 않도록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에 순응해야 합니다.

직분 맡은 자들은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의 일이 성공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론과 홀이 모세를 도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크게 싸우시도록 한 것처럼(출 17:8-16) 직분 맡은 자는 교회에서 일하는 주의 종들을 잘 도와야 합니다.

  

(4)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직분 맡은 자는 교회의 임무를 맡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모임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각종 모임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직분 맡은 자가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고 다른 장소에 가 있다면 머지않아 그에게서는 하나님의 관심이 떠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12:30).

  

(5) 신앙의 실패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6)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해야 합니다.

직분이란 명예로 주어지는 감투가 아니라 일을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고하고 봉사할 때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것을 즐겨하지 않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사 58:18, 계 2:23). 사람을 보고 일한 자는 사람에게서 실망을 얻고 하나님을 바라본 자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자의 받을 댓가는 하나님께서 이후에 주실 상급입니다.

  

(7) 칭찬 받음보다 책망 받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은 책망보다는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칭찬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책망 받음은 사람을 경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직분맡은 자는 칭찬 듣기를 즐겨하지 말고 책망 받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8) 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재판하는 곳과 공의를 행하는 곳에서 악을 행할 수 없듯이(전 3:16) 타인 앞에서 지도해야 할 직분자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흠 없는 자가되도록 힘써야 하며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야 합니다 (마

7:3-5).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 나가기 위해서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과 회개의 생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렘 17:9). 그러므로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하며(고전 9:27), 주님 앞에서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고전 15:31).

  

맺음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현실로 가져오는 순종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믿음의

담력은 어디서 오는가?‘

갈등을 너머서···’

우리들 가운데 평안보다

갈등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안이 갈등을 너머서 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우리들 대부분은 커다란 갈등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된다.

스스로 평안하다고 생각되면,

왠지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절실하지 않음을 경험한다.

남의 문제에 참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력자는 누구인가?

문제를 발견하고는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뛰어드는 사람보다는,

문제의 근원과 당사자,

그리고 그와 관련된 나의 역할과

한계를 알고 대처하는 사람이다.

기다림에서 자신의 조급함을 발견한 사람은

만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성숙된 사람이다.

거짓된 비난에 변명으로 대항하는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진실의 열매를 취할 수 있는 책임인이다.

무시당할 때, 안정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 실력자이다.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십자가로 나아가는 기회로 믿고,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는,

회개와 용서를 아는 그리스도의 일꾼인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은 주께서 허락하신

문제해결의 열쇠요 기회임을

알아야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사역자는 봉사의 길에 들어설 때,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꾼들이 문제해결의 열쇠를

갖게 하려는 주님의 배려이다.

문제는 사역자가 그런 갈등을 부정적이고

모욕적인 것으로 속단하여 거부한다면,

얼마 후 또다시 같은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십자가를 통한 성장의 기회로 붙잡는다면,

그 일로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감격과 기쁨과 감사와 함께 놀라운

믿음의 담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다만 피할 수 없는 갈등이라면,

십자가에 동참하는 기회로 이끄시는

주님을 발견하여 수용함으로

성장과 축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제직의 신앙생활수칙 및 지침

[1] 제직의 서약

1. 모든 예배와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2. 맡겨진 직책과 분담에 대하여 충실히 이행한다.

3. 십일조와 시간적 봉사에

있어서 일반 교우들의 본이 된다.

4. 병든 자와 슬픔을 당한 자를 돌아보기를 힘쓴다.

5. 모든 성도들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대하고

인내와 성실과 양보로 덕을 세운다.

6. 교회와 성도간의 친교를 위하여 조력하며

새로 믿는 형제들을 돌아보고

성도들의 유기적인 단결을 힘쓴다.

7. 절대로 낙심이나 불평을 일으킬만한 말을 삼가고

성도간의 믿음과 소망이 넘치도록 항상 서로 격려한다.

8. 제직은 모든 사업에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

직접 참여하고 언제나 목표가

달성되기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9. 자기의 맡은 일 뿐만 아니라

남의 일도 돌아보고 모든 직분에서

항상 협조하기를 힘쓴다.

10. 성경 애독과 기도

전도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2] 제직의 자세

1. 청지기로서의 자세 -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주인의 것을 위임 맡은 대리자이기에

주인의 뜻대로 맡은 것을 사용해야 하며

주인에게 유익 되도록 해야 한다.

2. 주인으로서의 자세 - 주인정신으로 내 책임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3. 제직과 가정생활 -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

4. 제직의 사회생활 - 진실한 생활,

책임질줄 아는 생활, 신앙과 생활의 모범

5. 제직의 경제생활 - 이자를 받기 위해

돈놀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금전거래는 분명해야 한다.

보증을 함부로 서서는 안 된다.

계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6. 제직과 직업관계 -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신앙 중심으로 직업 선택

7. 제직의 언어생활 - 아름다운 말씨훈련,

이간, 험담, 거짓말, 불평해서는 안됨

8. 제직과 심방 - 부모의 심정으로 교인을 돌보고,

친구의 심정으로 돌보아야 한다.

  

제직의 직분

[1] 직분의 정의

1. 하인(요2:5)예수님이 가나 혼인잔치에

초대 받았을 때 음식을 나르는 자를 가리켜 사용했다.

그러므로 하인은 음식의 공급자이다.

제직 은 신령적 사업을 위해서 무엇을 공급할까?

항상 준비하였다가 필요로 하는 때에

요청이 있는 곳에 거절하지 않고 공급한다.

2. 사환 (마22:13)사환이 갖는 그 뜻은

심부름 하는 자라고 하겠다.

제직 직분자는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수종 드는 자이다. (요12:26)

3. 섬기는 자(고전16:15, 10:35-45)

섬기는 자는 섬기기로 작정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이외의 사람은 다 상전이다.

4. 종 또는 일군(고후6:4,살전3:2) 종 또는 일군이라고 할 때

하나님의 일군(종) 제직 일군(골1:25)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이 모든 직분은 제직 일군(머슴, 노동자)으로

선한 일군(딤전4:6), 신실한 일군(골1:7,4:7) 등으로

어떻게 봉사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5. 사역자(고전3:5)직분자는 제직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을 이루어야 한다.(롬13:4)

  

[2] 교회 직분자의 자격 (딤전3:1-13, 딛1:5-9)

1.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약4:17):

어느 인간이 갖는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그 뜻대로 행하는 일이다.

2. 책망할 것이 없는 자:

교인으로서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도덕적인 면에서나

법률 적인 면에서 흠이 없어야 한다.

3. 한 아내의 남편: 정당한 혼인관계에 있는 자로

중혼, 음행, 독신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4. 절제하는 자: 절제는 사람이

자기 감정대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행동으로

시간. 의식주. 금전. 말. 부부생활에

이르기까지의 것을 뜻한다.

5. 근신해야 한다: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니

말과 행동, 생각 등을 삼가 조심하는 것이다.

6. 아담해야 한다:

근신이 내면적인 면을 취급했고

아담한 것은 외적인 자격기준으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풍겨나야 한다.

7. 나그네 대접:

자애스러운 마음가짐과 친절한 덕으로

겸손한 자세로 신앙적인 나그네를 섬기는 일이다.

8.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

가르침에는 성경적 지식이

있어야 하고 표현능력이 따른다.

언어적 표현은 물론 문자적으로도 표현해야 하고

가르쳐 본 자라야 되며 가르치고 있는 자라야 한다.

9. 술과 흡연을 금하는 자:

술로 세상의 유행과 향락에 빠지는 것을

금하며 쾌락주의를 배격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움으로 사는 것과는 다르다.

10. 구타하지 않는 자:

구타는 감정표현으로 손으로 손에 쥔 것으로

말로나 글로 타인을 공격하는 행위이다.

뿐만 아니라 공격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금한다.

11. 관용하는 자:

이것은 무조건적 용서가 아니다.

구타하지 않는 일의 상대적 해석으로

타인의 숨겨져 있는 약점.

비밀을 찾아 보복하는 일이 아니다.

이해와 사랑으로 바른 길로 인도하는 행위이다.

12. 다투지 아니하는 자:

분쟁의 계속이 이해의 부족으로 온다.

양보하지 않을 때 일어나고 시기할 때 생긴다.

13. 돈을 사랑하는 자: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만족하지 않고

물질을 추종하는 상태를 말한다.

정당하지 못한 재물을 주고받으며

탈법적인 치부나 정당한 분수 이외의 요구나

매점 매석 행위나 불량품을

생산하는 행위나 판매를 금한다.

14. 자기 고집대로 행하지 않는 자:

고집은 완고한 자기 의사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공의로운 결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정당한 의사를 억압하는 행위로

순종할 줄 모르는 것을 뜻한다.

15 의로운 자:

믿음의 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함을 뜻한다.

16. 거룩한 자: 인간의 행동,

도덕적 수양에서 얻어지는

외모적인 엄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성화상태를 뜻하며

세상에서 구별된 진실의 속성을 갖춘 자.

17. 외인에게서 선한 증거가 있는 자:

의로운 자. 거룩한 자의 종합적인 면에

불신자에게서도 칭송을 받을만한 자라야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이 일치함을 뜻한다.

18 말씀을 지키는 자:

진리의 수호자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가) 이단집단에 참석하는 일

(나)이단집단에 있는 자를 초청 설교하게 하는 일

(다) 인위적인 집단을 구성하는 일.

(라) 이단집단에 헌금하는 일

(마) 교인이 이단집단이나 그 집회에

가는 것을 막지 아니하는 일

(바) 맡은 부서의 일을 충실하게 아니하는 일.

(사) 교회에서 안 가르치는 일

(아) 말씀을 증거하지 아니하는

일을 잘 살펴서 실천해야 한다.

19. 신앙 년조가 깊은 자:

신앙적으로 스스로 자기를 살필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경계할 줄도 알아야 하고

타인의 조롱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 행20:28-31)

[3] 교회 봉사자의 태도

1.자원하므로: 교인의 직분은

스스로 맡는 것이 아니라

조직기능(당회) 을 통해서 임직하므로

자원은 임직자가 그 직을 수행하는데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솔선 수범하는 것을 가리킨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직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한 부분이다.

열성이 어떤 인간의 방법에 치우치는 것을

금하고 공의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3. 더러운 이를 위해서 아니한다:

제직 모든 직은 근본적으로 봉사직이다.

교역자와 관리직원을 제외한 어떤 직분도

금전을 요구하는 봉사자가 될 수 없다.

제직을 빙자하여 교회나

사회에서 이권을 얻을 수 없다.

4. 즐거움으로 한다:

자원하는 태도에서 봉사의 즐거움을 갖게된다.

보수를 받지 않아도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주의할 것은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봉사해서는 아니 된다.

제직 일을 해야 즐거워지니까

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5. 주장하는 자세로 아니한다:

성경에는 [다스린다]는 말의

뜻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인 다스림은 권세를 가리키고

교회를 향한 다스림은 [앞장선다]는 말이다.

교회 직분자는 봉사하는 일이니 전도하는 일,

가르치는 일에 앞장서서 자기의 주장대로

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회가 수임한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6. 본이 되므로 봉사한다.: 신앙생활에서 본이 된다.

(집회참석, 봉사시간, 재정, 전도 등)

사회생활에서 본이 된다.

(가정, 생업) 행동 (몸가짐, 언어)

[4] 직분자가 명심해야할 몇 가지

1. 직분자도 교인이다.

2.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3. 직분자는 봉사자이다.

4. 내가 한 일이라 해도 곧 교회가

한 일이므로 자기를 내세우지 아니한다.

5. 나 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6. 다른 봉사자와 같이 일하며

다른 사람도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교회의 직분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섬길 고귀한 직분을 얻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의 일꾼으로 받아주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다.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감당할 직분은 그리 많지 않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3:1)라고 했다.

교회직분은 자랑스러운 직분으로

,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자신의 내면에 견고해야한다.

  

교회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가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시고, 그 안에서 연합된 성전으로, 거룩한 영으로 머무시는 하나님의 처소(엡2:20~22)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몸으로서 나눔의 공동체이며, 그 생명을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얻는다. 교회직분자는 그런 교회를 위한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교회직분자는 그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하며, 사명을 위해 몸을 바친다. 교회의 모든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자이다.

  

교회직분자의 직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고 자신의 직무를 말씀하셨다.

교회직분자는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섬기는 직무이다. 이 섬김은 마음가짐부터 세상과는 그 방식을 달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친히 섬김에 대한 가르침과 삶을 보여주셨다.

  

성령의 의지한다

사람은 몸과 영혼의 유기적 구성체이다(창2:7). 몸은 물질로 구성되었으나, 영혼은 물질이 아닌 실체로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그를 대변한다. 우리의 몸이 머리와 몸과 손과 발 등, 여러 지체로 조화를 이루듯, 영혼도 지성, 감성, 의지와 함께 하나님을 아는 능력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운전을 할 때, 머리를 사용하지 않고 몸과 손발만을 사용한다면, 운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멋지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목적지에 안전하게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와 동일한 이치로 삶에서 지성과 감성과 의지는 사용되나, 하나님을 아는 능력이 활용되지 못하는 인본주의자(휴머니스트)는, 어느 측면에서 패기 있게 보일 수 있을지라도, 삶의 성공적 결과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능력이 회복된 자이며, 사명자는 그것을 활용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우리의 잃어버린 영적 능력을 회복하고, 그의 일꾼으로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것은 나의 결정이기 이전에 주님의 결정이다.일꾼이 주인의 뜻을 모르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도모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꾼 역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교회와 자신을 위한 성공적 결과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종의 원리

사명자는 무엇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내 손길이 깃든 큰 교회인가? 직분의 명예와 특권인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사명자의 절대적 만족은 오히려 '순종'에서 찾을 수 있다. 종의 가장 큰 즐거움은 주인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것이다. 봉사의 기회를 감사하는 것은, 주인에게 기쁨을 선물할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종의 성공적 삶의 지표는 주인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많은 행복을 누리는 자는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자, 가장 많이 섬기는 자이다.

  

새신자를 위한 봉사

많은 교회에서 목회자는 새신자를 집회의 광고시간에 소개하며 박수로 환영하여 맞는 절차를 끝내고, 새신자는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미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신자를 교회의 성숙된 일꾼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집사는 목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새신자는 집사들의 도움과 목회자의 인도로, 일정한 기간에 걸쳐 필요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다. 제직들은 새신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하여 개별접촉으로 그가 최선의 결정을 선택하였음을 확신하고 소속감을 갖도록 격려할 수 있으면 좋다. 교회의 형편에 따라 새신자 환영잔치를 계획하여, 등록교인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집사는 새신자가 봉사의 역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일의 필요를 알고 도울 수 있으면 좋으나, 강요나 얽매임이 되지 않도록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좋은 열매는 좋은 환경과 토양과 종자에서 주어진다.

좋은 교인은 성령의 역사와 기도, 바르게 준비된 가르침과 훈련에서 주어진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사명자의 즐거움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성숙하여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교회직분자는 그 역할의 핵심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말씀을 사랑함

삶의 기틀을 그리스도께 둔 사람은 안정된 힘이 지속된다. 신앙과 봉사의 기반은 확고하며, 생활은 질서와 목적이 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능력의 샘을 가진 것이다. 성경을 처음부터 통독하든가 나름대로의 구분방식을 정하여 읽는 것은 개인적인 것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삶의 기틀을 그리스도께 두고 있음을 확인하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기도의 능력을 경험함

기도는 모든 장벽을 초월하는 강력한 능력이다. 사명자가 아래의 요점을 활용할 수 있으면, 새로운 기도의 마당이 열림을 체험하게 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활동하는 사명자들을 위해, 영적 상위 사역자들을 위해, 살고 있는 지역을 위해, 민족을 위해

속한 교회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게 보내시는 하나님의 잃은 자를 위해, 새신자와 어려움 당한 형제들을 위해

삶에서 만나는 이웃을 위해, 욕하거나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복음을 듣지 못하는 민족을 위해, 복음과 비젼의 확장을 위해

세계 복음화를 위해, 중보기도는 세계적 영향을 행사한다. 기도는 언어와 민족적 장벽을 초월한다.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능력의 원천이다.

  

가정의 제사장

사명자의 처음 터전은 가족이다. 교회의 일꾼은 가정에서 제사장으로 훈련된다. 규칙적인 가정예배는 필수적인 것으로, 대신될 것은 없다. 가족과 함께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되지 못하는 집사는 스스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자의 대열에 서게된다. 가정예배를 위한 지침은 무엇인가? 가족 모두가 참여하게 한다. 비록 어린 아기라도 동의를 나름의 방법으로 표시하여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예배와 삶이 관련되게 한다. 본문이 실제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 기도는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름의 결론에 이르도록 구체화한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다. 아이들의 마음에 신앙이 확립되려면 그리스도의 활동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의 능력도 직접 체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들의 신앙문제에 관하여 집사는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교회 비젼

앞으로의 미래사회에는 교회 생활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교회도 사회의 다른 조직체와 마찬가지로 시대 변화 및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예견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하며 교회가 급변하는 미래사회의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대와 같이 걷지 않는 교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의 삶과 멀어진 교회는 교인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교회가 미래사회를 책임지기 위해서 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간파하고 그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과 함께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세계는 결코 낙관적인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이 도전 앞에 서 있으며, 빠르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국사회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그 속도를 더해 감으로 빠르게 변할 때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래시대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교회도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미래시대에 교회를 변화시킬 핵심 요인은 영성, 평신도, 소그룹, 은사배치 사역, 가정사역, 지역사회를 위한 섬김과 봉사, 교회조직의 역동성과 생명성,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 청년과 청장년에 대한 적극적 목회적 대처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영성강조의 시대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록 사람들은 이에 반대되는 신비성, 초자연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영성이 중요해지는 것은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성과 합리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인들의 종교에 대한 관심 증가로 나타날 것이다. 한편, 기독교인들에게 영성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과 아울러 일상에서 하나님과 교통 및 교제하는 질적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내에서의 영성 추구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양태의 신앙활동을 전개시킬 것이다.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가 함께 영성목회를 위해 공동 사역하는 일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새로운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의 역할 강조 시대

앞으로의 교회에는 목사 못지 않게 평신도가 중요한 그룹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사실 목사와 평신도라는 이원론적 구분 자체가 비 성경적이다. 목사와 평신도는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주의 종들이다. 이들이 목사, 장로, 제직, 안수집사, 집사 등의 직분으로 구분하면서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는 교회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구분하면서 교회 건물 내부에서 예배 등의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시간만을 신앙활동이라고 하는 경향을 벗어날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교회 건물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다. 목사는 급속히 전문화, 다양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모든 분야에 걸친 전문적인 사역을 할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역자로서 동참하는 주체는 평신도이다. 그들이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목사는 평신도가 자신의 삶의 자리인 가정과 일터에서 훌륭한 사역자가 되도록 돕는 사람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목회자가 일인 중심의 목회를 해왔지만, 미래목회의 중심은 평신도와 함께 하는 목회를 해야할 것이다. 평신도의 목회참여는 제2의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다. 목회자 중심의 목회 일변도에서 평신도와 함께 하는 더불어 참여하는 협력목회의 장으로 변해가야 하는 것이다. 평신도의 지적인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고, 신학적으로도 평신도와 함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목회는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팀워크가 성장에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목회자가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다. 앞으로는 일의 양이 증가하는 반면에 점점 전문화된 목회사역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목회는 상담이면 상담, 교육이면 교육, 심방이면 심방, 등등의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와 함께 열린 목회(팀 사역)를 해야 할 것이다.

  

청. 장년 목회의 활성화

청. 장년은 기독교 신앙생활에 중추를 이루며 교회를 인도하는 중요한 계층이다. 청. 장년의 신앙자세가 바르게 형성되지 못할 때 교회의 순진성과 건전한 발전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현대교회의 움직임을 볼 때, 청장년의 활동이 활발한 교회의 성장속도와 그렇지 못한 교회의 침체와 노화상태의 비교가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그러나 교회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이니 만큼 어떠한 일이든 같은 방향으로 힘을 모을 때 상당한 생동력을 보이며 활발성을 띄게 된다. 우리교회가 직면한 이 시대는 청년과 청.장년 층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극적인 목회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소그룹 활동의 중요성 부각

앞으로의 바람직한 교회는 소그룹 활동이 얼마나 활발히 이루어지느냐에 달려있다. 교회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형상을 회복시켜주는 곳이어야 한다. 21세기 교회의 핵심적 과제는 치유와 회복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내면 깊숙이 안고 살아가고 있다. 불안, 두려움, 미움, 원망, 불평, 열등감과 죄책감 등 부정적인 내면 상태를 어떻게 하면 용납, 기쁨, 감사, 평안, 화해라는 긍정적인 자화상으로 회복시켜주느냐가 교회의 핵심 능력이다.

  

이러한 치유와 회복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자리가 사람들이 성경공부와 기도, 친교를 통해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소그룹 공동체 활동이다. 주일 예배는 전체교인이 만나는 축제의 자리이다. 하지만 주일 낮 예배에 한 번 나오고는 개별적이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갖기가 어렵다. 사회가 세분화, 다양화, 전문화되어 갈수록 또래 집단을 형성해 주어야 한다. 어느 교회이고 새 가족이 찾아와서 교회 내에 3-6명 이상의 동료를 갖게 되면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내면의 세계를 서로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주는 곳이 바로 소그룹이다. 소그룹의 주된 기능은 서로 간에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 받고 격려해주는 나눔인 것이다.

  

소그룹 운동에 성공하는 교회들의 특징은 첫째, 소그룹 모임(Small Group Activity)을 활성화시켜 교회프로그램 및 시설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둘째, 예배 및 사역에 팀 플레이(Team Play)를 중시하고 담임목사의 리더십도 팀웍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셋째, 평신도들의 은사를 개발, 훈련시켜 적재적소의 자원봉사자(Volunteer)로 활용토록 하는 평신도 은사 배치 사역(Networking) 이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다.

  

크면서도 작은 교회

크면서도 작은 교회란 대예배 구조와 세포 구조인 소그룹운영이 확실한 교회이다. 주일 낮예배 때에는 전체가 모여 하나님께 영적 축제를 드리고 평일에는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양육하는 모임을 가지는 교회이다. 소그룹의 작은 모임은 안정되고 의미 있는 보호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작으면서도 매우 융통성이 있어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 안에 확실히 양육조직을 둘 수 있게 만든다. 소그룹의 활성화 없이 교회 안에 부서 구조만 있다면 미래교회의 가장 큰 요구인 서로 돌보는 관계를 정착시킬 수 없다.

  

미래교회의 중심은 사람이다. 즉 사람들이 구원받고 변화 받아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도록 서로 보살펴주고 격려하는 사역이 없으면 교회는 텅텅 비고 말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서로를 섬기는 사람목회(people ministry)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소그룹과 소그룹 지도자의 훈련강도에 달려 있다. 오늘날 구역이라고 불리는 소그룹을 교회성장의 근본원리로 활용해야 한다.

  

소그룹은 불신자를 전도하고 새신자를 정착시키는 데에 최선의 전략이다. 예배가 앞문전도라면 소그룹은 옆문전도이다.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영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미래교회 목회자는 소그룹을 조직운영하고 소그룹 지도자를 키우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축하하라 그리고 돌보라” 가 교회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게 하자. 예배를 통해서 축하하고, 소그룹을 통해서 돌보는 교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목회

교회는 지역사회의 필요를 따라 그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 세상이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고 진정한 기독교인들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지역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는 절대로 전도할 수 없고 선교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세상에서 분리된 기관이 아니라 세상 속에 참여하는 교회일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미래사회는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과학적 교회행정 및 도구활용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영상과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구태의연한 목회방법은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활동에 있어서 이들에게 적합한 도구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개발된 컴퓨터나 멀티미디어의 신기술과 기타의 과학적 방법들을 목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경건성이 떨어진다고 각종 과학적 신기술 사용을 거부하지 말고, 목회발전을 첨단 과학적 도구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생명을 위한 조직

조직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고 영적 생명을 양육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조직은 제거하거나 바꾸어야 한다. 조직이 생명을 억압하여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개 초창기에 생명이 넘치는 교회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이 생명을 억압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이다. 물론 기존 조직을 정리하거나 재구성할 때에는 역시 다른 생명이 다치지 않도록 인내와 지혜를 가지고 서서히 해야 한다. 생명을 위한 조직은 성령운동, 기도운동, 말씀운동, 전도 및 선교운동을 하도록 조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생명이 목적이 되고 조직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점진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고 만다. 목회자란 변화를 주도하는 개척자이다. 성도는 목회자의 변화만큼 성장하고, 교회는 성도의 변화만큼 성장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의 안전지대 즉, 자기에게 편한 상태를 과감하게 벗어나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자이다. 21세기 교회는 변화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배와 조직에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비활동 교인의 활동교인으로의 변화

모든 성도가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이 되어야 한다. 활동교인이란 주일성수와 십일조와 헌신봉사에 참여하는 자이다. 활동교인이 50%가 되도록 힘쓰자. 비활동 교인이 되는 이유는 소속감과 가치감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있거나 기대가 충족되지 않거나 친밀감이 부족할 때에도 비활동 교인이 될 수 있다.

  

은사와 취향에 따른 사역

무슨 일이든지 좋아서 해야 성공한다. 하고 싶은 일은 아무리 희생이 커도 기쁨을 가져다 준다. 봉사는 곧 영적 취미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사를 따라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구원의 확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은사의 확신이다. 가장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은 확신 없이 교회 다니는 것이요 은사 없이 교회일 하는 것이다.

전도와 기도 사역자의 집중 개발

교회에는 과거형 교회, 현재형 교회, 미래형 교회가 있다. 과거형 교회는 전통을, 현재형 교회는 안정을, 미래형 교회는 성장을 추구한다. 과거형 교회는 일꾼이 거의 없고, 현재형 교회는 내부사역자가 많고, 미래형 교회는 외부사역자가 많다. 내부사역자는 기존교인을 위해 주로 일하는 사역자인 반면, 외부 사역자는 새신자와 불신자를 위한 사역자이다.

  

양육과 교회봉사를 위해 일하는 내부 사역자 보다 전도와 사회봉사를 위해 일하는 외부사역자에 관심을 가져야 교회가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전도사역자와 중보기도 사역자가 많아지는 것이 교회성장에 필수적이다.

  

화목의 극대화, 갈등의 극소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성장한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들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되어 연합하는 사람들을 쓰신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갈등이 교회의 주체세력이 되면 성장과 부흥은 기대할 수 없다. 갈등에는 부정적 갈등과 창조적 갈등이 있다. 부정적 갈등은 교회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고, 교인들을 이탈하게 하고, 성장의 잠재력을 잠재우고, 교회의 존재이유인 전도를 막는다. 반면 창조적 갈등은 교회의 문제가 노출되어 해결의 기회가 되고, 보다 효과적인 행동규범을 만들 수 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게 하고, 성장과 능률을 위한 새로운 힘을 가지게 한다.

  

역동적인 조직

역동적인 조직이란 생명을 탄생시키는 조직을 말한다. 조직 없는 생명은 오래 못 가고 생명 없는 조직은 의미가 없다. 생명과 조직, 조직과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바뀌려면 두 가지 즉 생명을 발생하는 영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고, 생명을 유지 보존하는 구조적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미래지향적 교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즉 ‘사람중심’이고, ‘사역중심’이며, ‘양육중심’인 조직적인 목회적 양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회내의 교회구조’를 요구한다. 교인 전체수가 얼마든지 상관없이 각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깨닫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계속해서 그 은사를 활용하는 위치에까지 이르도록 양육해야 한다. 집사, 제직, 장로, 당회원, 당회장 같은 직분이 아니라 은사자, 사역자, 헌신자, 지도자 같은 기능이 강조되는 구조로 교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교회의 보호적 기능과 훈련적 기능과 생산적 기능이 극대화되는 구조로 거듭나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아무나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사명과 운명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자가 교인이 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전체가 모여 축제를 경험하는 구조와 소수가 모여 사랑을 경험하는 세포구조(구역구조)가 되게 해야 한다. 목사가 탈진하도록 일하고 평신도는 구경하고 평가만 하는 조직이, 목사는 지도자와 경영자와 관리자로서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성도들은 기쁨과 순종과 헌신으로 그 꿈을 같이 나누어 먹는 조직으로 변화되어야 미래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다.

  

초점이 분명한 교회

아무리 강한 능력도 초점이 흐려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약한 겨울 햇살도 돋보기의 촛점에 모아지면 불이 나는 기적을 일으킨다. 교회의 초점이란 다른 말로 목적, 사명,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그 교회가 본질적으로 해야만 하는 사명이 분명한 교회는 모든 교회의 에너지가 그 목적과 사명에 집중되므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교회의 목적 혹은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하라는 위대한 명령과 사랑하라는 위대한 계명에 위대한 헌신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무엇이 되든 교회의 초점 즉 비전은 사람을 살리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도, 교회 스스로를 위한 훈련도, 세상을 향한 복음증거도 결국 하나님이 대신하여 죽으신 인간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미래교회는 성도들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투자하도록 초점을 모아야 한다. 영원한 것은 주님과 말씀과 사람뿐이다. 이 영원한 것에 모든 것을 거는 교회가 미래교회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주는 영적 훈련,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는 인간훈련, 그리고 다른 사람과 성숙하고도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지도록 돕는 관계훈련에 초점을 맞추는 교회는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제직수련회 말씀자료(1)

제직의 직분을 갱신하자 (고전 9:24-27)

  

교회가 직분 맡을 자를 세우는 일은 축복스런 일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교회가 확장됨에 따라

사도가 해야 할 일과 집사가 해야

할 일을 각각 분담해야 했습니다(행 6:1-7).

또한 안디옥 교회도 크게 성장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대하여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사람을 안수하여 파송했습니다.

  

교회 직분의 소중함: 사도 바울은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 강한 의지를 표현했고, 생명 바쳐 감당하였습니다(행 20:24). 기독교인 직업의식은 청지기 직분과 일맥상통합니다. 세계2차 대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진주만을 폭격한 비행단들을 보십시오. 이처럼 국가의 명령도 생명 바쳐 감당하거늘 하늘이 내리는 직분이야 얼마나 황송하고 귀한 것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며 감사하였습니다.

  

사모해야 할 직분: 어떤 분은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소홀히 여기고 직분을 감당치 않으려고 내놓는 것을 큰 양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디모데전서 3장 1절을 보면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은 좋은 욕망이다”(새번역)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일에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사 6:8).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분으로서의 좋은 제직님이 되시기를 사모하시고 기도하시며 가장 모범적인 제직님의 모델이 되신다면 이 모든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직의 사명: 제직님들은 첫째, 교역자를 잘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도 많은 여성도들이 있었고, 바울 사도에게도 겐그레아교회의 뵈뵈같은 여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초신자들이 아니라 오늘날 제직님들 정도의 여성도들이었습니다. 둘째, 심방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 환난을 당한 자, 병든 자, 시험 당한 자 등을 주의 이름으로 심방하되 꼭 주의 말씀으로 위로, 권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직 된 자의 말은 이사야 52장 7절 말씀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셋째,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제직님들은 물질적인 면에서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성도들에게 근심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영적으로도 초신자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직분에는 상급이 있다: 분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은 후에 심판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평생을 살고 나서 상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전하겠습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위로 받는데 주님은 직분에 충성한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상급을 바라보며 청지기로서의 삶을 충성되이 정열과 열심히 감당할 때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기쁨을 누리실 줄로 믿습니다.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눅 13:3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전 9:27).

오늘 제직수련회를 통해 이 말씀들의 의미를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맡은 직분: 먼저 제직의 직분을 맡은 스스로가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교회 직분은 한 번 맡으면 거의 영구적이라는 데에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직분을 오래 맡다 보면 직분에 대해 타성이 생겨 무책임해지고 게을러집니다. 그래서 직분에 맞지 않는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형식만 남고 실상은 없는 직분자의 모습은 아닌지 반성해 봅시다.

  

맡은 이가 구할 것은 충성: 직분에 소홀해졌다면 결국 그에 대한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은 감당할 만 하기에 주셨으므로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한 달란트 맡은 이처럼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리고 노하시게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은 맡겨진 직분에 소홀하다가 패망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삼상 16:14).

  

소명감의 회복: 어떻게 하여야 직분을 갱신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께서 주셨던 소명의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이나 제직님들이 안수 받고 일어나셨을 그때의 감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회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세워주셨다’는 소명감으로 가득 찼을 때가 그 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드워드 루이즈라는 사람은 “권찰로 임명받을 때 집사로서, 제직로서, 장로로서 처음 취임 받을 때의 소명감을 회복하는 것만이 직분을 갱신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감격의 유지: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은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있었습니다. 처음 직분 맡을 때는 감격과 두려움으로 가득찹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면 그런 처음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직분이 시들해 보이고, 직분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무감각해집니다. 신학자 레오날드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골방 기도만이 이 첫 감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자기 훈련: 어떤 그릇이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갈고 닦는 자기훈련을 말합니다. 남에게는 지도하고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는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오래된 직분자가 범하기 쉬운 약점입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롬 2:21)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먼저 자기를 책망하고 훈련하는 일에 게으르지 맙시다.

  

내 몸을 쳐 복종하는 삶: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일은 경건하게 살려는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일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영암교회의 믿음과 사랑과 기도의 어머니로서의 제직의 직분을 항상 새롭게 하여 주님께 복종하는 일은 항존직분자로서 마땅히 노력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집사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체질을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창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때로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일을 하면서 난관에 부딪치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왜 사서 고생하나?" 그러나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를 향한 선한 손길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똑같은 문제들, 즉 편애 문제, 소외감 문제, 섭섭한 문제 등 각종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문제, 그런 소외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선한 방법을 찾아 선한 해결을 모색해야 합니다.

  

흔히 교회에서 생기는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두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외감을 느낄 때 더욱 교회 일에 뛰어들어 말없이 충성하는 방법입니다. 말없이 충성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 싫어하는 공동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범사에 감사하며 자숙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이 제자들을 부르고 일곱 집사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때 사도들이 집사들을 임명하지 않고, 선택할 사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후 일곱 집사를 세우는 것은 제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겼습니다(3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겸손하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인정해 주어 중요한 직분을 맡기면 감사히 받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맡기지 않으면 조금 더 기다리며 충성하면 됩니다. 그런 후에 그 공동체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 자신도 그 직분을 소중히 여기며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항상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역은 그것이 말씀의 봉사이든 공궤이든 모두 거룩한 사역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봉사의 문 앞에서는 항상 겸허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겸허한 사람들이 결국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됩니다. 실질적으로 초대교회에서 선택된 일곱 집사들은 소매를 걷어 부치고 교회의 영적 성숙에 대한 모범적인 길을 앞서 행했고, 그리고 교회와 이웃을 돕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일꾼에는 두 종류의 일꾼이 있다. 일을 만드는 일꾼이 있고, 일을 하는 일꾼이 있다. 충성하라는 말은 일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일을 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하다가 일을 만드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런데 충성스런 일꾼이 되기 위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맡겨진 일을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도 충성스런 일꾼이지만 말을 소금으로 고르게 함과 같이 지혜롭게 하는 것이 더 충성된 모습입니다. 생명관계로 맺어진 교회생활에서 충성은 일보다 말과 더욱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판단 받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 자'를 말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일꾼은 판단 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에 의해서 판단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판단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사도 바울은 판단 받을 때 그 일을 큰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지혜입니다. 살다 보면 때로 이상한 판단이 귀에 들려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너무 지나치게 울분을 가지지 마십시오. 가볍게 생각하십시오. 정말 참기 힘든 경우에는 주님이 당하셨던 멸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가복음 6장 3절을 보니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판단 받고 멸시받는 것은 더 참기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관하지 않고 위대한 길을 가셨습니다.

  

판단을 듣고 주저앉아 버리면 안됩니다. 판단을 듣고도 겸손히 반성하면서도 전진하면 넉넉하고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벽을 곡 깨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판단 받지 않는 자세보다 판단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신앙의 성공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기본 원리가 판단이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판단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데, 우리가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살펴야 합니다. 누구는 판단 못해서 안하는 것입니까? 서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고, 그렇게 판단할수록 문제는 더욱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성경 민수기 12장을 보면 미리암이 문둥병 걸린 사건이 나옵니다. 왜 문둥병에 걸렸습니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구스 여인이 검둥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세가 온유하게 대처하니까 하나님이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미리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너는 얼굴이 흰 것이 자랑이냐? 더 하얗게 만들어 주겠다. 아예 꽃도 그려 주지." 우리는 판단하는 태도보다는 항상 긍휼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사람의 실수에 대해 관대하고, 관용하고, 은혜를 앞세우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일꾼이 되려면 그런 태도가 꼭 필요합니다. 사람을 잡아당기는 것보다 밀어 주는 것을 잘 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주께서 오실 날을 바라보고 사는 자'이다. :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때에..."라는 말은 정말 의미심장한 말이고 기대가 되는 말입니다. 바로 '그 때'를 바라보고 사는 자가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두 부류의 신자가 있다:

1) 첫째는 오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입니다. 보상을 생각하다가 보상이 없고 고난이 있으면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2) 둘째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입니다. 신랑 앞에서는 그 날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고난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만 바라보고 사는 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이 땅의 순례자이며 자신의 참된 지위가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일꾼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일꾼은 믿는 자라면 마땅히 되어야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일꾼이 되어 십자가의 복음을 잘 전하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판단 받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 성도가 되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날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칭찬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직수련회 자료(2)


제직의 어원

제직은 희랍어 “파라클레시스”를 번역한 말로서 그 의미는 ‘권면(exhortation), 격려, 간청, 위로, 위안’ 등으로 통한다. 희랍어 동사 “파라칼레오”는 돕기 위하여 간청하다(행28:20, 눅8:41, 고후12:8), 권면하다(고후12:18, 막1:40), 위로하다(고후1:4), 화해시키다(행16:39)는 뜻을 나타낸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가운데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롬12:8)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격려(또는 위로)하는 자면 격려(또는 위로)하는 일로”라고 번역할 수 있다.

  

또 사도행전에 나오는 “권할 말”(행13:15)은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청중들로부터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는 청을 받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모인 무리들에게 권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권면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에챠”인데 결단, 결정, 상의, 충고 등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 권면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결정하기에 앞서 주는 지혜자의 충고 혹은 아이디어의 제공을 뜻한다.

  

이것이 정치적인 권면일 때는 하나의 모략을 펴내는 것이요, 왕의 친근자로서 지혜자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지휘관을 돕는 참모를 가리킨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권면이란 잘못된 행위를 바르게 교정하려는 윗사람의 권위적인 충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권면은 계획을 수립하는데 돕는 것이요, 일의 성취를 위해 창안하는 조언을 뜻한다.

  

제직의 자격과 직무

①제직은 불평하는 말 대신에 남을 칭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②남을 저주하는 말 대신에 축복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③이간질하는 말 대신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④실망을 안겨 주는 말 대신에 용기를 주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⑤속된 말을 지나치게 하지 말고 신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거룩한 직분자로서의 제직의 훈련

  

1)언어 훈련

언어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교통(Communication)의 수단으로 쓰인다. 촬리 쿨리(Charles Cooley)는 말하기를 “커뮤니케이션이란 인간관계가 존재하고 발전하는 메카니즘, 즉 정신의 모든 상징과 의미를 공간적으로 전달하고 시간적으로 보존하는 일체의 수단을 뜻한다”고 했다.

  

언어의 종류는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태도나 몸짓으로 전달하는 비언어(非言語)인데 학자들은 대개 비언어를 활용하는 비율을 65%로 보고 있다. 둘째, 음성으로 전달하는 언어인데 이것을 활용하는 비율을 대개 35%로 보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언어는 단순히 소리의 전달만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다. 때문에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아서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남을 설득하고 신앙적으로 권면하는 직임을 맡은 제직은 특별히 다음과 같은 내용의 언어에 대한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2)태도(Attitude)의 훈련

논어에 보면 “유덕(有德)한 인품을 가진 사람은 남에게 세 가지 영향을 끼친다”고 되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위엄 있게 보이고, 가까이서 바라보면 부드럽고 따스하게 느껴지며,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늠름하고 준엄하다.” 그 사람의 태도는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낸다. 특별히 신앙 인격을 가진 제직은 남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태도훈련을 받아야 한다.

  

①제직의 태도는 항상 진실해야 한다. ②제직의 태도는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③제직의 태도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④제직의 태도는 신앙적이어야 한다.

⑤제직의 태도는 남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3)사고의 훈련

신앙인은 언제나 생각할 때 믿음의 사고를 하도록 훈련되야 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믿음의 사고를 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을 역사 속에서 성취하셨음을 알 수 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열두 지파의 대표를 선택하여 가나안 땅을 탐지하도록 파견하였을 때 40일간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그들 중 열 지파의 대표들은 부정적인 면에서 악평을

  

4)용서에 대한 훈련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아픔을 통하여 자기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다. 사도 요한은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9-11).

  

세상을 살다보면 나에게 손해를 주고, 아픔을 주고, 나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중상모략하고,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는 정말 감정을 억제할 수 없고 분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증오심과 미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마침내 정신적인 질환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고 하셨다.

  

그리고 산상보훈의 말씀에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넓은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사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직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제직들은 특별히 먼저 용서의 훈련을 통함으로 자아의 인격을 성숙케 하고 화해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직은 교회 안에서 결코 명예직이 아님을 밝혀 둔다. 그 사명이 얼마나 막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영국의 어느 정신병원에서 연구한 논문에 의하면 정신질환자의 95%가 “용서”에 대한 훈련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내가 남을 용서할 수 없을 때 증오심과 미움이 생기고, 내가 남의 용서를 받지 못할 때 불안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제직의 올바른 자세

교회에서 제직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다. 사람이 신앙적으로 올바른 변화를 가져오려면 지식(Knowledge)의 변화, 태도(Attitude)의 변화, 그리고 행동(Action)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여기서는 몇 가지 제직으로서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고자 한다.

  

1. 신앙적인 자세: 제직은 바나바와 같이 믿음이 뛰어나고 성령충만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신앙적 자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1)주일성수 하는 신앙적인 자세: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철저히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을 통하여 그의 삶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업, 직장, 애경상조 등으로 주일예배에 참석을 못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취미생활인 등산, 낚시, 스포츠 관람 등을 즐기기 위해 교회에 출석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제직의 직임을 받은 사람은 이러한 이유를 극복해야 한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신앙적인 자세가 없이 어떻게 남을 설득력 있게 신앙으로 지도할 수 있겠는가? 주일성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기본 자세이다.

  

2)기도하는 신앙적인 자세: 기도는 성령을 받는 통로이며, 영적인 권위와 능력을 얻는 길이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편145:18)라고 되어 있다.

  

3)물질 봉사의 신앙적인 자세: 바나바는 본래 본명이 요셉이었지만 바나바로 부름 받았을 때 자기가 가졌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다(행4:36-37). 사실상 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팔아 헌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주어져야 하고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헌금하는 생활이다. 성서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는 십일조 헌금은 물론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을 함으로 다른 사람을 권하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찬양대원이나 교회학교 교사들을 사랑으로 대접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도 힘써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물질의 희생을 통한 봉사도 신앙적인 자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4)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신앙적인 자세: 성경공부는 우리의 일생을 다 바쳐 해도 모자란다.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지도자가 되려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몰라서는 안 된다. 특별히 제직의 직임을 받은 사람은 구역에서 책임을 맡고 남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

  

  

  

2.인격적인 자세

제직은 남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직임을 가졌다는 점에서 자신의 인격이 성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훈련에 힘쓰고 인격적으로 남에게 존경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네 가지 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첫째, 통일된 인격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둘째, 사랑과 존경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며,

셋째,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고,

넷째, 시험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마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제직의 직임은 성숙된 신앙 인격을 가지고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화해자로서 전도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연약한 자를 돌보고, 믿음이 약한 자를 권면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이끌어야 할 사명을 가진 제직은 언제나 그 생각을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함으로 맡은 바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모범적인 제직 모델로서의 바나바

바나바는 구브로(Cyprus)에서 출생한 레위인으로서 원래 이름은 요셉이며 예수를 영접한 후 사도 바울과 함께 이방인 전도의 개척자로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Son of Consolation), 또는 “권위자”(勸慰者), 그리고 희랍어로는 “권면”, “격려”라는 뜻을 가졌다(참조, 행4:36, 13:15, 9:31). 그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대로 그는 성서에 나타난 제직의 모델로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에서는 성서를 중심으로 그의 신앙과 미덕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1.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행11:24).

바나바는 그의 성품이 착할 뿐 아니라 신앙적인 면에서도 성령 충만한 신앙을 가졌고 믿음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어 저들을 권면하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바나바의 권면하는 말을 듣고 큰 무리가 주께 더했다고 했다. 그 후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바울)을 만나고 함께 안디옥에 와서 교회에 일 년간 머무르며 큰 무리를 가르치니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직은 신앙적인 면에서 남을 권할 만큼 능력을 가져야 하며, 가르치고 권면하는 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 성령충만한 신앙 인격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멸시받지 않고 존경받도록 바나바와 같이 착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권위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하였을 때 성령을 받았고, 그 능력에 의하여 전도하고 초대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바나바도 성령이 충만했었기(행11:24) 때문에 성공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인 권위나 능력이 없다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직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무릎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신앙적인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아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권면할 때 영향력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이방인 선교 센터로서 안디옥 교회를 세웠을 때 먼저 성경을 가르쳤다고 했다(행11:26). 그는 성경을 가르칠 만큼 성경에 관한 지식이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제직이 되려면 성경에 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 위하여 권면하고 위로할 때 성경 말씀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2. 바나바는 헌신적인 봉사의 모범자이다(행4:37).

바나바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예루살렘이나 또는 그 부근에 있던 토지를 팔아 사도들 앞에 바쳤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할 때 노동하면서 전도하는 일에 봉사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고전9:6). 가진 재산을 헌납한 신앙심이라든지 친히 노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전도한 행위는 바나바가 헌신적인 봉사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직의 직임 가운데는 교회가 필요로 할 때 헌금이나 구제활동, 봉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왜냐하면 제직은 남을 격려하고 권면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3. 바나바는 중재인으로서 화해하는 일에 힘쓴 사람이다(행9:27).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귐을 가지려고 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평소에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고,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갔던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두려워하였고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했던 일, 즉 그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주의 음성을 듣고,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설명해줌으로써 사울로 하여금 예루살렘에서 잠시 머무르며 제자들과 사귀도록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바나바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반목 상태에 있었던 사울과 주의 제자들 사이에서 중재자로 화해의 사역을 잘 했던 것이다. 바나바는 실로 지혜, 사랑, 관용의 덕을 가지고 화해자로서 살았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특별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음으로 수 많은 성도들이 더해갔지만 교권을 잡으려고 했다든지 자기를 영웅시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바나바는 화해자로서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이었을 뿐 만 아니라 겸손한 주의 종이었다.

  

제직의 직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권위자(勸慰者)로서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어떤 형제자매가 잘못된 생각을 한다든지, 잘못 이해함으로써 오해하는 일이 있다든지, 다른 사람과 갈등 속에 있을 때 제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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